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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승 기자의 아유보완 스리랑카]3.최초 승원 이수루무니아

기자명 법보신문

첫 법등 켠 고대 사원엔 묵은 법향 ‘은은’

 
비교적 아담한 모습의 이수루무니아는 바위벽에 부조 형태로 조성돼 있다. 그 옆에는 수영장처럼 보이는 연못과 박물관이 존재한다.

기원전 500년경 스리랑카에 수립된 고대도시 아누라다푸라. 그 곳에 간다. 당시 왕이 불교에 귀의한 이후 스리랑카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 되었던 곳. 바로 그 불교 성지에 2300여년을 거슬러 발을 디디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물어보자. 왜 떠나는가. 수도자의 구도행까진 아니더라도 떠남에는 목적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고대 도시이자 불교 성지 아누라다푸라가 거기 있으니 설렌다’는 식은 곤란하다. 아무래도 최초의 승원 이수루무니아가 이끌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패엽경 사찰 알루위하라가 있는 마탈레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길. 스리랑카에 최초의 불교가 전해졌다는 미힌탈레 지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아누라다푸라 초입에 들어서자 날씨는 매우 습하고 따가웠다.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어지러웠다. 길목 곳곳엔 아지랑이가 아련히 피어올랐다. 잔뜩 자신을 뽐내는 태양 탓에 잠깐 시선을 거두려고 했으나, 아누라다푸라 이곳저곳에 파인 수로가 눈길을 끌었다. 아누라다푸라가 날이 덥고 비도 자주 안와 호수도 많이 만들었고 수로도 많단다.

버스의 속도가 영 시원찮다. 가만 보니 그 흔한 신호등도 보이지 않았다. 길 이곳저곳에서 야생동물과 사람들이 불쑥 튀어나와 스리랑카 정부에서 시속을 50킬로미터로 제한한 것이다. “빨리 빨리”를 외치며 시간에 쫓겨 사는 우리네 자화상이 순간 부끄러웠다.
스리랑카에 최초로 불교 승단을 만든 인도 법왕 아쇼카 왕의 아들 마힌다 스님이 머물렀다던 이수루무니아에 다다랐다. 신발을 벗으란다. 맨발로 뜨겁게 달궈진 땅을 딛고 서라니!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내리쬐는 햇볕에 숨도 못 쉴 지경이건만. 말없이 맨발로 이수루무니아를 참배하는 스리랑카 불자들을 보며 그네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로 했다. 비교적 아담하게 보이는 이수루무니아는 바위벽에 부조 형태로 조성돼 있었다. 그리고 옆은 수영장처럼 보이는 못과 박물관이 보였다. 사원 옆 작은 법당엔 큼지막한 와불이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들었다. 일단 셔터를 눌렀다. 와불을 조성했던 이들의 마음까지 함께 담기길 바라면서.

 
커다란 와불

인도에서 佛法 전한 마힌다 스님

법당을 나와 박물관에 조심스레 발길을 옮겼다. 수상한 부조 조각상이 시선을 붙잡았다. ‘이수루무니아의 연인들’이란 조각상이다. 이 조각상은 두투가무누왕의 아들 살리야가 낮은 계급의 소녀를 사랑했던 이야기를 묘사했다. 그 모양새가 아름답지만 왠지 모를 안타까움도 묻어났다.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으리라. 대신 그네들이 극락에서라도 결혼시켜본다.

살리야는 소녀와 부부의 혼례를 올리기로 한다. 혼례는 풍습대로 가난하지만 신부 집에서 열렸다. 나라와 온 마을은 잔치 분위기로 들떴다. 소녀는 순백의 의미로 어머니가 직접 준비한 흰색 사리를 입고 수줍게 등장했다. 주위에선 탄성이 새어나왔고 살리야는 미소로 소녀를 맞았다. 곧 코코넛을 깨뜨려 액운을 막는 의식이 끝난 후 살리야와 소녀는 양가 부모님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보리수 나뭇잎을 공양했다. 이제 살리야와 소녀는 새끼손가락을 흰 실로 묶고 물을 부어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음을 온 나라에 알리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생뚱맞은 상상을 한 후 다시 조각상을 바라봤다. 살짝 미소가 스쳐간 듯 하다. 살리야와 소녀에게 위안이 되길 스스로 달래본다.

정작 이수루무니아 사원은 딱 한 사람이 앉아 좌선하고 누워 잘 수 있을만한 공간이었다. 불상인가 싶어 자세히 살피니 마힌다 스님이란다. 가부좌를 튼 스님을 응시하려니 인생 참 허망했다. 최초로 스리랑카에 비구 승단을 세운 거룩한 분이고, 83세의 나이에 열반에 드셨다지만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힌다 스님이 입적했다고 해서 스리랑카 불교가 한꺼번에 몰락하진 않았다. 가을 길거리에 낙엽처럼 흔한 것이 죽음인 것이다.

운명적인 것을 붙잡고 사랑하라 했던가. 마힌다 스님의 스리랑카 비구 승단 설립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스리랑카에 공식적으로 자리한 드라마틱한 사건이었다. 스무살이던 해 모가리 푸타를 스승으로 출가, 제법 상당한 수행을 한 마힌다 스님은 불법을 전하란 아쇼카 부왕의 명을 듣는다. 기원전 247년, 당시 서른둘이었던 스님은 4명의 비구와 2명의 사미를 동행한 채 법력을 발휘해 아누라다푸라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미힌탈레 바위산 정상에 당도한다. 마힌다 스님이 도착한 며칠 후 음력 5월 보름. 당시 아누라다푸라 왕이던 데바남피야 티샤가 때마침 사슴 사냥을 위해 그 지역을 찾았다. 사냥이란 살생을 저지르려던 왕과 불법을 전하려는 스님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인연인가. 비록 마힌다 스님이 머물던 산의 신이 사슴으로 변해 왕을 유인했다지만 여전히 이 이야기는 신기하다.

왕을 만난 마힌다 스님은 왕이 불법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몇 가지 질문을 통해 시험하고 그 자리에서 『상적소유경』을 설한다. 곧바로 왕은 불교에 귀의하고 7일 만에 왕비와 신하, 백성 등 8500여 명이 불자가 된다. 그리고 왕은 마힌다 스님이 지낼 수 있는 이수루무니아 사원을 보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같은 탄생 이야기를 지닌 이수루무니아 사원은 주인이던 마힌다 스님을 보냈지만 아직 그의 법향을 잔잔히 전하고 있었다. 바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바위 위에 올랐다. 바위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이수루무니아 사원 주변은 말 그대로 볼만 했다. 시원하게 펼쳐진 사원 밖 풍경은 연못에 핀 연꽃과 초록 야자수 나무 숲을 선사했다. 멀리는 높이 55미터에 달하는 하얀 루완웰리세야 대탑이 한 눈에 들어왔다.

 
포행을 나선 스님들.

승단은 교육-수행승으로 구성

스리랑카 스님들은 천혜의 자연 환경 속에서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친다. 스리랑카는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스님들과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스님들이 있다. 그 중 수행을 주로 하는 스님들은 경제활동은 전연 않고, 오전 10시 경 탁발한 공양물을 부처님께 올린 후 나머진 수행을 함께하는 스님들과 나눈단다. 재미있는 것은 스님들이 오전에만 빨래나 목욕을 한다는 사실이다. 조금만 걸어도 옷에 땀이 배는 이곳 날씨인데, 스님들이 수행하는 동굴 안은 땀 냄새가 진동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우거진 나무 그늘 사이로 스님 세 분이 사이좋게 걸어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습은 습인지라.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한 컷.

“스님들은 주로 동굴이나 나무 밑에서 좌선명상을 합니다. 그러나 심신이 많이 지칠 땐 조용히 걸으면서 포행도 하지요.”

뺨을 스치는 바람의 흐름, 땅의 기운과 하늘의 열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삼라만상의 인연법을 증득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나친 소음과 환경오염, 시각 미디어 범람 등으로 촌각을 다투며 오감을 자극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눈도 멀고 귀도 멀고 마음도 멀었다. 마음 속 깊은 곳 잠자는 불성은 깨워달라고 부르짖지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여유도 없는 듯 하다. 스리랑카의 한 불자가 스님 발 밑에 무릎을 꿇고 발 언저리를 만진 후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며 예를 올린다. 지극한 신심의 표현. 일대사를 해결하려고 출가한 스님들에 대한 존경, 그리고 불자들에겐 더 없는 영광의 표출인 셈이다. 또 스님들에 공양을 받기 위해 스리랑카 불자들을 찾으면 스님의 맨발을 정성스럽게 닦아준다고 한다.

민들레는 외롭지 않다. 바람만 있다면 어디든지 날아가 꽃을 피운다. 거리 곳곳 구석진 곳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을 살펴보라. 묵묵히 노란 꽃잎을 피워내고 있는 민들레가 있다. 하얀 홑씨를 바람에 흩날리며 다시 어딘가로 날아가 생명을 피워낼 곳을 찾겠지. 인도에서 스리랑카로 날아온 불법 홑씨. 그 홑씨는 스리랑카 전역에서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법향을 폴폴거리고 있었다.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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