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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절-실천을 만드는 작업장

기자명 법보신문

『내 스승의 옷자락』틱낫한 지음 / 청아출판사

제목이 참 좋아서 오래전부터 기억해두고 있던 책이었습니다. ‘내 스승의 옷자락’이라는 책제목을 보고 저자가 옛 스승을 추억하면서 스승의 행적을 기리며 쓴 글일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이 소책자는 막연한 짐작을 여지없이 흔들어버렸습니다. 원 제목은 My Master’s Robe 그러니까 우리말로 옮기면 ‘스승의 가사’ 정도가 되겠군요. 옷자락이나 가사나 무슨 큰 차이가 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스승을 추억하는 내용이 주가 되기보다는 스승으로부터 낡은 가사를 물려받은 풋내기 수도승이 장차 어떤 마음가짐으로 수행자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잔잔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베트남은 아시다시피 대승불교국가입니다. 그러니 우리와 똑같이 금강경이나 법화경, 화엄경을 스님들이 읽고 공부하고 신자들에게 대승의 설법을 하는 나라입니다.

베트남의 근현대사를 보면 피비린내가 진동합니다. 서양열강들이 식민지로 삼아 맘껏 유린하고, 제2차 대전의 종료와 함께 손 털고 나가야 할 프랑스가 마지막까지 손아귀에서 놓지 않으려고 총질을 해대었으며, 그러다가 강대국들의 이익에 얽힌 내전으로 온 나라, 온 국민이 총알받이가 되었던 곳이 바로 베트남입니다.

현실은 냉혹하고 비참하기 그지없고, 절에서 지송하고 있는 경전들은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 선어록인 나라. 이런 나라의 스님들은 두 가지 삶의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어차피 사바세계야 탐욕에 물든 중생들이 악다구니 쓰고 살다가 제 업보대로 윤회하니까 그런 ‘더티(dirty)한’ 세상에서 연꽃처럼 초연히 물들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 하나일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과 불교교리와 스님들과 신자들은 그 세속과 처음부터 불가분리의 관계인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해야 한다는 방법이 또 하나일 것입니다.

틱낫한 스님은 후자의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모든 불교는 생활에 참여한다!”

대체 요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라도 해야 하고, 현재 벌어지는 일과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 속에서 인간(종교인)은 어떤 선택을 필연적으로 할 수 밖에 없고, 자신이 선택하여 걸어가는 길에 대해 책임과 의무가 따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틱낫한 스님의 글은 너무 쉬워서 밑줄을 그을 만한 곳이 특별히 눈에 띄지 않고, 누구나 다 아는 빤한 이야기만 쓰여 있어서 불행하게도 불자들 사이에는 외면당하곤 합니다.
거대담론, 고담준론, 긴가민가 알 듯 모를 듯 하는 말들을 어려운 한자나 한시, 발음도 어려운 범어와 뒤섞여 나열해야만 그게 불교이거니 생각하는 고급 불자들은 이 책을 무시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절은 세상이 필요로 하는 실천을 만들어내는 작업장이다’라는 이 책 추천사의 말에 공감하신다면 이 얇은 소책자를 권해드립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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