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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랑 박사의 율장 속 부처님이야기]

기자명 법보신문

현대사회의 화두-생명 〈끝〉

‘완전한 불살생 실천하긴 어렵지만
‘고의 살생’에 대한 죄 의식 가져야

종교는 구제나 해탈과 같은 초월적인 차원의 문제를 지향하며 오랜 시간 인간의 삶과 관련되어 왔지만, 현대사회는 인간의 삶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갖가지 상황에 대해 종교가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해답을 제시해 주기를 원한다. 환경파괴, 인종차별, 전쟁, 낙태, 자살, 어디 이 뿐인가,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큰 관심거리가 되었던 광우병이나 조류 인플루엔자와 같은 현상을 통해서도 드러나듯이 이제는 인간만이 아닌, 인간과 가축의 공존에 대해서도 종교의 가르침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그런데,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갖가지 문제들은 다름 아닌‘생명’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압축될 수 있을 것 같다.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가 불러일으킨 비극이 곳곳에서 다른 이름으로 일어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생류(生類)가 안고 가야 할 생로병사의 근원적 괴로움을 직시하고 이로부터 벗어나는 가르침을 제시하는 불교의 경우, 현대사회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인 해답을 줄 책임을 안고 있다.

불교의 경우, 교리 전반에 걸쳐 생명의 문제가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는데, 율장에서도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를 금지하는 바라이 제3조 단인명계(斷人命戒)를 비롯하여, 살아있는 생명의 목숨을 함부로 하거나 빼앗는 행위를 금지하는 많은 조문들이 실천적인 문제로서 제시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잠깐 주춤하게 된다. 왜냐하면, 고대인도와는 달리, 이미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완전한 불살생은 실현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청결과 위생이라는 미명하에 수도 없이 제거되어 가는 많은 미생물들, 문명의 발달과 함께 개발이란 이름으로 자행되어 온 온갖 환경파괴로 인한 살생, 오랜 세월 인간의 미각을 만족시켜 온 육식 문화 등등…. 이런 생활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는 이미 생명을 해친다는 죄의식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목청 높여 불살생을 외쳐본 들, 이는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로서 끝날 뿐이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 불살생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라제목차 조문 가운데 탈축생명계(奪畜生命戒)라는 것이 있다. 고의로 축생의 생명을 끊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부처님 당시, 우다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출가하기 전에 원래 궁사였다. 그런데 까마귀를 매우 싫어했다. 결국 출가한 후에도 까마귀란 까마귀는 보이는 대로 활을 쏘아 떨어뜨린 후, 머리를 잘라 꼬치에 차례대로 끼워두는 엽기적인 행동을 했다. 다른 스님들이 이 모습을 보고 기겁하며 부처님께 알렸고, 이를 계기로 이 조문이 제정되었다고 한다.

이 조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살생이라는 행동 그 자체는 물론이지만, 특히 그 악행 뒤에 고의성이 존재하는가의 여부가 매우 중요한 잣대로 제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생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물을 마시는 행위를 금지하는 음충수계(飮蟲水戒)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똑 같은 행동일지라도 그 안에 고의성이 있는가 없는가가 범계 성립의 중요한 요건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 우리는 철저하게 살생을 피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남겨진 최선책은 우리들의 마음이 살생이라는 행위에 익숙해져 그 옳고 그름도 분간하지 못하는 상태로 퇴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먹지도 않을 생선을 취미삼아 낚고, 자신에게 아무런 해도 주지 않는 사람이나 동물을 단지 재미삼아 혹은 싫다는 이유로 괴롭히고 목숨을 빼앗고, 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유린하는 행동과 같은, 적어도 살생 그 자체를 즐기며 다른 자의 괴로움에 무관심한 행동만은 삼가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하나의 생명체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을 돌이켜 보자. 그 속에 담긴 경이롭고도 강한 생명의 힘을 느낀다면, 어떤 종류의 생물체에 대해서든 경외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자랑 도쿄대 박사 jarang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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