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장정일은 움베르토 에코의 말을 빌려서 스포츠 관람에 열광하는 사람을 ‘관음증 환자’라고 말했습니다. 이 뜨끔한 지적을 조금 더 자세하게 옮겨보자면 마치 자기는 전혀 섹스를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섹스를 구경하기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암스테르담(사창굴)에 가는 사람과 뭐가 다르냐는 것입니다(한겨레신문 인터넷판 8월22일자 문화면).
스포츠가 순수한 놀이라거나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는 인간의지의 시험장이 더 이상 아닌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쩌면 거대한 자본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가장 자극적인 시장이라고도 할 것입니다. 바로 며칠 전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는 자본의 맛을 톡톡히 음미하게 해주는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나도 우리나라 선수들이 참가하고 땀과 눈물을 흘리며 온갖 각본 없는 드라마를 연출하는 데는 도저히 도외시할 배짱이 없었습니다. 나는 이웃집에서 와 하는 함성이 터질 때마다 부리나케 리모컨을 찾아들었습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건은 단연코 개막식에서의 립싱크였습니다. 개막식을 불량스럽게 건성건성 본 탓에 그 장면을 놓치기는 하였지만 인터넷으로 뒤늦게 확인한 그 소녀는 어찌 그리도 귀엽던지… 게다가 목소리는 그야말로 솜사탕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노래 부르는 소녀의 표정을 보자니 머리에 꽃을 꽂고 온갖 재능을 발휘하는 북한 어린이들을 볼 때마다 내 팔에 다다닥 돋는 소름 같은 그런 것이 느껴졌다면 너무 억지일까요?
며칠 뒤에 터진 립싱크 기사를 보고서 실소를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얼굴이 못 생겨서 목소리를 도둑맞은 소녀는 실망과 충격에 가득 찼다고 하는데 노래를 못 부르는 얼굴 예쁜 소녀가수를 내세운 중국 당국이 하는 말 좀 보십시오. ‘완벽한 중국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국가의 이익을 위해’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중국은 언제쯤 이런 사기극을 멈추게 될까요.
내가 이토록 분개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올림픽이 한창이던 시간에 다이허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를 읽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은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를 거친 뒤에 펼쳐지는 지식인들의 다양한 인생을 치밀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문화대혁명은 ‘대대적으로 의식을 개조하지 않고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표면적인 명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말 그대로 한바탕 뒤집혀졌지요. 그렇게 10년의 세월을 보낸 뒤에 성과는 무엇일까요? ‘그 시련의 성과 중의 하나가 얼굴 가죽이 두꺼워졌다는 거지. 덕택에 비난을 당해서 체면을 엉망으로 만드는 일 같은 건 이제 하나도 무섭지 않아’라는 책 속의 문장(419쪽)을 보니 어린 소녀의 립싱크 문제를 대처하는 중국 관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무대에 선 예쁜 소녀 린먀오커 양이라도 나중에 이 문제를 깊이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