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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효 칼럼]교종시대의 친철학적 사유[하]

기자명 법보신문

교종적 사유, 이성철학의 무익함 통찰
분별 강한 이성철학 사회문제 해결 못해

인간의 의식은 감각의 매개를 통하여 분별함으로써 ‘나는 네가 아니다’는 자의식이 일어난다. 매개에 의한 분별을 통하여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멍텅구리가 아니라 어떤 내용을 채워나간다. 의식의 분별화는 의식의 사회화와 같다.
그러나 교종에서 언급된 ‘순수 존재=순수 무(공)’는 우주자연의 여실한 도(道)를 기술한 것이다. 이성철학이 의식의 사회화를 겨냥한다면, 교종은 인간과 우주자연의 공동 존재방식을 해명하고 있다.

이성철학은 결국 분별논리학이고, 분별은 주관인 자의식이 객관적 대상들에 대한 개념적 차이를 뚜렷이 정리한다. 그래서 분별심이 낳은 인간의 역사는 더 편리한 것을 추구하며, 이런 정의가 저런 정의와 늘 싸움을 벌리게 되어 있기에, 진리를 가리려는 의지가 세상을 지배하려는 의지와 뒤섞인다. 사회철학=의식철학=개념철학(존재자철학)=분별철학은 결국 끝없는 투쟁철학의 연속을 낳는다.

이성철학자들은 보편적 의식일반이 논리적 보편성을 이룩한다고 말하지만, 스위스의 심리학자 융의 말처럼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논리적 보편성은 심리적 기호의 호오(好惡)에 불과하다. 그래서 논리적 투쟁의 이면에 늘 심리적 호오의 기호가 깃들어 있기에 애증(愛憎)의 집착이 여간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교종적 사유는 이런 이성적 사회적 해결방식의 무모함과 무익함을 통찰한 것이다. 아직도 인류는 저 이성철학의 사유에 젖어 이성에 기초해서 실타래처럼 읽힌 어떤 사회문제를 해결하라고 주장한다. 다 책상물림들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사회적으로 생긴 무의식적인 호오감정이 남긴 말나식(제7식)의 자아중심적 업을 이성적이고 도덕적 의식(제5식)의 당위적 노력이 지우지 못한다. 교종의 사유는 인류가 의식의 수준에서만 보아온 분별논리학적, 사회도덕학적 요청에 의해서 자아중심적 논리인 애증의 심리가 결코 극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실타래처럼 얽힌 인류사회의 문제점들은 결코 의식철학(이성)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여기서 교종의 무의식적 사유가 다시 빛난다. 교종은 두가지의 무의식을 말한다. 하나는 제7식인 말나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제8식인 아뢰야식이다. 말나식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통하여 무의식적으로 소유하게 된 사회적 무의식이고, 아뢰야식은 인간의 마음이 분별심에 의하여 끄달려지 않으면 본디 자연의 허공과 유사해지는 자연적 무의식이다. 허공과 같은 아뢰야식은 본질적으로 장자가 언명한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무위하나 행위가 없는 것은 아님)하다. 허공은 무상의 포용력 자체이고, 또 고갈되지 않는 무한기(無限氣)로써 온갖 존재를 나투게 하는 진원지다. 아뢰야식도 이와 같다.

아뢰야식이 허공처럼 공하고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해맑고 투명하기 위하여 의식의 모든 망상이 고요해야 한다. 의식이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으면, 마음은 선/악, 애/증, 시/비의 분별이 없는 평정한 불심에 이른다. 의식(자의식)이 흥분하지 말아야 한다. 그려면 사회적 무의식인 말나식도 고요해진다. 말나식이 끝없이 출렁거리면, 아뢰야식은 흐려진다. 아뢰야식으로서 가장 깊은 인간의 무의식인 마음에는 사회적인 애증의 개념으로 짜여진 업의 편견들과 자연적인 순수존재방식인 진여의 본성이 혼재해 있다. 이것을 인도의 고승 마명(馬鳴)은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이라 불렀다. 자연적 무의식의 본능을 솟아나게 하는 방편에서 선종의 반(反)철학이 등장한다.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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