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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사찰패러다임_낙산사서 찾는다]③도감 현고 스님이 말하는 ‘불사’

기자명 법보신문

“전각의 여법함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

 
원통보전 주변에 들어서는 전각의 축대. 옛 부재를 최대한 활용해 역사를 계승하는 의미를 살렸다.

“오죽헌-해운정-회전문 등
강원 지역 명품 고건축들
낙산사 전각 모델로 삼아”

2005년 발생한 산불의 상처 위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자’는 국민들의 염원을 모아 시작된 낙산사 복원 불사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었다. 전소된 가람의 잔해를 거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아래 잠들어 있는 1700년의 역사를 되찾는 동시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던 전각의 배치를 전통과 법식에 맞는 여법한 형태로 바로잡기 위한 산고와도 같았다. 어느새 3년 여의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는 이 대작불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선장은 낙산사 복원불사의 도감 소임을 맡은 현고 스님〈사진〉이다. 송광사 복원 불사를 통해 전통 가람의 구조와 미학을 구현한바 있는 현고 스님은 낙산사 복원 불사를 통해 “이 시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사찰 건축의 사상과 미학을 되살려보고 싶었다”는 의지를 실현했다. 낙산사 복원을 통해 현고 스님이 구현하고자 했던 ‘불사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스님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그해답을 찾아본다.

▷낙산사 복원 불사의 도감 소임을 맡은 이유와 역할은 무엇인가.
“원래 도감이라는 것이 좋게 표현한 것일 뿐 사실은 공사판 막노동꾼 우두머리다. 그런 일을 나에게 맡긴 주지(정념) 스님의 수완도 참 대단하지만 그분이 지닌 원력 또한 남다르다. 낙산사 복원 불사의 동기는 매우 불행한데서 시작됐다. 하지만 그 일을 실제로 해나가는데 있어서는 마치 그 일을 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원을 세워왔던 것처럼 추진하고 있다. 불사는 그렇게 발원을 갖고 해야 하는데 요즘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나름대로 불사의 경험이 있다는 스님들이 자신의 경험을 고집으로 삼아 다른 이들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타인의 조언을 듣고 이행한다는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경험을 비우고, 빈 마음에서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낙산사 불사는 복원을 목표로 시작됐지만 현재의 모습은 화재 이전과는 전혀 다르다.
“도감을 맡은 이후 전체적인 가람의 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가장 먼저 고민했다. 단순히 화재 직전의 모습대로 복원할 수 없었던 것은 그때까지 지어진 전각들이 한국전쟁으로 낙산사가 전소된 이후 역대 주지를 거치며 그때그때 필요한 건물들을 짓는 형태로 형성된 구조였기 때문이다. 시대적 상황이 그랬기에 누구의 잘못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전체적인 사찰의 구조와 1700년 낙산사의 역사를 왜곡시키는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조선시대 김홍도가 그린 낙산사 모습과 화재 직전의 낙산사가 전혀 다른 구조였다는 점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화재 이후 진행된 발굴조사 결과 원통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건물의 배치와 기단 구성들이 그대로 출토됐는데 대부분 1400년대의 유구들이었다. 김홍도의 그림 속에서 보이는 낙산사의 모습과도 대부분 일치하고 있었다. 낙산사를 조선 초기의 모습대로 복원키로 한 이유는 이러한 역사성을 계승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각배치는 발굴 작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지만 각 전각의 형태는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 건물 배치는 (김홍도의) 그림대로 하면 되지만 건물 모양은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그래서 강원지역에 현존하고 있는 고려 말, 조선 초기를 대표하는 건물들을 조사해 모델로 삼았다. 강릉 해운정, 오죽헌, 문묘대성전 그리고 춘천 청평사 회전문 등이 모델이었다. 이 건물들은 강원지역을 대표하는 명품 고식 건물들이다. 고려로부터 조선까지 이어지는 우리건축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들 명품 건물을 기본으로 초를 작성하고 건물을 축조했다.”

▷강원지역의 전통건축양식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 있는가.
“강원지역 전통건축물들은 섬세함을 특징으로 한다. 영남지역 건물들이 남성적인 힘과 당당함을 갖고 있다면 호남지역과 더불어 강원지역은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호남지역에는 이러한 전통건축의 특징을 계승하고 있는 솜씨 좋은 목수들이 다수 남아있는데 강원지역에서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지역에 영향력 있는 몇몇 목수들이 불사의 대부분을 독점하는 폐단이 생기고 강원지역 건축의 독특함이 잠 표현되지 못한채 천편일률적인 형태의 건물들이 지어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껏 그런 문제에 대한 지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잘못된 관행이 제도처럼 굳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스님들 역시 비용을 적게 들이고 빠른 시일 내에 끝내길 바란다. 또 주지 스님 개인의 바람을 잘 들어주는 목수를 좋은 목수라 여기며 선호하기도 한다. 잘못된 관행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결국 최종 피해자는 사찰이다. 낙산사 복원 불사에서도 좋은 대목장을 만나는데 오랜 시간이 들었다. 주지 스님 역시 그 일로 마음고생이 많았지만 솜씨가 부족한 목수에게 일을 맡겨 놓고서 비용만 계산한다면 결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

▷낙산사 전각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만족할만한 결과인가.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비교적 잘 구현됐다. 일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원통보전 주변의 중심축은 비교적 잘 마무리되고 있다. 특히 원통보전은 좌대와 문살, 축대의 석조계단 등 모든 부분에서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과 여법함을 잘 살려내고 있다.”

▷복원된 전각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낙산사는 지속적으로 왕실의 외호를 받아온 사찰이다. 원통보전 축대에 사용된 석재들만 봐도 사찰 주변에서는 그런 돌을 구할 수도 없음에도 엄청난 크기의 장대석들을 사용해 축대를 쌓았다. 경주의 불국사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크고 많은 양의 석재를 사용한 사찰을 찾기 힘들다. 다듬은 솜씨 또한 대단히 섬세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축대에는 이 석재들을 그대로 사용해 전체 70% 이상을 차지한다. 발굴과정에서 나온 석재들도 최대한 활용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낙산사의 역사를 계승하는데 주력했다.”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이런 특징과 정성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아무리 큰 전각이라도 처마의 한 푼 길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전각의 느낌이 바뀐다. 그것은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라고 본다.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고 추한 것을 추하게 느낄 수 있는 본능이 있다. 해석적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감각적으로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낙산사를 찾는 이들 역시 마음으로 느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한 치, 한 푼의 길이와 두께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더욱 신중해야 한다.”

▷어떤 건축이 좋은 건축이고, 어떤 불사가 여법한 불사인가.
‘가람은 기법과 법식의 조화로 완성된다. 어떻게 세우고 깎고 다듬고 연결해서 나무와 나무의 조화를 이뤄낼 것인가가 기법의 문제라면 전각의 배치, 규모, 위치의 선정 등을 통해 사찰을 둘러싼 지형과 지물 등 주변과의 조화를 이뤄내는 것은 법식의 문제다. 사찰 조형의 기본 이념은 『화엄경』에 나타나 있는 육상원융사상이다. 전체와 부분, 부분과 부분이 서로 원만하게 융화되어 조화로운 관계성을 이뤄 내는 것이 기본이다. 요즘 불사는 건물은 있지만 그 안의 내용이 없다. 불사는 원력과 진정성이 있어야 하는데 사찰 모양만 만들 뿐이다. 불사를 한다더니 공사를 하고 심지어는 장사를 하기도 한다. 이것이 불교를 망치는 길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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