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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 특별기고]2. “정치는 토목공사와 다르다”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08.09.16 13:38
  • 댓글 0
 
김지하 시인은 이명박 대통령이 불교의 요구나 충고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대세를 거스르는 역행보살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불교계는 이명박정부 출범과 동시에 추진했던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대해서도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사진은 종교인 생명평화 100일 도보순례 44일째인 3월 26일 운문사 학인 120여 명이 운하건설을 반대하며 낙동강 지류를 걷고 있다.


불교와 손을 잡아라!
불교의 요구나 충고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드려라!
이것이 대세(大勢)다.
정치 또는 정치력이란 경제, 더욱이 토목공사와는 매우 다르다
내말을 듣지 않으면 이명박 씨와 현 정부는 스님들 말처럼 ‘역행보살(逆行菩薩)’일 뿐이다. 거꾸로 가면서 세상에 공헌한다는 씨니시즘(cynicism)이겠다.
너는 지금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묻고 있는가?
대답하마. 그것은 다음과 같다.

어떤 훌륭한 선배가 내게 와서 왈 “엠비의 가까운 한 측근에게 엠비로 하여금 대운하계획을 그만두라고 타이르도록 말해 달라.”고 했다. 그 때 역시 나는 그 일이 ‘보은’이라고 생각하고 그리했다. 내용은 다 아는바 대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마디 더 했다.
네 번째 이유다.
‘노무현 씨가 선거직전 한참 인기가 상승할 때 한 전문기자에게 질문을 받았다.
“언제 미국 갈꺼냐?”
대답은 “시간이 있으면 간다.”였다.
미국은 우리에게 시간이 있으면 가는 곳인가?

병법의 주요 원칙은 강약부동

시인인 나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의 대권이 그럴 수 있는가?
좌파 아니라 좌파 할애비라도 이 저주받은 땅 그러나 반대로 이 성배(聖杯)의 땅의 대권은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
시인이 병법(兵法)을 말하는 것은 우습다.
그러나 유신시절, 목숨을 걸었던 그 때는 결코 그것이 우스운 일일 수 없었다. 나는 그래서 병법을 공부한 일이 있다.

병법은 정치의 극한 영역이다.
그래서 때론 그 지혜를 아주 궁핍한 상황의 정치에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병법에서 중요한 원칙 하나는 ‘강약부동(强弱不同)’이다.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는 절대로 같지 않다는 말이다. 좋고 나쁘고의 영역이 아니다.
우리가 좋아서 미국 가는 거냐?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시간이 있으면 가는 나라냐 미국이?
그래서 전시작전권(戰作權)을 드디어 빼앗아 왔다고 폼 잡는 거냐?
그거 내가 알기론 미국무부와 펜타곤 안에 다 준비되었던 계획이다. 동북아시아에 집단안보체제가 가능해지면 반도 주둔군 헤드쿼터는 몇몇 부대만 남긴 채 하와이로 뺀다는 계획이 이미 서 있었다는 거다.

왜? 아시아 잠재시장이 바로 월가의 화살방향이니 동북아를 북한 핵만 없다면 중국과 타협해가면서 아시아대륙 진출의 평화적 경제교두보로 만들기 위해서!
헤드쿼터 안 빼면 중국 긴장하고 군비확장, 일본의 뒤따른 확장, 러시아의 연이은 확장.
아시아에 대한 서남방(西方)교두보는 이란 혁명 이후 이슬람 근본주의 때문에 군사적으로 밖엔 확보 못한다. 더욱이 석유, 가스 매장량의 장기성 때문에,
아시아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기후변화를 보라!
북극이 해빙된다 해도, 온난화에 간빙기(間氷期)가 개입된다 해도, 그래서 극도의 추위·더위가 교차한다 해도, 시베리아, 극지대, 파미르, 히말라야, 텐샨, 알타이, 몽골고원, 바이칼, 오호쯔크, 캄챠카 등등은 그나마 서늘하고 온화해서 전세계인구의 대규모 아시아 이주를 예상해야 하는 건 시장의 상식 아닌가? 최근의 주식변동 역시 그런 예감 아니던가? 중앙아시아 곳곳에 재펜·파운데이션이다. 일본인이 자주 출몰하는 곳은 앞으로 큰 장바닥 된다는 건 상식이다. TSR, TCR은 또 무엇인가? 문제는 미국이다 주의하라. ‘강약부동!’

아마도 이 ‘보은’이 ‘미친 쇠고기’에까지 번졌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하기야 나 따위 얘기 듣고 이렇게 저렇게 할 사람도 아니겠지만,
대운하 충고에는 한두달 잠잠하더니 그 다음엔 더 극성을 떨어서 그 무렵 ‘신동아’에 직격탄을 날렸으나, 그 또한 역시 ‘보은’이었다.
정치에 쓴소리처럼 큰 은혜가 어디 있는가?
이렇게 됐다.
그러나 그가, 그들이 내 말을 정말 안 들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자주하는 말이지만,
나, 7년 옥살이 뒤에 옛날과 크게 달라졌다.

불교에 관한 깨달음 여정 알아야

그 길고 긴 험한 독방에서 버티는 동안 나 스스로 독방이 됐다. 이젠 나도 촛불들처럼 방콕이 됐다.
들으면 좋고 안 들어도 그냥 좋다.
그까짓 것은 사실 내게 흥미없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이 원고는 전부터 각오해온 두 개의 공부내용에 연결된 것이다. 화엄경과 동학의 개벽적인 모심의 선(禪). 그 쪽으로 가는 길에 어차피 만나게 될 불교에 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깨달음의 여정을 체크하는 일종의 리포트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엄개벽!
개인의 육체와 영과 정신세계, 지구와 우주의 미래는 반드시 화엄개벽으로 비로서 열린다. 지구의 세계와 영과 생명과 물질들의 고통이 그것을 웅변한다.
단위문명이 아니라 전 인류문명사 지구사의 근본적인 대전환이다.

동학을 비롯한 19세기 남조선사상사(유·불·도와 기독교·이슬람까지도 한민족 전통의 풍류생명학을 토대로 창조적으로 융합하는 19세기 후천개벽사상들)와 대화엄경의 일승원교(一乘圓敎)가 새 시대의 새로운 개인 개인의 선적(禪的)결단 속에서 통합되는 것만이 그야말로 우주개벽을 가능케 할 것이고 그러한 개벽을 통해서만이 현대적인 대혼돈(大混沌)을 해결·극복하게 될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깨작깨작할 틈도 없다.

그런데
바로 이 화엄개벽의 길이 이 땅 여기에서 지금 촛불 이후 열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1700년 불교역사에 유례없는 27개 종단 20만 불교도의 대규모 정치집회, 그것도 전례 없는 ‘가만히 좋아하는’ 또는 ‘자제된 열정’의 대장엄이 오늘 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역사, 아시아역사, 세계와 지구역사만 아니라 우주역사에서 진정 거대한 한 사건이니 그야말로 에포크·메이킹한 모멘트인 것이다.
생각이나 상상에 불과한가?
아니면 그런 증거라도 있는가?
증거 있다.
일곱가지다.
그 자세한 설명은 다른 기회, 아마도 훗날에 다른 글에서 상세히 하겠다. 우선 간략히 요약한다.

첫째, 촛불이다.
디지털 네트워크의 무서운 위력이다. 그러나 그 컴퓨터를 만들어내는 뇌과학 연구과정 자체의 저변에는 뇌, 즉 마음의 원리에 대한 불교의 참선법, 유식학, 중관론 등이 켜켜이 쌓여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컴퓨터는 앞으로 신경컴퓨터(이미 개척되었다)이후 신령컴퓨터까지 간다. 이것을 우선 촛불과 같은 직접민주정치의 문화가 대규모로 그 깊이·넓이·높이·크기와  함께 대규모로 다가오리라는 예상과 쉽게 연결된다.
이것은 문명문제이자, ‘화백(和百)민주주의 정치문제이며, 새 세대와 여성문화이자 생활·생태(이른바 환경·녹색), 그리고 생명문제다.

촛불·인터넷 탄압해도 중단 못 시켜

현 이명박 정부가 아무리 촛불을 잡아가고 인터넷탄압을 계속해도 결코 중단시킬 수 없는 역사의 대세다.
바티칸이 지동설(地動說)을 바꿀 수 있었던가? 갈릴레오의 입을 완전히 닫을 수 있었던가?
기차는 마구 달리는데 그걸 보고 짖어대는 똥개 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의 대권이 5년에 한정된 이 나라, 이 민족의 한때의 한 기능에 불과함을 잊지 말라!
바로 그 대세에 오히려 일치하고자 노력해야 되는 것 아닌가?

둘째, 마치 저 답답한 중국의 공산당정부처럼 디지털 인터넷매체를 억압하고 단속하면 된다고 망상하지 말라. 당장으로는 써버를 국외로 이동하면 되는 것이고 그 기간이 길어져도 촛불은 어차피 글로벌문화이므로 아젠다의 복합성과 차이만 조정한다면 결과와 효과는 마찬가지가 된다. 무엇을 어떻게 진압한다는 말인가? 실체 없는 통신을 통한 국제적 포위망 속에서 민족국가 내포(內包)적인 억압메카니즘이 다국가적 네트워크를 숨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망상하는가? 이 이야기가 미덥지 않다면 전문가 말들을 들어보자

‘리프터 콘퍼러스’설립자 ‘로랑오즈’의 말이다. “사회적 관계망 서비스와 지식공유 등 웹사용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최고이지만, 한국정부는 인터넷이 근본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온라인의 집단지성과 자정능력은 완벽하진 않더라도 기성 언론과의 보완과정을 통해 사회를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웹을 통제하는 정책을 만들어내더라도 우회하는 기술이 곧 등장한다.” “이메일, 메신저처럼 획기적 진전으로 여겨졌던 웹의 발명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다.” “웹의 개척자들은 이미 또다시 새로운 최전선으로 옮겨가고 있다.” 더욱이 세계적 규모에서 소통매체의 일체적 디지털혁명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의 인터넷소통양식은 호랑이 담배 먹던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시기가 금방 온다. 그 금방은 그야말로 금방일 수 있다. 영화나 시지각(視知覺)매체 전체, 청각시스템은 물론이고 일체의 엔터테인먼트 아트나 유비쿼터스의 전지구적 동시적 대규모 복합확신양식 등이 아까 말한 신경 내지 신령컴퓨터체제와 연속되리라 한다.
여기에 불교 특유의 뇌이론, 마음이론 등이 그 결정적 토대를 이루리라고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흥분 속에서 크게 예상하고 있다. 어찌할 터인가?

동학개념이었던 ‘기화신령(氣化神靈)’ 즉 물질·생명·영성·신령의 연속적이고 다층적인 확산·수렴 생성구조를 토대로 한 영적생명문화인 풍류(風流)와 그 효과적 압축인 극소체, 나노네트워킹까지 가능해지고 그것이 우리 정신생활의 애틋한 보조물이 되며 이 모든 것을 포함해서 총괄적인 디지털매체혁명을 헐리웃의 메이저영화사 몇 군데와 UCLA엔터테인먼트 아트학과 공동으로 추진하는데에 특별히 IT강국이자 디지털신화학과 창의적 소통력이 왕성한 한국과 헐리웃만의 독자적 컨퍼런스를 올해 10월말 LA에서 개최한다고 한다.
요컨대 헐리웃은 이제까지 고비용·저효율의, 백인중심의, 신화도 없고 미래의 방향성도 불분명한 낡아빠진 극영화생산실부라는 과거를 청산하고 전세계, 전 역사, 전문화적 ‘디지털화엄세계’를 펼치는데에로 한국을 초청한다는 이야기인데 필자 본인이 바로 이날 여기서 기조연설을 하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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