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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근현대 불교사]54. 9·7해인사 승려대회

기자명 법보신문

정권 예속 사슬 끊은 불교계 첫 자주화 선언

 
1986년 해인사에서 개최된 전국승려대회. 2000여명이 운집한 이 대회에서 10·27법난 해명, 불교 관련 악법 철폐 등 불교계의 자주화를 선언하였다.

86년 해인사에 2000여 승려 운집…10개항 결의
불교 관련 악법 철폐-10·27법난 진상 규명 요구
혈서 쓰고 일주문 밖 가두시위…각계의 성원 쇄도
불교계 민중 운동 심화…종단 지도부 배신은 ‘흠’

해인사 승려대회에 참석한 스님들이 혈서를 쓰며 불교자주화 결의를 다지고 있다.(왼쪽)

1986년 9월 7일 해인사에서 개최된 전국승려대회는 현대 한국불교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다. 이 대회에서 논의되고 결의된 사항은 종래 정치권에 예속된 듯 한 인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불교계가 자주화를 선언하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 전국승려대회는 1980년대 시작된 일련의 민중불교운동 즉 ‘사원화운동’과 전국청년승려육화대회, 민중불교연합, 정토구현전국승가회의 활동의 연장선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해인사에서 개최된 전국승려대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10가지 사항을 결의하였다.
△현 정권은 불교관계 악법을 즉각 철폐하라. △현 정부는 실질적인 경승 내규를 즉각 제정하라. △사원의 관광 유원지화를 즉각 중지하라. △(5·3인천 사태로 구속 중인)성연 스님을 즉각 석방하라. △부천경찰서 성고문의 진상을 규명하라. △총무원 및 각 사찰의 기관원 출입을 즉각 중지하라. △현 정부는 교과서 왜곡과 편파성을 즉각 중지하라. △언론의 편파·왜곡보도를 즉각 시정하라. △민족경제 침탈하는 수입 개방을 즉각 중지하라. △현 정권은 10·27법난을 책임지고 해명하라.
10가지 결의 사항은 그간 불교계에 맺혀 있던 불만 뿐만 아니라 사회부조리의 제거 등 대사회적인 발언도 포함되어있어 주목을 끌었다.
이 가운데서 불교계 큰 불만은 사찰재산관리법이었다. 1962년에 제정된 사찰재산관리법은 일제시대 사찰령을 폐지시켰으나 그 뿌리를 사찰령에 두고 있었다.
이 법은 불교 단체의 등록을 의무화하였고, 대표자의 취임 등록을 강제하며 이를 위반하였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되어있었다. 이 법은 비구·대처승 간의 분쟁이 한창일 때 사찰에서 요식·위락 영업행위 등으로 불교계의 재산과 자율권이 황폐화 되어가던 시기에 제정되었기 때문에 비구승들에게는 한 때 환영을 받았다. 총무원장이나 주지의 권한을 법으로 보장해 주었기 때문에 대한불교 조계종이 자리를 잡아가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계종단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다음에는 정치 권력이 불교계의 재산관리에 깊이 개입하게 됨으로써 자율적인 발전을 제약하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이 법령의 개폐운동이 70년, 80년, 81년 세 차례에 걸쳐 제기된 바 있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경승제는 경찰서에 경목(警牧 : 목사가 경찰서 유치장을 방문하여 선교활동을 하는 것을 말함)처럼 경승제도를 실시하겠다는 것이 4월 11일 내무부에 수용되어 경승단이 발족되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활동 근거가 없어 불교계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또 교과서나 TV 등에서 대불교 관계 서술이나 보도를 할 때 기독교와 비교해서 편파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즉각 시정하라고 주장하였다. 이 같은 주장은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일반인들에게 불교의 교리를 올바르게 인식시키려는 노력으로 불교계로서는 절박한 사안이었다. 그리고 전두환 군사정권 치하에서 10·27법난의 진상을 규명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10·27법난은 오랜 전통을 가진 종교인 불교를 정권이 예우하지 않고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이 군화발로 법당을 유린하였다. 이것은 군사정권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불교계를 제압하여 정권의 하수인으로 묶어 놓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불교계는 이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모든 승려들의 이름으로 항거한 것이다.
집행위원장 월주 스님은 “오늘의 대회는 불교관계법 폐지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이 땅의 진정한 민주주의와 민족의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회의 의의를 역설하였다. 대회장인 해인사 주지 법전 스님은 “열과 성을 가지고 한국 불교의 역사적, 종교적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용맹정진 할 것”을 당부하였다.
또한 8월 25일 취임한 서의현 총무원장은 “불교 자주권을 되찾기 위해 호국불교의 개념을 특정 정권이 아닌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바꾸겠다”고 천명하였다. 현직 총무원장이 정치권과 연결 고리를 끊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불교계를 만들어 가겠다는 이 약속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번복되지만 당시 불교계로서는 폭탄과도 같은 선언을 한 것이었다.
결의문이 낭독되는 중에 금산사에서 온 지광 스님은 스스로 손가락을 잘라 “불자여 깨어나라!”는 혈서를 씀으로써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대회를 마친 스님들은 대웅전을 돌아 일주문 밖으로 나가 가두시위를 벌였다. 매표소까지 3.5km에 이르는 동안 불교관계 악법 철폐와 독재 타도의 구호를 외쳤다.
해인사 전국승려대회는 교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민중불교연합은 “불교재산법 철페로 불교 탄압의 사슬을 끊자. (9·7 전국 승려대회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라는 지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대한불교청년회도 9월 10일 지지 성명을 발표하였고, 같은 날 동국대학교 졸업생 모임인 석림동문회에서도 전국 승려대회 결의 지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언론계는 해인사 전국승려대회를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였다. 동아일보는 9월 9일 “불교자주화 … 해인사의 폭탄선언”이라는 제하로 승려대회의 내용을 자세히 보도하였고, 조선·중앙·한국·매일신문 등 주요 일간지들도 이 사건을 자세히 보도하였다. 해인사에서 전국승려대회를 마치고 버스로 귀교하던 중앙승가대학 스님들은 안암동 로타리에서 현수막 문제로 교통 경찰관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교통 경찰관이 “이 중놈들…” 운운 하면서 승려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시비는 격화되었고, 경찰관은 무전으로 전경 1개 중대의 파견을 요청하였다.
경찰은 폭언의 사과를 요구하는 승려들에게 최류탄을 난사하는 폭거를 자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승려들이 발생하였고, 18명의 승려들은 강제로 연행되었다. 이 사건은 동아·조선·중앙·한국일보 등 일간신문과 KBS 방송 그리고 각 대학신문 기자들에 의해서 보도되었다. 9월 8일 오후 7시경 고대·연대·서울대·동국대 등 대학의 대자보에 이 사실이 실렸고 대학생들은 스님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신민당과 민주화추진협의회는 불교계가 추진하는 불교재산관리법 철폐와 민주화운동에 지지를 표명하였다. 중앙승가대학 스님들은 철야 농성을 계속하였고, 이 사실이 신문 지상에 보도되자 각계의 성원이 쇄도하였다. 이 사건으로 5명의 스님이 구속되고 10명은 불구속 입건, 3명은 훈방되었다. 청년 승려들은 농성 장소를 조계사로 옮기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날은 불교재산관리법 개폐문제를 놓고 유언비어가 난무하여 분위기가 경색된 상황이었다. 서의현 총무원장은 “만약에 불교재산관리법이 폐지되지 않거나 구속된 스님들이 석방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직접 중앙청 앞에서 분신을 하겠노라”고 강한 의지를 표명하면서 조계사에서 농성을 해산할 것을 요청하였다.
총무원장의 강한 의지표명을 접한 승가대 승려들은 개운사로 돌아와 농성을 계속하게 된다.
1986년 9·7해인사 전국승려대회가 가지는 의미는 4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오랫동안 정치권에 예속되어있던 불교계가 악법의 철폐를 선언하면서 자주화를 선언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계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새롭게 태동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둘째, 불교계가 산 속에 숨어서 생활하던 은둔에서 벗어나 현실 문제에 관심을 표명함으로써 사회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셋째, 불교가 현실 참여를 표방함으로써 불교계와 사회가 동질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단 것이다. 넷째, 현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승가의 단합된 모습을 과시함으로써 불교계의 위상 강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인사 전국승려대회가 불교계 민중운동의 폭과 깊이는 심화시켰지만, 종단 상층부의 현실인식은 투명치 못하였다. 실례로 당시 총무원장 서의현은 해인사 승려대회에서 불교의 자주화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1987년 11월에 전국 본말사에 국가 안정과 불교 진흥을 위한 기원법회를 봉행하도록 독려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불교를 이해하는 인물이 국정에 참여하여 불교계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호국불교의 전통을 계승하자는 발언을 하였다. 이는 해인사 승려대회의 정신을 완전 부정한 것으로 불교계가 가야할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순석(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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