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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 스님의 유식삼십송 강설]

기자명 법보신문

말라식이 육도윤회 각 단계 결정
집착 사라져야 평등한 지혜 도달

말라식은 유복무기에 속하며,
태어나는 곳에 따라서 그곳에 소속되고,
아라한의 경지인 멸진정에 들어가서
출세간의 도를 성취하여야 소멸된다.
(有覆無記攝 隨所生所繫 阿羅漢滅定 出世道無有)

이것은 제7송이다. 여기서 유복무기란 말라식의 성격을 말한 것이다. 유복이란 번뇌의 덮음(覆)이 있어 성인의 길로 나아가는 지혜가 장애를 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자체는 선악의 가치판단을 기록할 수가 없는 무기(無記)라고 말한다. 자아의 분별은 그 자체로는 선악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번뇌를 일으키고 스스로 고통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윤회는 반드시 요청되는 불교의 세계관은 아니지만, 대승불교 이후로 윤회는 중요한 논의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불교의 윤회는 천상, 인간, 축생, 아귀, 아수라, 지옥의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말한다. 자신이 태어나는 곳에 따라서, 자아의 이미지가 결정된다. 이를테면 축생은 축생의 표상에 대해서, 인간은 인간으로서 자아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이것에 따라서 각각의 정체성을 결정되는데,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말라식이다.

위의 게송에서 제3구와 제4구는 말라식을 어떻게 정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정화란 오염된 물을 맑게 바꾸는 일이다. 물론 더러운 물이나 깨끗한 물이나 동일하게 물이다. 제7식을 비롯한 모든 식은 무기로써 그 자체로 번뇌는 아니지만, 물들어진 관계로 지혜로 전환되기(轉識得智) 위해서는 일정한 형태의 명상수행이 요청된다. 제7식은 조복(調伏), 소멸(消滅)을 거쳐서 마침내 평등성지(平等成智)를 이룬다.
조복이란 번뇌가 활성화되지 못하도록 하는 작업이라면, 소멸은 고통을 완전하게 없애는 것이다. 조복이 마치 잡초를 일시적으로 눌러놓은 것 같은 상태를 말한다면, 소멸은 근본적으로 그 뿌리를 완전하게 근절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자아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면, 각각의 차별성이 없는 평등한 지혜에 도달하게 된다는 말이다.

제7식은 자아에 대한 집착이다. 이것은 우선 자아가 본래 존재하지 않음을 철저하게 자각함으로써 벗어날 수가 있다. 아라한은 바로 자아의 허구성을 터득한 단계이기 때문에, 조복의 단계라고 할 수가 있다. 자아에 대한 조복은 감정(受)과 사유(想)라는 두 가지의 번뇌를 소멸한 상태(滅盡定)를 말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종자의 뿌리를 잘라내지 못하였기에, 아직은 소멸의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니다. 선정이나 좌선의 상태에 있을 때는 번뇌가 단절된 듯이 보이지만, 일상에서 대상에 부딪치면 다시 종자가 활성화되어(現行) 번뇌가 일어난다.

그래서 아라한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수가 없다. 일상의 삶과 출가의 생활이 온전하게 통합된 출세간의 도를 얻어야 비로소 번뇌는 완전하게 지혜가 된다. 이때야 비로소 우리는 번뇌가 그대로 진리라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 자아에 대한 집착은 크게 두 종류로 분류된다. 하나는 아견이요, 다른 하나는 세계(法我見)이다. 아견은 아뢰아식에 의지하여 제7식이 일으킨 내용이고, 법아견은 잠재의식의 종자를 인연하여 일어난다. 아뢰야식의 주체적인 애착을 ‘자아’라 하고, 그것이 표층에로 현행되는 현상으로서 종자를 세계라고 하는 집착이 그것이다. 이 양자를 모두 벗어나 정화될 때를 출세간도(出世間道)라 한다. 이때야 비로소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장애 없는 지혜를 얻는다고 말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한계가 있고, 간화선의 수행에서 가능하다. 왜냐하면 위빠사나 수행은 감정이나 생각을 다루는 표층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본성을 자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간화선은 아뢰야식 종자의 심층수준까지 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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