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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제홍 박사의 新교상판석]⑮심법과 검법

기자명 법보신문

살인검과 활인검은 씀씀이 차이
검이 곧 마음이며 마음이 곧 검

80년대 중반에 모든 어린이 장난감이 위험할 수 있음이 매스컴에 심각하게 대두된 적이 있었다. 특히 중국무술영화에서 착안한 쌍절곤과 람보라는 영화에 나온 야전용 칼과 총은 비록 그것이 플라스틱 재료로 만들어 졌다할지라도 위험하기 마련이다. 그러자 세간의 비난과 경영난에 봉착한 장난감 제조회사에서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하였다. “우리가 만든 모형장난감은 인체에 전혀 해롭지 않은 재질로 만들어졌다. 단지 그 외형이 위험해 보인다면, 모든 가정에서 쓰는 부엌칼이 오히려 더 치명적일 것이다.” 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례에서도 우리는 모든 사물과 상황 인식에 대한 양면적인 입장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필자도 어린 시절에 동네친구들과 목검을 만들어 전쟁놀이를 하며 지냈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것이 위험하다고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있다면 그만 놀고 공부하라는 어른들의 꾸중이었을 것이다. 당시는 그러한 것들이 단지 놀이의 도구였지만, 현대의 각박해진 세상에서는 흉기로 인식하고 돌변하게 됨을 본다. 다시 말해 예전의 전쟁놀이에는 ‘우리’라는 질서의식이 있었고, 이를 통해 사회공동체에 적응하는 훈련을 해왔다. 그러나 극히 개인주의적인 현대에 와서는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는 ‘나’를 앞세우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즉 가치기준의 전도가 되어,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속의 ‘나와 우리’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불가의 무아(無我)란 바로 ‘나’가 아닌 ‘우리’라는 사상과 상통하는 면이 크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얼굴에 미소를 띄었을지라도 내심 악한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결단코 악한 사람일 것이다. 결국 외면이야 어떻든 간에 그 내면의 마음 씀씀이가 중요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처럼 마음의 씀씀이가 두 가지로 구별되기에, 이를 불가에서는 중생심과 불심이라고 하고, 유가에서는 인심과 도심이라고 부른다. 불가무술의 검법에서는 이를 특히 살인검(殺人劍)과 활인검(活人劍)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사회에서 법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생활태도를 착한 마음이라고 여길지 모르나, 모든 것이 연결되고 시공을 넘어선 마음의 세계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가 있음을 안다. 세상을 살면서 양심에 거리끼고 안타깝지만, 법과 관행이라는 미명하에 남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 하고 살아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이 깨어지고 또한 깨어져야만 하는 시대에 돌입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저 멀리 고비사막의 황사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흡이 곤란하게 되고, 잘 살아보자고 건설한 공장의 굴뚝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지구의 오존층을 파괴하고 있다. 또한 무모한 핵전쟁의 발발 시에 인류가 공멸한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너만의 문제, 나만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가 같이 공생하든가 아니면 공멸하는 ‘나’가 아닌 ‘우리’라는 선택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듯하다.

바로 이러한 근원적인 인생관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불가의 심법이며, 불가무술에서는 검법이라고도 부른다. 우리의 마음은 살아가면서 점차 주변의 사물에 대해 좋고 싫음을 가리게 되어 급기야 편향적인 성격을 나타내게 된다. 그러나 불가에서는 본래 마음은 그렇지 않고, 살면서 주변의 상황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인 나머지 그리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불가 심법에서는 남과 주변상황을 탓하지 말고 모든 원인을 자기의 마음씀씀이에서 찾으라고 말한다. 이것은 불가무술의 검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날카로운 검 자체는 아무런 의도가 없으나, 검을 잘못 사용하면 자기의 몸을 다치기도 하고 남을 해칠 수도 있다. 그래서 검법을 수련하는 동안에는 마음이 텅 빈 가운데 온전히 깨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만일 잠시라도 방심하면 그 결과가 어떨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검(劍)이 심(心)이요 심이 검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불가무술의 검법수련은 불가의 심법수련과 동일하게 취급된다. 그것은 우리가 조용히 앉아서 좌선을 하던 일상생활을 하며 움직이든 간에 우리는 마음 혹은 검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제홍 영국 뉴캐슬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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