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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효 칼럼]선종시대의 반철학적 사유[상]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는 존재자적 사고 방식 멀리할 뿐
존재론적 사고 방식 멀리하는 것과 달라

우리는 지금 본능이란 말을 왜곡되게 쓰고 있다. 본능은 인간에게 남아 있는 충동적인 육체적 경향을 지칭하는 것으로 읽고 있다. 성욕이 그것의 대표적 보기에 해당한다. 물론 성욕이 동물의 생물학적 욕망이긴 해도 인간의 성욕은 종족을 보전하려는 자연적 본능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성욕은 인간의 사회적 욕망이라고 읽어야 한다. 성욕은 동물처럼 어떤 일정한 주기의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니라 수시적이다. 성교는 근친혼의 금지는 물론 결혼식의 제도를 통하여 사회적 인정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성욕은 자연적 본능의 기원을 갖고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사회적 규범을 따른다. 성욕을 해결하려는 성교는 남들의 부러움과 인정을 받으려 하는 소유적 가치의 취득을 은연중에 노린다. 사회가 공인하는 성교가 아니라도, 모든 성욕은 자연적인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적 지배욕의 표현이다.

자연은 살려고 하는 생존욕망(의지)을 위하여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자발적인 힘을 발양한다. 참선은 자연의 원초적인 그 힘을 일깨워 우주적인 일심과 회통하려 한다. 자연의 그 힘이 존재론적인지 소유론적인지 애매모호하다. 동식물이 자기의 생존을 위하여 타자의 에너지를 취득해야 한다. 이것은 소유론적이다. 그러나 동식물은 타자의 기(氣)를 흡입하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또한 타자에게 준다. 받으면서 준다. 이것은 마치 자연에서의 존재양식은 받으면서 그 이상을 주는 거래와 같다. 인간사회의 거래는 시장에서처럼 주는 것보다 오히려 이윤이 많은 것을 선택하는 경제거래인데, 자연의 교환은 그만큼 받고 그 이상을 주고 가는 비경제적 교환이다.

선종은 인간이 이와 같은 자연의 우주심(일심)에 참여하여 비경제적 교환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자연의 본능적 사고방식을 터득하는 길을 익힌다. 그 사고방식이 바로 불성의 존재방식에 속하기에 선종은 인심이 사회생활의 감옥에 갇히지 않고, 바로 자연처럼 본능적으로 불성의 꽃을 피워 올릴 것을 발원한다. 그러나 선종은 사회생활을 마음에서 지우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종은 송나라 대혜종고 선사의 말처럼 시중의 중생들과 함께 활동해야 살아 있게 된다고 한다. 사회적 무의식인 중생의 말나식이 우글거리는 바로 거기에 자연적 무의식인 아뢰야식의 원본인 공사상이 실존적으로 체험되기 때문이다.

공사상이 실존적으로 체험되기 위하여 요별경식에 의한 존재자적인 생각이 다 중단되어야 한다. 존재자적인 모든 명사적 분류가 사라지고 그 뿌리가 하나로 존재하고 있다고 밖에 달리 표시할 수 없는 ‘구지일지(俱一指=불법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단지 구지화상이 손가락을 하나 들어 보이다)’의 행위는 선이 지닌 본능적 깨달음을 알린다. 존재의 동사가 삼라만상에 다 술어로서 적용된다는 것은 바로 삼라만상이 원효대사가 기술했듯이 모두 허공이라는 ‘무본지본’(無本之本=바탕이 없는 바탕)에 담겨 있다는 것과 같다. 이 허공이 아뢰야식의 본바탕이다. 이 이뢰야식의 청정한 본바탕은 원효대사가 읊은 것처럼 제9식으로서의 아말라식이다. 아말라식은 아뢰야식이 존재자적(의식적)인 사고방식으로 물들지 않으면 된다. 그것이 불성이고 공성이다.

가끔 불교가 공사상을 강조하니까 불교가 존재론적 사고방식을 아주 멀리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착각한다. 불교는 존재자적인 대상적 사고방식을 멀리하고 소유론적 생각을 기피하지, 결코 존재론적 사고방식을 도외시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아직도 이것을 오해하는 경향이 짙다. 이것은 틀렸다.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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