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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근현대 불교사]55. 한국 현대사에서 비구니 위상과 역할

기자명 법보신문

포교·복지 분야 두각…‘비구니팔경계법’ 족쇄

조계종 본사·종회 요직 비구승 독식
불교 정화·개혁 때마다 말없이 앞장
02년 비구니회관 완공…주역 발돋움
부당한 대우 여전…총림 건립이 과제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여성들의 위상과 역할은 크게 강화되었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여성 대통령과 수상이 나와서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나라도 여성 장관과 국회의원, 대학 교수 등 각종 전문직 사회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늘어가는 추세이다.

그런데 종교계만은 예외이다. 불교는 말할 것도 없고, 가톨릭과 개신교의 그리고 이슬람교 경우도 여성 지도자는 극히 드물다. 그것은 불경과 성경, 코란에 모두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에서 여성을 경시하는 까닭은 창시 기원이 모두 고대 농경사회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농경사회는 남성 중심 사회이기 때문이고, 지역에 따라서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부인들의 투기가 문제시 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여성들에게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원인의 하나가 될 것이다.
부처님은 처음에 여성의 출가를 안정하지 않았다. 이모이면서 자신을 양육한 마하파자파티가 출가를 허락하여 달라고 하자 부처님은 세 번이나 거절하였지만 양모의 간청에 못 이겨 승락을 하면서 비구니팔경법을 만들었다.

비구니팔경법은 ‘비록 100세 비구니일지라도 처음 수계한 나이 어린 비구를 보면 일어나서 맞이하고 예배하여야 한다’를 비롯해서 비구니가 비구승에게 갖추어야 할 8가지 예법이다. 비구니는 비구승을 비방해서도 안되고, 비구승으로부터 계를 받아야 하며, 비구승에게 정기적으로 가르침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의 대체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어떠한 가르침도 시대에 따라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은 가르침이 되어 변화하는 세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후하게 된다. 우리는 그러한 재해석의 사례를 중세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서양의 종교개혁에서 보았다. 면죄부를 파는 로마 교황청의 행위를 비난하고 개혁을 주장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가톨릭은 어떻게 되었을까. 부처님의 가르침이 재해석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기 2552년인 오늘날도 여전히 팔경법은 유효하다.

오늘날 불교계에서 비구니의 역할과 현실을 살펴보자.
조계종단에서 밝히고 있는 승려의 수는 2007년 현재 비구 5,292명, 비구니 5,209명으로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전국 25개의 교구 본사 주지 가운데 비구니는 단 한 명도 없다. 뿐만 아니라 종단의 법안을 입안하고 의결하며, 주요한 사안을 심의하는 중앙종회의 구성을 보면 81명의 재적 의원 가운데 비구니가 선출직으로 의원이 되는 경우는 없다. 구성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비구니에게 할당되는 종회의원 수는 직능대표 10명 뿐이다. 비구니 가운데는 외국에 유학하거나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종립대학과 승가대학 그리고 많은 불교대학에 교수가 된 승려들도 있다. 비구니 스님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 가운데는 비구들도 많다. 포교사업과 사회복지 사업에는 비구보다 비구니의 역할이 돋보인다.

유치원을 운영하고, 도심의 포교당에서 지쳐서 찾아오는 불자들에게 차와 다과를 내오고 현실에 위안이 되는 설법을 하는 데는 아무래도 비구 스님보다는 비구니 스님이 나을 것 같다. 생활보호대상자와 소년·소녀 가장, 장애인, 노인들을 위한 실버타운 운영 등 소외 계층과 불우 이웃을 돌보는 사회복지사업을 누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비구 스님들이 이러한 일을 못한다는 것이 아니고, 비구니 스님들이 보다 잘 운영하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가신도는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은 실정이다. 이처럼 불교계에는 비구니들과 여성 불자들의 역할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서 전국의 비구니들은 위상 강화와 대중포교를 위하여 비구니 단체를 조직하였다. 1968년 1월에 대한불교비구니우담바라회발기위원회가 결성되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설립취지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설립 목적을 밝히고 있다.
‘삼보의 법통은 청신(淸信)의 남녀가 한 가지로 수도와 포교에 몸바친 과보(果報)이니 구태여 피아를 가름은 부당하다. 그러나 우리 비구니는 항상 소외된 역사의 뒤안길에서 부처님을 모셔왔다. … 우리는 스스로의 자세를 고공무아(苦空無我 :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모든 것은 그 실체가 없다)로 수련하여 확립하고 용맹정진으로 중생제도의 떳떳한 전위가 될 것을 다짐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3대 강령을 채택하였다.△총림의 건립, △포교의 합리화, △복지사회건설. 이 강령 가운데 포교의 합리화와 복지사회건설을 위해서 비구니들은 많은 노력을 경주하여 성과를 거두었지만 총림 건립은 아직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총림이란 강원, 선원, 율원을 모두 갖춘 유서가 깊고, 규모가 크며, 많은 승려들이 거주하는 사찰을 말하며 해인사·통도사·송광사·수덕사·백양사를 5대 총림이라고 한다. 비구니 총림이 건립되지 못하는 까닭은 총림에는 방장이 있어야 하는데 본사 주지보다 격이 높은 방장을 비구니에게 허락할 수 없다는 비구승들의 반대 때문이다. 이 취지문은 오랜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불법을 전하고,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헌신해 온 비구니들의 소망이 잘 드러나 있다. 우담바라회는 1985년 9월 5일 석남사에서 전국비구니회로 재편되었고 1990년부터는 기관지로 『비구니』라는 회보를 발행하여 비구니들의 동정을 소개하고 있다.

전국비구니회는 1995년에 전국비구니회관 건립을 결의하고 전국에서 후원금을 모금하여 1998년에 기공식을 가지고 2002년 5월에 강남구 수서동에 3층의 법룡사라는 절을 완공하고 점안식을 가졌다. 이듬해 8월 전국비구니회관 개관기념 법회를 가졌다. 전국비구니회는 2004년 6월에 제8차 세계여성불자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고 여성불자들의 교육과 수행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하는 학술포럼을 개최하고 그 결과물을 단행본으로 발간하였다.
전국비구니회 회장이자 승가대학 교수인 본각 스님은 1999년 11월 9일 중앙승가대학에 비구니연구소를 설립하고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비구니들의 행적을 밝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비구니연구소는 불경에 나타난 불타의 평등관에 근거하여 새 시대 여성과 여성 수행자에 대한 보편적, 인류애적 기준을 구축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비구니들의 행적을 수집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의 성과는 『한국 고·중세 불교여성 비구니 자료집』·『신문기사로 본 한국 근현대 비구니자료집』·『한국비구니수행담록』·『한국비구니명감』 등 일련의 자료집 발간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작업은 한국비구니의 역사를 정립하고, 비구니 인명사전을 발간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비구니의 행적과 사상에 대한 연구는 지극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비구니들은 1950년대 초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종단 불사에 참여하여 큰 역할을 하였다.

1954년 이른바 ‘정화불사’로 불리는 비구승과 대처승의 분쟁 사태 때 비구니 100여명은 조계사 뒷마당 빙판에 엎드려 기도와 투쟁을 하였다고 한다. 금광·수옥·법일·성우·연진·혜운·자호·묘전·묘찬·혜춘·인홍 등을 비롯한 많은 비구니들은 이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1954년 11월에 개최된 제2회 임시종회에서 비구니 종회의원으로 선출되어 비구들과 함께 전국승려대회를 준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비구니들은 1955년 8월 전국 632개 사찰 주지를 비구니로 임명하였고 본사의 주지로 내정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불교계는 대구 동화사에 전국비구니총림을 개설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 사태가 끝난 다음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고 비구니들의 공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더구나 동화사마저도 운문사와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1994년 서의현 총무원장 3선을 저지하는 개혁불사 때 단식 농성을 후원하고 마스크를 끼고 스크럼을 짜고 투쟁하는 대열에 비구니들은 동참하였다. 불교계는 급박한 사태에 직면하면 언제나 비구니들에게 동참을 요구하였고 비구니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지만 상황이 종결되고 나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부처님은 “여자는 자제력이 없고, 질투심이 많으며, 지혜가 적다”고 하셨다. 그런 까닭에 수행을 하더라도 정각을 이루기가 힘듦으로 공석에 나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비구가 비구니의 제자가 되는 세상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선택되어진 단지 비구니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불교계의 현실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김순석(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원)


1985년 10월 수원 봉녕사에서 개최된 제1회 전국비구니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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