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칼럼]지구가 돈다는데
[이종찬 칼럼]지구가 돈다는데
  • 법보신문
  • 승인 2008.10.2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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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에 빠지면 진실을 놓치기 쉬워
‘무명서 벗어나라’ 가르침 현대인의 등대

며칠 전 안면도의 해변에서 하루 밤을 묵어 보았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도 깊어진 해수욕장의 썰렁함은 지난 철의 북새통을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고적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밀려오고 밀려나는 조수의 드나듦이나 뜨고 지는 태양의 일상에는 추호의 변화도 없으리라.

마침 날씨가 쾌청하여 서해의 낙조를 제대로 맛보았다. 바다로 내려앉는 붉은 해의 수레바퀴를 보면서 풍덩하고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였다. 이것이 바로 하루라는 시간적 단위가 되는 낮 시간의 종말인 것이다. 그러면서 이 뒤는 내일이라는 시간의 준비 기간이기도 하다.

여기서 잠시 나는 나의 사색의 틀에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여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 일몰이라는 해가 지다의 표현이 어디에 기준을 둔 것인가. 해가 어떻게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는 말인가. 우주질서를 그대로 놓아두고 올바르게 표현한다면 해가 진 것이 아니라, 지구가 솟아오른다 함이 정확한 표현이니 일몰이 아니라 지용(地涌)이라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일상의 생활 관습이나 보편적 경험으로 사물을 판단하다 보면 존재 자체의 진실을 놓치고 말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일상적 경험의 사실은 해는 지나가고 내가 발 딛고 있는 땅은 움직이지 않는 고정으로 현실을 고착화하고 있기에 해가 지고 뜨는 것이 현상이지, 땅이 위 아래로 솟거나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고 단정하게 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하면 나의 시선이 고정된 물체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또한 시선이 물체에 머물러 있는 고정이 아니라, 내 눈이 시선에 머물러 있는 고정으로 눈 자체의 혜안적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마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시선이 머물러 있듯이.

요즘 물질적으로 삶의 자산이 풍부해 지니 현재의 삶에서의 건강에 지나치게 유념하는 경향이 있어 여러 가지의 신체의 단련 기구들이 생산되고 있다. 소위 런닝머신(뛰는기계)이라 하여 고정된 장소에서 아무리 달려도 전진됨이 없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기현상을 보인다. 이 원리가 바로 내가 길을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뒤로 가는 역리적 현상이다.

여기서 우리는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불가의 권고를 이해하게 된다.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갈 때 다리가 흐르지 물이 흐르지 않는다.[人從橋上過 橋流水不流]”라 하는 선림의 용어를 되새기게 된다. 물은 흐르고 다리는 부동이라는 일상적 경험에 매달리다보면 다리가 흐른다는 말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하지만 시선을 물에다 고정하면 물이 정지되고 다리가 흐르는 것을 쉽게 느끼게 된다. 집착을 여의라는 말은 이래서 진리이고, 배움이나 수양을 지향하는 이에게는 바로 초보적 교시이다.

해가 고정이듯이 우리의 몸을 공중에 고정시키면 지구의 넓은 공간이 한 걸음의 거리도 되지 않는다. 옛날 어른들이 공간적 거리를 단축시키는 축지법(縮地法 땅을 줄이는 방법)을 이용하여 먼 거리도 단숨에 오갔다는 말은 어쩌면 이러한 공간 정지의 기술이 있었음은 아니었을까.

이를 현실로 증명하는 것이 일정 궤도에 머물러 있는 우주선이다. 정지된 우주선은 정지된 그 자체로서 하루에 지구의 이 끝 저 끝을 오고 가고 있지 않는가. 어둠에서 벗어나라는 깨달음의 가르침인 불가의 교육은 이래저래 현대인을 미몽에서 벗어나게 하는 등대이다.
 이종찬 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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