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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아프리카의 수행자 동봉 스님

긴 수염이 매력적이던 오래전 내 기억 속 스님

포교 위해 오지로 떠난 스님 모습 너무 그리워

 

처음 불교를 접하고 사찰예절을 배웠는데 스님을 만나면 3배의 예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스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뵙기가 쉽지 않았다. 청년회에서 철야정진으로 1000배를 한다고 사당동 원각사로 갔다. 지금이야 철야정진하면 당연히 3000배를 하겠지만 당시 우리들에게는 천배도 무척 힘든 수행이었다. 하지만 이날 이후 매달 철야정진이라는 이름으로 셋째 주 토요일은 사찰을 찾아다니면서 절을 했는데 그때가 내 일생에서 가장 신심이 충만했던 시기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천배 정진을 할 때 처음으로 스님께 절을 했는데 복이 많아서인지 동봉 스님께 절을 하였다. 당시 스님께서는 사명당처럼 길게 수염을 기르고 계셨는데 그 풍모가 어찌나 수려했던지 아직도 그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스님이 머무시는 방에는 세 벽 가득 높은 책장에 책이 가득했고, 스님의 법문은 그 많은 책의 정수만을 전하는 듯 우리 마음에 알알이 들어와 박히면서 신심의 씨앗이 되었다. 언제나 잔잔한 미소를 지으시며 여유 만만하게 지내시는 모습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어쩌면 내가 출가의 결심을 할 때에도 처음 대한 동봉스님의 아름다운 모습이 큰 작용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스님과 사제의 인연을 만들지는 못하였지만 출가 후에도 항상 스님의 근황이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께서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근처 고산지역 오지에 보리가람이라는 절을 짓고 참선을 가르친다는 얘기를 부처님오신날 특집으로 방영된 방송으로 보고 다시 뵙게 되었다. 한때 수염 때문에 종단의 지적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기르던 수염을 자르셨다고 들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지내고 계신 스님은 처음 출가할 당시 내게 더없이 멋진 모습으로 남았던 그 이미지 그대로 길게 수염을 기르고 계셨다. 모르긴 해도 삭발하고 잿빛 물들인 승복의 신비로움 못지않게 스님의 긴 수염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경이로움으로 다가가고 있을 것이다.

출가 이후부터 그토록 오래 기다린 덕분일까 어느 날 스님께서 약천사로 참배를 오셨다. 많은 이야기로 긴 세월의 공백을 메우면서 꼭 한 번은 스님이 계시는 킬리만자로로 배낭을 메고 가리라 다짐했다. 비행기, 긴긴 시간의 버스여행, 그리고 택시…. 스님이 계시는 곳은 어쩌면 세상의 오욕락이 다다르지 못한 곳일 거란 생각이 들 정도의 오지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어떤 인연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지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아프리카 산속에서 스님께서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계실게 틀림없다. 지난번 아프리카로 갈 때는 바람을 다 뺀 축구공을 많이 사가지고 가서 그곳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하셨다. 정말이지 아프리카의 성자가 따로 있을까? 킬리만자로의 초원에 기우는 석양에 기린의 목 그림자 더욱 길게 드리워질 때 어린 아이들과 공을 차면서 뛰어다니시는 스님의 모습을 상상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고 싶은 생각에 사무친다.

이렇듯 강렬한 끌림은 미지의 대륙에 대한 호기심도, 때 묻지 않은 오지에 대한 순수한 동경도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초원을 가로질러 온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긴 수염을 흩날리고 빙그레 미소 지으시는 내 기억 속의 첫 번째 스님께로 향한 마음의 열정은 좀처럼 감춰지지가 않는다. 훗날 언젠가 다시 만나 예전처럼 법문을 들으며 아름다운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스님이 계시는 아프리카로 가기로 한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정말 올해는 축구공과 얼마간의 학용품이라도 보내 드려야 나의 마음이 진정 될 것만 같다. 

성원 스님 제주 약천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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