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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진솔하고 간결한 사문의 판단력을 배우다
뚜렷한 견해를 가진 진학 스님

분명한 삶의 자세를 가진사숙 스님의 모습을 보며

개인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올바른 문중 개념 되새겨

출가이후 문중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을 때 몹시 당황스러웠다. 정말이지 중국영화에서나 보듯 도력 깊은 스님을 만나 합장하고 ‘사부’라고 부르면 스승이 되는 줄 알고 출가했으니 문중이란 개념 앞에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만큼 나는 은사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특히 일타 큰스님은 많은 상좌를 두셨기에 속가로 말하면 삼촌뻘인 사숙 스님들이 너무 많아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늦게 출가한 사숙이 문도모임에서 윗자리에 앉을 때면 한국 승단만의 독특한 문중 개념을 받아들이고 이해해야만 했다.

부처님 당시에는 출가 전 세속의 나이와 직위는 완전히 잊고 오직 출가 순으로 좌차가 결정되었다. 출가 전 우바리 존자는 이발사였는데 당시 이발사는 사회적 신분이 매우 낮았다. 자신이 머리를 깎아주던 왕자들이 출가 한다고 하자 자신도 부처님께 가서 출가하였다. 뒤늦게 집안사람들과 인사를 마친 왕자들이 출가하게 되자 부처님께서 그 서열을 이발사 아래로 두고 선배에게 예의를 갖추게 했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왕자들의 반발을 충분히 설득하여 승가의 전통을 확립하여 주셨다. 하지만 문중화된 한국 승단은 이러한 부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마저 넘어선 불문율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문중화된 승단의 모습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 속에서 좋은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형이니 사숙이니 하는 관계로 처음 만나 손쉽게 친밀감을 느끼고 사심 없이 서로 돕고 이끌어주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중의 개념으로 만났지만 올곧은 길로 나를 이끌어주시는 스님이 계신다. 제주 선림사 진학 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 너무나 진솔함에 깜짝 놀랐다.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야기며 예전 약천사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의식이 투명한 출가사문의 모습이구나’하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그 후로 나 자신도 스님처럼 누군가와 이해득실을 따지지 아니하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얘기해 보려하지만 투명하지 못한 삶을 살면서 얘기만을 투명하게 한다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먼 이방과도 같은 제주도에 살면서 지칠 때면 가끔 선림사를 찾는다. 현재는 불사중이지만 언제나 찾아가면 긴 시간을 할애하여 주시고 사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좌표가 될 덕담을 나누어주신다. 많은 불교계의 제반 문제에 있어서도 분명하고 단아한 의사결정을 하시고, 옳다고 생각되면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으시고 분명하게 의사를 표현하시는데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이다.

서로 간의 깊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사회 속에서 자신의 뚜렷한 견해를 분명하게 드러내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스님은 언제나 승가정신을 잘 반영한 올바른 판단력으로 우리들을 이끌어주신다. 이러한 판단력은 성실한 일상과 늘 부처님을 가까이모시고 계행을 잘 지키며 살아가시는 삶을 살고 있으시기에 가능 하다고 생각한다.

스님은 일타 큰스님께 건당을 하셨는데 언젠가 건당하게 된 사연을 들으면서 정말 스님다우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수계 은사님과 견해가 달라 자신의 뜻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건당을 결정하셨다고 했다. 많은 스님들이 개인적인 감정과 시세에 따라 새롭게 은사를 정하는데 스님께서는 보다 분명한 삶의 자세로 일타 큰스님을 모시게 되어 내게 사숙이 되셨다.

문중이라는 개념이 때로는 출가자의 정체성에 혼돈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진학 사숙과의 인연을 생각하면 많은 위로가 된다. 

성원 스님 제주 약천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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