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간 20주년]법보신문이 걸어온 길

기자명 법보신문

개혁-종교편향 근절-수행 열풍 견인…20년 변함없는 리더

1988년 첫 출발을 알린 법보신문은 20년간 한국 현대 불교사와 걸음을 함께했다. 개혁의 선봉, 불교의 위상 강화, 자비의 사회화를 선두에서 이끌어온 법보신문은 굴하지 않는 시대 사명감과 멈추지 않는 노력으로 새로운 시대의 장을 열며 때론 어둡고 외로운 이들의 도반이 되어 주었다.


1988년 5월 16일 세상에 첫 발을 내딛은 「법보신문」이 던진 제일성은 ‘청정’이었다. 초대발행인 월산 스님은 창간사를 통해 “잠들지 않고 쉬지 않고 게으르지 않으며 굽힘이 없고 쓰러짐이 없고 부서짐이 없는 목탁을 만들었다”며 “썩은 치아로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는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는 이들로부터 잘못된 일을 바로 잡아 나가는 일이 선결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법보신문」이 걸어온 지난 20년의 역사는 바로 이 창간 정신의 구현에 다름 아니었다. ‘새롭게 일어서는 불교’라는 「법보신문」의 창간모토 역시 바로 이런 정신의 발현이었다.

건전한 비판조차 ‘내 식구 감싸기’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허울 아래 외면당하는 교계의 풍토를 과감히 떨쳐내고 교계 안팎의 현상들에 대해 불교 정신에 바탕한 심도 있는 분석과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 특히 총무원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재야단체, 인권단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정부와 공공기관 등의 종교편향과 부당한 처사에 대해서는 파사현정의 자세로 대응했다. 동시에 안으로는 불교계의 자주성과 단결, 개혁을 촉구했다. 이러한 「법보신문」의 기치는 1994년 종단개혁을 앞두고 사부대중의 의지를 결집해 나가는 구심점이 되었고 「법보신문」은 개혁과 정화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종권의 탄압으로 신문 발행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야 했고 「법보신문」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편집국뉴스」를 발행, 개혁의 열기를 더욱 드높여갔다. 이러한 노력은 조계종의 환골탈퇴를 바라는 대중들의 개혁 열기를 더욱 고조시켜 개혁종단 출범이라는 역사의 한 획을 이룩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창간 초기부터 훼불 문제를 비중 있게 다뤄온 「법보신문」은 장로 대통령인 김영삼 정권 출범 이후 더욱 노골화된 종교편향-훼불 행위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부활절을 이유로 검정고시 일정 변경, 대통령의 국방부 예배 참석 등 정부와 정권에 의한 종교편향사건을 보도하며 대통령을 향해 직설적으로 문제를 제기, 국방부장관의 사과를 이끌어내는 등 종교편향에 단호하고 정권 앞에 당당한 불교의 위상을 견고히 세워나갔다.

「법보신문」은 ‘자비’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구현되도록 관음의 천수천안을 대신하는 일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94년 굶주림과 내전에 지쳐있는 ‘르완다 난민 돕기’, 1996년 수해로 인해 식량난에 처해있던 ‘북한동포돕기’, 1997년 연속기획보도 ‘북한 동포에 자비를’, 1998년 탈북자 실태파악 현장 르포를 비롯해 IMF사태로 고통에 빠진 이웃을 돕기 위한 ‘자비연등달기’ 등을 통해 해외난민과 북한동포, 우리 이웃돕기에 불씨를 당겼다.

2001년에는 제이티에스와 함께 ‘통일 자비릴레이 캠페인’, 불교기아도움기구와 함께 ‘콩고난민에 자비의 손길을’, 2003년 무의탁-소년소녀 가장을 돕기 위한 캠페인 ‘아름다운 만남’을 진행한데 이어 2008년 화계사와 함께하는 외국인노동자 지원 사업 ‘이주민에게 희망을 보시합시다’ 캠페인까지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부응해 불교의 자비정신을 구현하는데에도 앞장섰다.

이러한 「법보신문」의 힘은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전문성을 추구하는 성실함, 그리고 동체대비에 바탕한 상생의 믿음에서 나왓다.
창간 초기부터 소식 전달이라는 단순 보도를 거부하고 해설과 분석의 지면을 늘리는데 주력, ‘집중취재’ ‘커버스토리’ 등 심층보도를 고유의 색깔로 견지해 왔다. 심층보도의 대상에는 성역이 없어 장삿속 천도재, 호화형 토굴 등 서로 못 본척하며 묵인하던 교계 내부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2002년부터는 동국역경원·문화관광부와 공동으로 ‘팔만대장경 독후감 현상 공모’를 시행, 경전의 대중화에도 앞장섰고 특히 2004년부터는 5개면으로 구성된 수행 섹션을 마련, 수행을 통한 자정과 상생, 사회 대안 제시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해 나갔다.

2005년 「법보신문」은 불교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우뚝 세웠다. 2005년 11월 9일 교계 안팎의 지지와 격려 속에 한국불교 언론 사상 최초의 독립언론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특정 사찰이나 종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사부대중이 발행하고 전 직원이 주인 되는 언론으로 거듭 성장한 「법보신문」은 사옥을 남산 후암동으로 이전, ‘목멱골 시대’를 선언하며 제2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견고히 했다. 2006년 10월 한국불교대원회와 공동으로 남산 대원정사에 법석을 마련하고 우리시대 최고의 선지식들이 쏟아내는 감로 같은 사자후를 세간에 전한데 이어 2007년 지면개편을 단행, 무비판적으로 사용해오던 지면의 표제어를 모두 불교용어로 교체하고 기존의 수행섹션을 진일보시킨 바라밀 섹션 7개 면을 신설, 생활 속 수행현장과 인물을 지면에 담아내는 등 수행하고 실천하는 불교를 향한 걸음을 더욱 굳건히 했다.

특히 2008년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쏟아져 나온 종교편향 사건에 대해 「법보신문」은 파사현정의 자세로 단호히 대처했다. 국토해양부 지도에서의 사찰 누락사건에 이어 경기여고의 불교문화재 매립 사건을 단독으로 보도하며 공공기관과 공권력이 자행하는 종교 편향의 심각한 수준을 사회이슈화 시켰다. 「법보신문」은 이후에도 우리사회 구석구석에서 자행되고 있는 종교편향사건을 빠짐없이 보도함으로써 불자들에게 경종을 울려, 마침내 20만 불자가 운집한 가운데 2천만 불자의 목소리를 모아 정부의 종교편향을 규탄한 ‘범불교도대회’가 성사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이를 계기로 「법보신문」은 종교편향 사건과 대정부 문제 보도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교계 대표 최고 언론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견고히 다졌다.

창간 20주년을 맞아 「법보신문」은 개혁이 필요한 곳에 비판과 대안을,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자비의 손길을, 교육과 수행이 이뤄지는 곳에 관심과 격려를 보내는 힘찬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살아 숨 쉬는 불교의 목소리’ 그 가운데 「법보신문」이 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