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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주년]법보신문을 빛낸 논객들

기자명 법보신문

당대 대표 저명 논객 영입
정론-시평-기명칼럼으로
세상 읽는 바른 안목 제시

법보신문을 교계 대표 언론으로 성장시킨 또 하나의 힘은 언제나 최고를 자부하는 논객들로부터 나왔다. 당대 최고의 논객을 영입하고 새로운 필자를 개발하는데 두려움이 없었던 법보신문은 법보정론, 시평, 법보시론 등 시대에 따라 이름을 달리했던 시사 논설과 필자의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타이틀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기명칼럼 등을 통해 불자들에게 정론을 제시했다. 


개혁 시대 이끈 출세간의 필검 도법 스님
창간 초기인 1989년부터 ‘법보정론’ 필진으로 활동하며 「법보신문」과 함께 개혁의 시대를 준비해 나갔다. 대립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와 부정과 욕심으로 얼룩진 교계 내부를 항하는 논설은 언제나 거침없으며 상생을 통한 화합의 길을 찾아 나가는 것으로 대안을 제시하곤 했다. 97년 부터는 승가결사단체 선우도량과 조계종 개혁불사를 이끌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승가와 사회에 대한 수준 높은 비평을 담은 ‘도법 칼럼’을 게재해 논객으로서의 명성을 다시 한 번 드날리기도 했다.


불교의 잣대로 정치 해부 공종원
중앙일보 기자와 논설위원을 역임하고 당시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던 공종원 씨는 1990년부터 본지 객원논설위원으로 ‘법보정론’에 글을 게재하며 「법보신문」과의 오랜 인연을 시작했다. 일간지 기자와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며 다져진 탄탄한 시각과 분석력을 바탕으로 불자들의 눈을 사회, 특히 정치계로 넓혀주는데 일조했다.


 

여성의 눈으로 시대를 보다  백경남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백경남 씨는 남녀평등 문제를 비롯해 구시대적 편견과 80년대 대립의 사고를 새로운 시대의 눈으로 전화시킬 것을 촉구하는 칼럼으로 인기를 끌었다. 여성의 섬세한 눈이 읽어내는 시대의 변화는 세심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이후 「법보신문」을 대표하는 여성 논객으로 자리잡았다.

 


불교를 시로 승화한 글로벌 시인 고은

1992년 ‘내가 가는 금강경’으로 「법보신문」 필진 대열에 동참한 고은 시인은 연재 초기부터 특유의 힘있고 웅장한 필체로 독자를 사로잡았다. 특히 금강경을 소재로 자신의 삶과 세상을 읽어내는 독특한 연재는 한 편의 서사시를 읽는 듯 장엄한 글밭이 되었다. 94년부터는 본지 1면에 ‘고은 칼럼’을 신설, 논객으로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한국불교 세계화 이끌어 박성배

1994년 10월부터 1면에 ‘불교시평’을 신설, 국제불교학계의 대표적 지성인으로 손꼽히던 박성배 당시 뉴욕주립대 교수를 필자로 영입했다. 박성배 교수는 국내외 불교학계의 주요한 쟁점에 대해 전문가로서의 정리된 의견을 피력, 불자들로 하여금 거시적 안목에서 균형잡힌 판단력을 키워나가도록 이끌었다.


우리말로 읽는 전통 문화의 멋 강순형
궁중미술관 전시과장이었던 강순형 씨를 필자로 발굴, ‘강순형의 문예마당’을 신설했다. 당시로써는 낯설게만 느껴졌던 순 우리말과 구어체로 써내려가는 강순형 씨의 칼럼은 신선한 화제를 불러왔다. 낯선 글쓰기만큼이나 문화를 보는 독특하고 깊이있는 시각은 지금까지도 「법보신문」의 대표 인기 필진대열에 그를 올려 놓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종교로 시대를 읽는 강한 펜  윤원철
박성배, 공종원 씨와 함께 윤원철 당시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법보신문」 1면의 ‘불교시평’을 장식한 대표 필자였다. 1994년 10월 지면개편을 단행하며 ‘젊고 밝은 신문’을 제시한 「법보신문」은 ‘젊은 불교학자’ 윤원철 교수를 객원논설위원으로 영입, 젊은 논객의 힘있고 명쾌한 글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풍자-직설로 성역 없는 비판 윤청광
1996년 방송작가 윤청광 씨를 논설위원으로 영입, 「법보신문」 대표 논객으로서의 오랜 인연을 시작했다. 60년대 공전의 인기드라마 ‘오발탄’의 작가로 이미 필력을 인정받은 윤청광 씨는 초기부터 공권력과 정부의 종교편향에 대해 뼈있는 풍자와 거침없는 비판을 가함으로써 종교편향에 시달리고 있던 불자들의 들끓는 속을 후련하게 털어주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박완서
소설가 박완서 씨의 칼럼은 생활 속의 사소한 현상과 그 속에서 찾아내는 작가의 섬세한 감상을 통해 불교와 세상을 읽어내는 독특함으로 인기를 끌었다. 부드러운듯 하지만 거침없는 박완서 씨의 글은 리영희, 도법 스님, 윤원철  등과 함께 법보 논단의 황금기를 열어 가는데 큰 힘을 보탰다.

 


굽힘 없는 지성의 최고봉  리영희
1996년 8월 진보 지성의 최고봉 리영희 선생을 고문으로 영입한 「법보신문」은 같은 해 12월 ‘리영희 칼럼’을 신설, 교계 안팎의 화제를 불러왔다. 당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리영희 선생 영입은 「법보신문」 칼럼의 수준을 다시 한 번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된 동시에 이후 「법보신문」이 주력하며 이끌어온 교계 남북교류, 대북지원 활동의 정신적 기둥이 되었다.


따뜻하고 소박한 시선 신경림
창간 초기부터 연재물 등을 통해 「법보신문」과 인연을 맺어온 신경림 시인은 1998년 ‘신경림 칼럼’, 99년 ‘법보정론’을 통해 다시 한 번 따뜻한 필봉을 선보였다. 1998년 종단 사태 직후 ‘법보정론’ 필진 대열에 합류한 신경림 시인은 불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도심에 불어온 청풍 같은 언어 법상 스님
2003년 「법보신문」은 지면을 24면으로 증면하며 새로운 칼럼 ‘세심청심’을 신설했다. ‘세심청심’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도심으로 불어온 청아한 바람같이 맑고 감동적인 글을 전한 주인공은 인터넷 상에서 ‘아난 스님’이라는 필명으로 더욱 널리 알려져있던 법상 스님이었다. 군승으로 활동하며 포교의 현장에서 겪은 일화와 느낀 감회를 담담히 적어간 법상 스님은 새로운 필진 발굴에 늘 앞장섰던 「법보신문」의 대표 필진으로 성장했다.


미국에 우뚝 선 최고의 지성 혜민 스님
법상 스님과 함께 세심청심의 필진으로 등단한 혜민 스님은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맨하탄 뉴스쿨 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해외불교의 현장에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석학으로 성장하고 있던 혜민 스님은 세계 불교의 흐름과 한국불교를 바라보는 서구 불자들의 시선을 전하며 21세기 불교 세계화의 지평을 제시해나갔다.

 


철학의 눈으로 세상을 읽는다 김형효
2005년 들어 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김형효 교수를 새로운 필진으로 영입 ‘김형효 칼럼’을 신설했다. ‘21세기 불교의 철학적 읽기’를 부제로 게재된 김형효 칼럼은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근저에 불교철학을 대입함으로써 불자의 눈으로 시대를 읽는 석학의 무게 있는 글쓰기를 선보였다. 

남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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