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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주년] 승가 돈 멀리해야 대중 신뢰 얻는다

기자명 법보신문

노르웨이 오슬로대 박 노 자 교수

가장 존경하는 인물 만해
대학 시절 불교경전 독파
틈틈이 염불·절하는 ‘불자’

벽안의 한국인 박노자 교수. 1973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한국고대 정치외교사를 전공하고,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했으며, 지금은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에서 한국학을 지도하고 있는 그는 이제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됐다. 동서고금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명쾌한 논리로 무장한 그는 우리사회의 온갖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왔고,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권력에 대한 날선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진보주의적 역사학자’로 평가받는 박 교수는 불교에도 조예가 깊어 불교와 관련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해 왔으며, 불교계에 대한 쓴 소리도 아끼지 않아왔다.

“우리가 붓다의 길로 가자면 권력과의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한국 불교의 전통 문화는 철저히 비판적인 해부의 대상이 돼야 되고, 그럴 때 우리의 불교는 국가·자본의‘힘’과의 유착 관계를 드디어 청산할 수 있다”는 그의 소신에 따른 것이다. 그가 기복불교, 간화선의 절대성, 불교의 폭력성 등에 줄기차게 비판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박 교수는 스스로 불자임을 자처한다. 억압받거나 소외된 사람이 없는 세상, 누구나 존중받으며 온 생명이 어우러지는 세상, 그것이 곧 탐진치로부터 벗어난 세상이며 불교가 지향해온 이상적인 공동체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재학 시절 불교에 매료돼 러시아어로 번역된 불교경전들을 다 읽었다는 그는 지금까지도 불교경전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또 절에 가면 정성껏 108배를 하고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면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곤 한다. 여섯 살 난 아들의 이름도 계율을 잘 지키며 살라는 의미를 담아 ‘율희(律熙)’라고 지었다고 했다. 러시아어로는 ‘유리’라고 부른다.

지난 10월 8일 잠시 한국을 방문한 박 교수를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만나 그가 생각하는 불교와 불교계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았다.

△현대 한국의 정치, 사회 문제뿐 아니라 동서고금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대단히 해박하다는 게 박 교수를 바라보는 대체적인 시각 같다. 여느 학자들이 ‘전공의 영역’에 머무르는 것과 달리 이렇듯 폭넓은 영역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과찬의 말씀을 다 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해박하다기보다는 제 원래 전공과 관련 없이 한국학 전반에 걸쳐서 가르치고 연구해야 한다는 게 해외한국학의 생존 조건입니다. 해외인지라 한국학 연구는 국내만큼 성장돼 있지 않고 보통 한 학교에서 한국 관련 과목을 가르칠 사람은 잘돼봐야 2~3명, 오슬로대처럼 한국학 역사가 짧은 데에서는 오직 저 1명, 이 정도이다 보니 한국학 전공자가 커버해야 할 영역이 절로 넓어집니다. 그러다보면 연구 영역도 넓어지게 돼 있습니다. 아주 세분화돼 있는 국내와 비교하자면 일장일단이 다 있죠.”

△스스로 불자라고 밝힌 것으로 아는데 불교를 접한 계기와 좋아하는 이유는?
“고등학교 시절, 아프간 침략 중인 소련 군대에 사람이 왜 가서 살인자가 돼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불살생의 종교로서의 불교를 접하게 됐습니다. 아쉽게도 현재 한국 불교에 대해서는 ‘불살생의 종교’라고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불교사에서 존재했던 가장 이상적인 불교인물을 꼽는다면?
“만해 한용운, 오직 그 사람입니다. 한용운의 불교는 현재적 문제의식을 십분 소화한, ‘지금 여기’의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산 불교죠. “산이 산이요”를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현실의 아픈 문제를 애써 외면하는, 그러한 형해화(形骸化)된 불교는 아니었습니다.”

△지난 3월 만해 스님의 시, 에세이, 조선불교유신론 등이 포함된 『만해 한용운 선집』을 영역할 정도로 만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만해 스님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내 속에 있는 참나, 즉 불성을 볼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중생을 참된 깨침으로 인도하려는 보살일수록 깨침을 방해하는 탐진치에 무자비하게, 예리하게 비판적여야 합니다. 만해는 그랬습니다. 조선의 본사 주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여러분들이 똥이나 시체보다 더 나쁜 존재들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은 만해의 진면목입니다. 탐진치에 빠진 가사 입은 도둑에게 “당신이 도둑이다”라고 이야기해야 중생의 구제가 가능하거든요. 요즘은 그러한 분을 승가에서 뵙기가 힘듭니다.”

△만해 스님을 ‘불교 사회주의자’라고 규정했는데 어떤 의미인지?
“자본주의의 심성이란 자아의 물질적 이익의 극대화를 지향하여 물질적 이익을 위해 인간의 관계 등등을 이용해 인간적인 모든 것을 물화시키는, 그러한 탐욕을 바탕으로 합니다. 자본주의를 반대하지 않고서는, 즉 탐욕을 자극하지 않는 박애, 애타적인 대안적인 생활 방식인 사회주의를 제창하지 않고서는 참된 불교를 할 수 없습니다. 달라이라마스님도 자신이 그러한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자인하지 않았습니까?”

‘자본주의는 탐진치 부추겨
‘기복으로 장사하는 건 매불
‘불살생 사회화’ 이끌어내야

△“제도로서의 불교는 늘 내게 배신감을 느끼게 할 뿐”이라며 불교계에 대해 가혹하리만치 많은 비판을 해왔다. 무엇이 문제인가?
“석가모니께서 생사가 고통이라고 가르치셨고,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각종 탐욕과 미몽부터 버리라고 하셨잖아요. “대입기도”라는 이름으로 이기적인 탐욕에 호소하여 돈을 버는 것이 석가모니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면 무엇입니까? 우리 불교가 이미 석가모니 정신을 잃었다고 자인하지 않고서는 그 정신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맹성(猛省)이 필요합니다.”

△일제 식민지와 군사정권을 지나오며 한국 불교계에 뿌리 내린 가장 큰 폐습을 꼽는다면?
“사찰의 기업화죠. 일제가 사찰령을 통해 주지에게 사찰 재산에 대한 처분권을 부여함으로써 주지를 유사 기업인화시켰고, 한국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사찰들의 기업화가 가속화됐습니다. 지금은 기복 장사를 업으로 하는 회사로 봐도 무방할 정도에 이르렀으니 우리가 석가모니부처와 조사들에 대해 짓는 죄악이 어느 정도입니까?”

△현대사회에서 불교의 불살생과 비폭력 사상은 어떤 의미가 있고 불교계는 그 정신을 어떻게 실천해야 한다고 보나?
“비폭력이란, 폭력을 바탕으로 해서 움직이는 국가나 시장 영역 등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거리 두기”를 의미하죠. 불자로서 과연 군인이 돼 살인훈련을 받는 게 불조의 혜명에 저촉되지는 않는지, 과연 서울대 가기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고교 3년간 극도로 괴롭히는 자신에 대한 폭력을 자행해야 하는지 고민해보는 게 바람직하죠.”

△불교계에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조직적인 종교편향이 이뤄지고 있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종교편향 문제와 관련해 그 원인과 불교계의 바람직한 대응방법이 있다면?
“한국의 보수적 기독교인(개신교인)들이 과거 미국 선교사들의 극도로 멸시적이며 오리엔탈리즘적 불교관을 이어받아 불교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다는 게 사실입니다. 그게 종교 편향의 핵심이죠. 우리가 그들이 예수의 정신을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그들에게 부단히 이야기하여 예수의 정신으로 돌아가기를 촉구해야 하고, 아울러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기독교인과의 연대를 당당히 하여 종교관용, 종교간 대화, 불교와 기독교의 교류와 협력의 분위기를 자꾸 만들어야 하죠.”

△최근 종교편향 문제를 놓고 이명박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조계사에서 시위 농성하는 이들도 늘고 있는데 이런 측면에서 불교계가 예전과 바뀐 것 아니냐는 견해도 있는데?
“보수적 기독교 광신도 집단의 망동에 대한 인내는 한계에 달한 점이 있죠. 여태까지는 사실 사찰 방화 등 많은 부분에 대해서 웬만큼 이야기 안하려 했는데, 저 광신 집단의 태도는 다종교사회인 한국 사회의 기본적인 종교적 똘레랑스의 룰을 갈수록 더욱더 무시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우리부터 기독교라는 이웃 종교를 보다 잘 배우고 보다 친근하게 생각하고, 또 진보적 기독교인들과 보다 많은 교류를 하는 것이겠죠.”

△불교계가 대중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가장 중점을 둬야 할 사항은?
“승가는 돈을 멀리해야 합니다. 사찰 재산 운영 등을 신도 위원회가 위임하는 재가자가 맡는 게 더 바람직할 거예요. 자본가가 된 듯한 승려는 거사, 보살들이 결국 따르지 않게 되죠.”

△끝으로 불교계에 당부의 말이 있다면?
“굳이 이야기하자면 우리에게 국가나 사회의 통념 등보다 불조의 혜명이 먼저이어야 합니다. 사회가 아무리 예외 없는 모든 남성의 살인훈련(군 복무) 참가를 ‘정상’으로 여긴다 해도, 불자로서 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의 통념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지만, 고집멸도, 불살생의 진리는 영원합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사진=정하중 기자 raubon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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