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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주년 초청대법회]축서사 선원장 무 여 스님문득 한 생각에 허물을 안다면
윤회 고통 끊고 극락에 나리라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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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10.28  17:5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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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에 빠져 들면 몸·마음 아주 편해
더 없이 행복하니 그것이 웰빙이다

오늘 법문은 웰빙과 웰다잉에 대해서 하려고 합니다.
요즘 들어 이 세상의 화두가 경제문제가 되면서 조금은 식은 듯 하지만, 웰빙과 웰다잉에 대해 큰 관심이 있습니다. 웰빙이란 안락한 삶, 아주 만족한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웰다잉은 안락한 죽음, 아름다운 죽음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웰빙과 웰다잉은 한마디로 잘 살고 잘 죽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바라고 원하고 궁극적으로는 목표라고까지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웰빙이고 웰다잉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생사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대명제를 갖고 출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불자가 되고 여기까지 온 것도 웰빙과 웰다잉을 위해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윌빙이나 웰다잉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나오게 되었을까요.
우리의 삶은 불과 몇 십 년 전에 비하면 아주 파격적으로 좋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요즘도 어려운 분들이 많이 있지만 전체적 상황은 예전에 비해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잘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잘 살게 되니까, 이제 더 잘 살고 싶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인간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다’라고 표현한 분도 있습니다. 전차가 전쟁에서 좌충우돌하면서 전쟁을 수행하듯이 끝없는 욕망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잘 사니까 더 잘 살고 싶은 거예요. 이제 거기에 더 잘살다가 가는 것을 바랍니다. 그 죽음도 안락하게 아름답게 죽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죽음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언젠가 당하는 것이 죽음이지요. 그리고 그 죽음 앞에서 괴로워하고 눈물 흘리지 않은 분이 없습니다. 그 어떤 고통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고, 괴롭고, 두렵고 한 것을 최소화시켜 보려고 애쓰는 것. 그것이 바로 요즘 사람들의 웰다잉이 아닐까 합니다.

불교에서 그 웰빙과 웰다잉에 대해 표현은 다르지만 아주 고구정녕(苦口丁寧)하게 노파심으로 부처님이 말씀해 놓으신 게 바로 경전이고 천하 선지식의 어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과 선지식들의 한결같은 말씀은 외형적으로 아무리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환경에서 살아도 그리고 여가를 이용해서 기분 좋게 즐기면서 살아도 진정한 웰빙, 즉 행복하고 안락한 생활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선사들은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안락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하고 반드시 마음을 닦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육체의 주인공은 마음입니다. 육체는 마음의 그림자와 같습니다. 주인공인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외형적으로 아무리 갖춘다고 해도 만족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어떠한 그림도 그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은 화가와 같습니다. 즉, 어떠한 그림이라도 그릴 수 있는 것이 마음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잘 살고 못 살고, 수행을 잘 하고 못하고, 비참하게 죽고 안락하게 죽고 하는 것도 결국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잘 살고 잘 죽으려면 수행을 해야만 합니다. 수행을 해서 마음을 닦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수행에는 여러 가지 수행법이 있는데, 화두선을 최상의 수행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화두선을 어느 정도까지 해야 웰빙이나 웰다잉을 느낄 수 있느냐는 분들이 있는데, 수행을 하면서 안락(安樂)한 상태까지 맛봐야 웰빙과 웰다잉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행하면서 체험을 하신 분들은 안락이라는 말만 들어도 설레일 텐데요, 안락이란 수행이 잘돼서 몸과 마음이 아주 편안하고 즐거움까지 느끼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안락한 상태의 극치가 바로 극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에는 우리가 사는 이 사바 예토에서 서쪽으로 10만의 국토를 지나야 서방정토 극락세계가 있다고 했습니다만, 우리가 수행을 하면서도 극락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해도 좋습니다.

처음 화두 공부를 하게 되면 온갖 잡스러운 생각이 다 일어납니다. 염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화두에 진정한 의정이 일어나면 마음이 아주 고요해 집니다. 그리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아주 맑아지고, 맑아지면 몸도 가벼워집니다. 때론 새털처럼 가벼워질 때도 있고 그러다가 자기 육신마저 잊을 정도로 화두에 푹 빠지는 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화두에 빠져들면 몸과 마음이 아주 편안해집니다. 더 이상 바랄것이 없게 되는데, 그 자체가 행복이 됩니다. 그것을 우리는 웰빙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평화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화두선에서는 이 상태를 가장 기본적인 단계를 조금 면한 상태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정도만 느껴도 마음이 아주 편안합니다. 그리고 수행이 더 깊어지면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그 묘한 기분이 희열입니다. 기쁘다고 할 수 있고, 아주 즐겁다고도 할 수 있는 오묘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심한 경우 자기를 억제하기 어려울 정도의 오묘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 상태가 되면 인생도 서서히 변하게 됩니다. 사고하는 것이나 자세나 움직이는 행동까지 변합니다. 그때의 화두 공부는 어느 정도 수준이냐 하면 동정에도 일여합니다. 가거나 오거나, 말을 하거나 책을 읽고 있어도 화두에 조금도 변함이 없는 그런 상태가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더 들어가게 되면 꿈에서도 여여한 그러한 상태가 되고, 흔히 이러한 상태를 일러 몽중일여라고 합니다.

참선 공부를 하면서 이러한 상태에 접어들게 되면 학생이나, 주부, 직장인 모두 자기의 자리에서 아주 큰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가 있습니다. 학생은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도 화두를 놓치지 않고 공부할 수 있고, 주부는 집에서 청소하고 밥하면서도 수행이 됩니다. 직장인들 역시 화두 하듯이 일에 집중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일하고 능률도 높일 수 있습니다. 마치 미친 듯이 화두에 몰입하지 못한 사람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집중은 바로 성공의 비결입니다. 선적(禪的)이다 라고 하는 것은 바로 집중해서 빠져드는 것을 말합니다.

화두에 그렇게 힘을 얻어서 수행공덕이 쌓이면 성품 자체가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변해있는 자기를 보게 될 것입니다. 번뇌망상이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안락한 상태가 되면 마음이 넓어지고 커질 뿐만 아니라, 급한 성미도 느린 듯 침착해지고 행동 자체도 중후해집니다. 또한 자세도 의젓하고 경거망동하는 모습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만 아는 옹졸하고 고지식한 사람도 아량을 베풀고 용서할 줄도 알면서 서서히 대승적으로 변합니다. 이 정도가 되면 누구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까지 사라지게 됩니다. 인간 자체가 아주 큰 사람으로 변하고 부처님과 같은 그런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수행을 해서 고요해지고 마음이 맑아진다는 것은 근본 자성이 서서히 드러난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도 본래 부처라고 했습니다. 본 바탕은 부처님과 같다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닫고 나서 일성이 ‘아, 기특하구나. 일체중생이 부처님과 같은 덕상을 갖췄네!’그랬습니다. 부처님과 같은 지혜, 초롱초롱하고 천재적인 지혜를 갖췄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은 누가 어떤 질문을 해도 기다렸다는 듯 적당한 말씀으로 답을 주셨는데, 그런 천재성을 누구나 다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이 천재성이라고 하면 귀가 크게 열릴텐데, 세속에서는 영재교육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여러 프로그램도 만들고 그렇지요. 그런데 사실 가장 좋은 프로그램은 집중해서 근본 자성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것 이상의 천재교육은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개발이기도 합니다.

부처님 제자 중에 주리반특가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머리가 좀 모자랐어요. 그래서 부처님이 뭘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뭘 시켜 놓으면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조차 잊고 멍하니 서 있기 일수였으니까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다른데 관심 갖지 말고 오직 쓸고 닦으리, 쓸고 닦으리’만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쓸고 닦으리는 마음의 때를 쓸고 닦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주리반특가는 쓸고 하다가는 닦으리를 잊어버리고, 닦으리 하다가는 또 쓸고를 잊어버리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언제나 부처님이 말씀하신대로 쓸고 닦으리를 한 끝에 마음이 닦아져서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경전 곳곳에서 부처님이 주리반특가에 대한 말씀을 하신 대목이 나타납니다.

제가 40여 년 전 지리산 모처에서 객승으로 머물 때, 그 작은 절에 열 두 살 정도 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좀 부족했는데, 스님이 관세음보살 쓰는 일을 시켜서 매일같이 관세음보살을 쓰는 게 일이었습니다. 사실 쓴다기보다 글자를 그리는 정도였지요. 그런데 이 아이가 쓰고 또 쓰고 하면서 머리가 좋아졌어요. 그래서 수계까지 받았는데, 아이의 부모님이 그것을 보고는 절을 지어주었고 이 스님은 그런 부모가 감사해서 하루종일 목탁만 쳤습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더 머리가 맑아지고 좋아졌다고 하는데, 수행을 하면 둔재가 천재가 되고 능력이 떨어지는 분도 능력자가 되고 중생이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늘 수행을 해서 아주 맑고 안락한 그런 경지를 꼭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상과 같이 화두에 정신이 집중돼서 번뇌망상이 다 사라지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면서 아주 편안하고 즐거운 안락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입니다. 여러분이 세속에서 어떠한 일을 했을 때의 성취감이나 행복은 순간이지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속에서 느끼는 그런 행복 뒤에는 괴로움이 따르고 허망합니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서 느끼는 안락은 이와 달라서 훗날에는 수행을 말려도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수행에서 안락과 보람과 긍지, 그리고 참다운 인생의 행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안락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을 웰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꼭 체험해봐야 불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체험하지 못하면 불교에 대한 이론을 갖춰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안됩니다. 더 화두가 성성(性性)하고 적적(寂寂)하게 해야 합니다. 더 성성하고 적적하면 깊은 잠에서도 여여한 상태, 화두가 변함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고,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사람도 적극적이고 당당해집니다. 말이 적은 사람은 폭포수처럼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경지에서 어느날 생사가 둘이 아니구나, 즉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바로 느끼게 됩니다. 생(生)이 곧 사(死)요, 사가 곧 생이라는 것을 느끼고 인간의 근본 성품은 생(生)하는 것도 아니고 멸(滅)하는 것도 아닌 영원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화두가 안락한 경지가 되어 본성이 영원하다는 확신까지 서게되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이 웰다잉을 알게 되고 죽음에 당당해 집니다. 죽음에 대한 근심과 걱정까지 모두 사라지는 그런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웰다잉이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선에서는 이런 정도가 되어야 웰다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옛 선사들의 생사를 차치(且置)한 일화를 들려 드릴테니, 웰다잉으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선사들 중에서 죽음을 희롱하듯 돌아가신 분들이 많았는데 한때는 입적한 모습으로 선사의 경지를 가늠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분은 입적하기 3개월 전에 상좌를 불러서 큰 탑을 조성하도록 했습니다. 탑을 다 조성하고 나니까 절에 있는 노스님들을 다 불러서 저녁 공양을 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큰절을 하고는 그대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당나라 때 한 스님은 일곱 걸음을 걷다가 그대로 서서 가셨답니다. 생사를 초월하고 생사에 자유자재했던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물구나무를 서서 가신 분도 있는데, 생사를 자재로 하고 해탈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초롱초롱하고 할 말 다 하고서는 그냥 헌 옷을 갈아입듯이 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선사들의 죽음을 옷을 갈아입는 것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옛날 스님들은 죽음을 오온(五蘊)의 껍데기를 벗어버린다고 하기도 했고, 가죽 포대를 간다(바꾼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 기화 스님은 죽음을 일러 ‘부스럼 딱지를 없애는 것과 같고 묶은 것을 풀어서 틀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새가 조롱을 나온 것과 같고 말이 마구간에서 나온 것과 같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생사를 자재하고 생사를 해탈하기 위해서는 선정을 많이 닦아 깨달음에 도달해야합니다. 요즘 옛날 스님들처럼 유유자적하게 해탈하신 분들이 드문 것은 선정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수행으로 안락하면 본성의 영원함 확신
죽음 공포서 벗어나 웰다잉 알고 당당해

여러분도 수행을 잘해서 생사란 본래 나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반드시 극복할 수 있는 명제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죽음은 속박에서 벗어나는 해탈이고, 법신의 탄생이고, 열반의 기쁨이라는 것을 꼭 맛보시기 바라며, 그로 인해 열반은 최고의 행복이며 영원한 행복이라는 것을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웰빙과 웰다잉에 대해서 이해는 됐을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 이 인연으로 여러분의 생사관이 확립돼서 진정으로 발심하는 계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불교는 예사스런 종교가 아닙니다. 『천수경』에서는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이라고 했습니다. 위없는 아주 깊고 깊은 미묘한 법이 바로 불법입니다. 웰빙과 웰다잉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 그 해결방법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불자가 되신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부처님 말씀대로 실천하고 수행해서 여러분 자신이 안락을 느낄 정도로 자신을 고급화시키십시오. 흔히 화두가 어렵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진정으로 발심을 못하고 흉내만 내기 때문입니다. 수행은 마음이 문제입니다. 마음만 참으로 지극하고 간절하게 내면 의외로 쉬운 것이 수행입니다. 그런데 근기가 안 되는 분, 즉 기본이 안 닦여서 할 만한 정도가 못되는 분이 흉내조차도 제대로 못내니까 힘이 든 것입니다. 참으로 애쓰면 의외로 쉽게 되는 것이 이 공부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최상의 길에 들어와 있으므로 주사위는 던져진 것입니다. 잘하고 못하고는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부처님의 모습을 그대로 본뜨십시오. 아무리 돈과 명예, 권력이 있어도 안락의 경지를 느껴보지 못하면 참으로 사는 재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합니다. 안락의 경지를 꼭 체험해서 진정한 웰빙과 웰다잉을 반드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기 전에 당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모든 존재하는 것은 무상하다. 네 지금 건강한 몸이지만 무상하여 변하는 것을 면치 못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 속히 생사의 불구덩이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라. 이것이 나의 최후의 가르침이니라.”

여러분께서도 명심하십시오. 그대가 만일 한 생각에 그 허물을 안다면, 문득 윤회의 고통 끊고 극락에 태어나리라.! 성불하십시오.
 
정리=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무여 스님은
194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스님은 26세 때 공(空) 사상에 매료돼 출가를 결심, 오대산 상원사에서 희섭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동화사, 송광사, 해인사, 망월사, 칠불사 등 전국 선원에서 30여년 동안 수선안거 했으며 칠불사와 망월사 선원장, 조계종 기초선원운영위원장을 역임했다. 1987년부터 경북 봉화 축서사에 주석하며 수많은 운수납자를 제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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