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생활을 하거나 수행을 할 때는 지켜야 할 엄격한 규범이 있다. 신 하나을 벗는데도 법도가 있으며 길을 걷을 때도 신행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며 공양을 할 때도 참회와 기원(祈願)이 들어 있어야 한다. 이밖에 사찰의 문을 열거나 닫을 때도 순서가 있으며 앉고 눕고 말하고 잠자는 것까지도 절행(節行)의 규범을 지켜야만 한다. 사찰에서는 어느 것 하나라도 평범한 것이 없으며 무의미하고 공허한 것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삭발을 할 때도 날짜가 정해져 있고 세탁(洗濯)을 하는데도 정한 날이 있다. 그래서 수행자조차 이 규범과 율범(律範)을 지키기란 매우 힘들다.
이것은 그 속에서 생활하는 대중들에게 불편을 주기 위해서라든지, 고통을 주기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전부가 도를 닦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러한 법도를 지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심신이 안정되고 고요해져 모든 번뇌와 망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육근(六根)을 통해 들어오고 있는 적(適), 아뢰야식(阿梨耶識)에 저장되어 있는 적, 누겁다생(累劫多生)에 쌓이고 모여 있는 적, 근본 무명에서 불고 있는 업풍(業風)과 의심, 이러한 많은 적들을 퇴치시키는 데는 순간의 방심도 있을 수 없고 찰나의 태만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출가자의 생활이요 구도자의 자세이다. 사찰에 와서 처음 큰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 어느 쪽이 상판(上判)이며 어느 쪽이 하판(下判)인가를 살펴 반드시 상판 쪽 사이 문(門)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식사 공양 때 보면 어간문 쪽으로부터 상판과 하판이 갈라지는데 상판 쪽 첫머리에는 방장이나 조실 스님이 앉게 되고, 부엌이 있는 쪽을 하판이라 부르는데, 여기 첫머리에는 주지 스님을 위시(爲始)하여 본사(本寺) 노덕(老德)스님과 주로 사판(事判)측 스님들이 년 순(年順)대로 순서를 정해 앉는다. 그런데 이것보다 큰 방에 들어가면 사방 벽에 큰 글씨로 써 붙여 놓은 것이 있다. 어간 쪽부터 말하자면 하판 첫머리에는 청산(靑山)이라 했고, 상판 첫머리에는 백운(白雲)이라 해 놓았다.
청산이란 뜻은 부동(不動)이란 의미가 들어 있다. 청산은 결코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기에 본사(本寺)측 스님들 곧 유동성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상판 측 첫머리에 백운(白雲)이라 한 것은 객으로 있는 스님들, 곧 구름처럼 유동성을 가졌다고 하여 백운(白雲)으로 표시한다. 이 때문에 객승을 운수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상판 벽에는 오관(五觀)이라 써 붙이고 하판 벽에는 삼함(三緘)이라 써 붙여 놓았는데 오관(五觀)이란 뜻은 밥 먹을 때 항상 속으로 생각하고 념관(念觀)하는 다섯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이 음식이 나에게까지 오게 되는 동안 농부들의 수고가 얼마나 많았으며 아무 허물이 없는 방생(傍生), 곧 벌레들의 생명은 얼마나 없어졌으며 시주(施主)들의 공덕은 얼마나 쌓였을까 하는 것을 생각한다. 둘째, 이 음식물을 내가 당연히 받아먹을 만한 덕행을 갖추었는가 참회해야 한다. 셋째, 마음을 근신(謹愼)하여 결코 탐욕을 내지 말아야 한다. 넷째, 지금 받아먹고 있는 이 음식은 수도(修道)와 정진에 있어 기갈(飢渴)을 면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이것은 수도(修道)를 하는데 반드시 육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허약(虛弱)을 예방하는 양약(良藥)으로만 생각해야 한다. 다섯째, 이것은 수도하기 위해 음식을 섭취(攝取)하는 것이라 관(觀)해야 된다는 것이다.
월서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