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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

기자명 법보신문

꿈 없는 아이에게 널마의 마음 심어주는게 부처 공부

이런 자리에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여러분들께 드릴 말씀은 ‘오늘을 살아온 어머니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입니다. 묻겠습니다.
여러분 아들 딸, 언니, 동생에게 딱 한마디, 좌우명, 새김말 하나를 일러준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저는 우리 어머니께 들은 말을 새김말로 삼고 있습니다. 제가 다섯 살 때였을 겁니다. 섣달그믐날이 되면 왜놈들이 쌀을 다 빼앗아가 밥할 쌀도 없고 떡 할 쌀도 없지만 그래도 웬만한 집들은 찹쌀하고 조 두어 되를 처마 밑에 걸어놨다가 이날 떡을 칩니다.

그나마도 없는 집은 그 떡 먹는 모습을 구경만 하는데 어렸을 때 저도 그 떡 먹는 모습을 구경만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집으로 들어와 엄마한테 떡 좀 하자고 졸랐더니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아궁이에 불만 때셨습니다. “밥도 안하고 떡도 안하면서 왜 불을 때냐” 물었더니 “굴뚝에 내(연기)가 안 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쌀 떨어졌다고 걱정 한다”며 “이렇게 어려울 때 내 배만 부르고 내 등만 따시려고 하면 키가 안 큰다”하시는 겁니다. 그 말씀에 놀라서 윗목에 가 쭈그리고 울면 엄마가 바짝 안어다가 아랫목에 뉘어 놓고 같이 울던 기억이 납니다.

내 배만 불리면 키가 안 커

여러분 중에는 쌀 떨어져본 적 없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 어려운 때 내 배만 부르고자하고 내 등만 따시려고 해서는 키가 안 큰다, 육체적 키는 클지 몰라도 머리의, 마음의 키는 안 클지도 모른다는, 낫 놓고 기억자로 모르는 우리 어머니의 말씀이지만 그것이 내 일생의 새김말이었습니다.

아이 키우다 보면 뭐든지 일등하고 목소리도 크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부모의 간절한 바람은 다 같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저보다 여섯 살 많던 형님이 제게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를 다 외우게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학교를 갔더니 날 똑똑하다고 반장을 시켰어요. 그런데 그 일본 선생이 날 보고 “넌 공부도 잘하고 똑똑하게 생겼는데 그 옷이 틀렸다”며 “그 핫바지를 벗고 학생 옷을 입고 오라”하는 겁니다. 그래 어머니한테 학생 옷을 사 달랬더니 어머니가 “학교 관둬라.

학교는 애들하고 어울리는 법을 배우러 가는 것이지 옷 자랑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조선 사람이 조선 옷을 입었는데 무슨 학생복이 있냐. 돈이 있어야 옷도 사주는데, 너희 반에서 학생복 입은 애라고는 면서기, 순사, 금융조합이사네 아이들 셋뿐이다. 조선 사람이 다 면서기가 될 수도 없고 다 금융조합이사가 될 수도 없는데 근사하고 좋은 옷만 입으라는 학교에는 갈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렸을 때는 그런 어머니가 싫었지만 커갈수록 생각해보니 어머니 말씀이 코풀듯이 버릴, 그런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아이들을 기를 때 공부 일등 그것 자꾸 강요하지 마세요. 으뜸 해봤자 좋은데 취직해 돈만 벌어서 자기만 떵떵거리는 이기주의자, 개인주의자가 될 지도 모르니 으뜸으로만 기르지 말고 사람하고 어울리는 품새를 가진 아이로 만들려고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아들·딸 기르는데 어떤 투로 애들을 이끄시렵니까. 공부 으뜸해라, 잘 되라고 가르치는 것도 사람 마음의 어느 한 가닥이니 나쁘게 보면 안 됩니다. 하지만 공부 으뜸하고 잘 되어서 그 다음에 좋은 일하라고만 가르치는 것은 한 사람을, 개인을 중심으로 해서 사람의 품새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벗나래(세상)를 잘 만들고자 하는 일에 네가 으뜸이 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일. 벗나래를 올바로 되도록 하는데 네가 온 몸을 다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데 교육의 중심을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엊그제 방송에 나왔는데요, 고등학생들한테 “10억을 주면 무엇이든 하겠냐”고 했더니 10명중 8명이 “10억만 한꺼번에 주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요. 내가 잘되고 내가 거머쥐면 뭐든 하겠다는 뜻입니다.
 
10억을 벌려면 그냥 일만해서는 못 모읍니다. 증권투자든 땅 투기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고등학생이 직장도 안다니고 장사도 안했는데 10억만 생기면 뭐든 하겠다고 했으니 그 마음속에 강도 내지는 날강도의 마음이 스며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는 여러분의 아들·딸이 끼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닐 것 같지만 물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강물이라는 것은 다 휩쓸고 갑니다. 이것은 집안의 가르침이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공부 으뜸해서 뭐든 거머쥐고 없는 놈 찍어 눌러서라도 갖고, 절집에 가 몇 푼 집어주면 된다는 이런 교육을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올바른 꿈을 빚어서 아들딸한테 내놓아야 합니다. 요즘 애들은 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야망만 있습니다. 야망을 우리말로 뚱속이라고 합니다. 욕심. 부처님이 제일 싫어하신 것이 이 욕심 아닙니까. 사람, 여자, 돈, 권력, 자기 필요한 것에 대한 욕심이든 욕심을 버리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제도는 욕심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욕’이 뭡니까. 시장 경제요, 자유경쟁입니다. 신문 방송만 믿지 말고 나만 잘 산다고 거기에 의지하지 말아요. 그래야 진짜 부처가 누구인지 아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 애들은 꿈이 없을 뿐만 아니라 널마 같은 마음이 없습니다. 널마는 너른 마당, 대륙이란 말입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겐 널마의 마음보가 없습니다. 초등학교 애들이 친구들보고 너 아파트 몇 평에 사냐고 묻는답니다. 왜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아파트 크기에 관심을 갖습니까. 여러분 고속도로에 나가 보셨어요? 명진 스님은 요즘 밖에 나가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여러분, 명진 스님 좀 풀어주세요. 이 안에만 있어서 부처 되겠습니까. 사람 사는 뒷골목에 왔다 갔다 해야 부처님 말씀이 뭔지도 깨우칩니다. 불경 속에만 부처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튼, 고속도로 타고 부산 가다보면 막 추월해서 끼어드는 차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봐야 부산이야. 부산까지 직선거리가 400킬로밖에 안돼요.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가면 1만5000킬로입니다. 그 정도로 달려가려면 시간에 쫓긴다고 앞질러도 이해를 하는데 고작 부산 가는데 막 쫓겨 가는 그 마음이 뭡니까. 널마. 큰마음. 대륙을 잊어 버려서 그렇습니다. 대륙.

공부 으뜸보단 어울릴 줄 알아야

우리 집 안방에 두 폭 병풍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높이 솟아 있는 오래된 소나무에 매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그림인데, 눈보라 치는 속에 매 한 마리가 눈을 가로 쏘고 있어요. 곁눈질하는 것을 가로 쏜다고 합니다. 그래 할머니께 물어보면 “눈보라를 갈라 치는 거야. 눈보라 그만 오라고 갈라 치는 거야.”라고 설명해 주셨어요. 좋은 대학 미학과 나와야 예술적으로 풀이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안 나와도 옛 우리의 할머니들은 직관력으로, 보는 것으로, 느끼는 것으로 예술을 우리에게 전해 주셨어요.

그 옆 그림 속에는 눈이 하얗게 내리는 깊은 산골에 웬 할아버지가 나귀를 타고 갑니다. 할머니께 어디 가냐고 또 물으면 “요동반도 너른 뜰은 우리 뜰이다, 비켜라 하면서 가고 있는거야”하시는 겁니다. 어린애가 요동반도가 뭔지 고구려가 뭔지 압니까. 그래도 “잠 안자고 간다. 너도 이담에 잠만 자면 키가 안 커, 넓은 땅에 못 간다”하셨습니다. 크면서 생각해 보니 다 망한 집안에서 손자를 기르지만 대륙을 가르쳐 주신 겁니다. 지금 이 땅의 청소년들은 대륙을 잊어버리고 아파트 몇 평만 압니다. 기껏 가봐야 부산, 400킬로 밖에 안 되는 부산가면서 새치기만 하려고 합니다. 이럴 때 봉은사에 계시는 신도 여러분은 널마, 너른 마음 부처님 마음이 뭔지 알려 주셔야 합니다.

자본이 떨군 콩엿은 버려라

마지막으로 우리 어머니 말씀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내가 다섯, 여섯 살 때 인데 나는 콩 엿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우리 집에서는 콩엿을 한 번도 안합니다. 그래서 콩엿하나 먹어야겠다며 닷새 장엘 나갔어요. 장에서 엿장수가 엿을 팔고 있는데 그 옆에 꼬마들이 먹다 떨어뜨린 엿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누가 밟았는지 모래가 많이 묻었어요. 그걸 집어 입에 넣었는데 모래가 많아 씹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 울면서 집에 왔더니 어머니가 보시고는“뱉어라”시며 “아무리 단 엿이라도 땅에 떨어진 건 먹는 게 아니야”하셨습니다. 아무리 단 엿이라도 땅에 떨어진 것은 먹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오늘 여러분께 말뜸,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사는 이 땅은 어마어마한 돈이 조작하고 있는 땅입니다. 집이나 한 칸씩 갖고 사는 그런 돈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돈이 여러분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그 돈이 떨어뜨리는 떡고물 하나씩 집어 먹으며 “아, 나는 강남의 90평짜리 아파트에 산다” “나는 어디 별장이 있다” 이러지 마시라는 겁니다. 그게 다 아무리 달지만 땅에 떨어진 콩엿입니다. 생각 많이 해 주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강의는 10월 28일 봉은사 보우당에서 열린 봉은사 10월 공개 특강에서 백기완 소장이 ‘우리시대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백기완 소장은

1933년 황해도 은율, 구월산 아래서 태어나 초등학교만 마친 뒤 13살 때인 46년 아버지와 함께 서울로 왔다. 그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고, 교복을 입고 싶었지만” 끝내 중학교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일찍이 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할아버지의 기개와 독립군 이야기들을 통해 민족의식에 눈뜬 그는 백범 김구 선생의 가르침, 장준하 선생과 문익환 목사와의 ‘끈메(인연)’ 등으로 분단 이후 줄곧 통일운동에 몸 바쳐 왔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67년 세운 백범사상연구소의 맥을 이은 통일문제연구소를 꾸리며 계절마다 글모음집 『노나메기』를 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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