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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칼럼]자리 이타

기자명 법보신문

스스로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게 자리이타
자리이타 실천, 적절한 화법구사서 비롯

손바닥 뒤집듯 한다는 말이 있다. 일이 쉽다거나 알기가 매우 쉽다는 경우에 쓰는 말이니, 어느 경우이든 이 말은 아주 쉬운 일에 인용되는 비유이리라. 손바닥이란 사람의 신체 중에서 항상 움직여야 하고, 눈의 시선에서 가까이 접근시킬 수가 있어 가장 잘 보이기도 하기에 생긴 말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단어는 뒤집는다는 말에 비중을 두어 일을 가볍게 번복하는 변덕스러움에 인용되기 십상이다. 공자가 어느 사람이 천제의 하늘에 대한 제사를 물으니까, 대답하기를 “글쎄, 나도 알지 못하겠구나. 천제란 천하 사람들이 다 말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면서 손바닥을 가리켰다. 이때도 제사란 공경과 정성이면 되는 것이야 다 아는 사실이니 손바닥 드려다 보듯 훤한 것 아닌가 하는 의미일 것이다.

세상사란 어찌 보면 손바닥의 앞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너와 나라는 최초의 인간 결합부터가 결국은 손바닥의 앞면과 손등의 뒷면에 불과한 것이요, 너와 나의 확산이 시작되는 가족에서 사회로 국가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외연적 확장도 마침내는 손바닥과 손등의 양면적 대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은 나와 너라는 자타(自他)의 관계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윤리질서나 종교적 융합이나 정치적 평화는 모두 다 자타가 보다 더 잘 어울리게 조화시키는 방법의 모색이다.

이렇듯 나와 남이 잘 어울리려면 나와 남을 철저하게 대립의 관계로 놓고, 나의 의무와 상대방의 권위를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한 기본적 자세가 바로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겸양과 존중이다. 윤리질서를 존중한 우리 사회는 이러한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어울림의 기초가 되는 언어생활에서부터 이를 실천해 왔다. 나의 자칭은 ‘저’요, 너의 타칭은 상황에 따라 변화하나 대체로 ‘당신’이듯이 나에게는 비칭(卑稱)이고 남에게는 존칭(尊稱)이 바로 언어생활의 기본이다.

그러던 우리 사회의 언어관습이 무질서의 평등으로 가고 있으니 안타깝다. 오늘 아침의 신문을 보다가 너무도 놀랐다. 미국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의 회동을 영상으로 보이면서, 그 설명문에 대통령의 부인을 ‘아내’라 표현하였으니, 이것이 어디의 어법인가. 우리의 정당한 관습으론 아내는 나의 아내를 겸손으로 지칭함이요, 남의 아내는 ‘부인’이라 함이 존칭의 예법이다. 부인이란 표현을 한층 높인 존칭이 ‘영부인’이니, 이럴 때는 영부인이 맞는 예법이다. 이 영부인이란 칭호가 한 때 잘못 쓰여 우리나라 대통령 부인의 전용어처럼 된 적이 있어서 혐의스럽게 여긴 듯하나, 적절한 처지에 적절히 쓰는 바른 어법을 찾아야 하겠다. 요즘 타칭으로 쓰여야할 ‘부인’도 모두 아내라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극히 잘못된 일이다.

불가에서 강조하는 자리이타가 그리 어려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나의 삶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낮추고 남을 높임이 바로 자리이타이다. 자리와 이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타가 바로 자리이고 자리도 나만의 이로움이 아니라 바로 상대방인 남의 이로움에 도움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자리와 이타를 동양 윤리의 용어로 바꾸면 충(忠)과 서(恕)일터인데, 충은 나의 의무를 충실히 하는 것이고 서는 나의 처지로 남을 이해하는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의 폭넓은 포용성에 흡입되다가도, 행동의 구체적 지침의 용어를 찾지 못할 때가 많다. 자리이타의 광폭적 지침보다 충서(忠恕)의 간명함이 행동의 요령을 잡기에는 보다 더 확연하지 않을까.
 
이종찬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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