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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불교계의 항일운동』 임혜봉 스님 지음

  • 불서
  • 입력 2004.08.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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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 불교가 선도” 밝혀져 스님 등 586명 479원 조성해 전달


대한매일신보 등서 명단-기사 확인



일제의 노골적인 침략 의도가 드러나던 1907년 2월 일본에 대한 국채를 갚아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려는 민중들의 자발적 움직임인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다.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제국신문 만세보 등 각종 신문의 호응 하에 범국민운동을 전개해 4월말까지 보상금을 낸 사람이 4만 여명, 보상금 총액은 5월까지 230만원에 달했다. 이 운동에는 당시 불교계에서도 적극 호응해 많은 스님들이 참여했다.

최근 발간된 일제하 불교계의 항일운동에는 불교계의 국채보상운동을 조명하고 있다. 불교계의 국채보상운동 참여는 남아있는 기록이 많지 않고, 특히 현재까지도 불교계의 참여 수위에 대한 별도의 기록 확인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에 비추어 조선불교의 항일운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당시 발간된 신문의 기사와 광고에 따르면 제일 먼저 이 운동에 동참한 불교계 단체는 간성군 건봉사의 봉명학교 교직원과 스님들이다. 1907년 4월 9일자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기사에 따르면 당시 봉명학교 교직원 10여 명과 스님 학생 등 176명은 총 146원76전을 국채보상운동 성금으로 기탁했다. 당시 대한매일신보는 성금 기탁자 명단과 액수를 소상히 게재하였다. 이어 4월 20일에는 아산군 서암사 정경호 스님이, 4월 하순에는 경기도 장단순 화장사에서 성금을 기탁했다. 이밖에도 금강산 유점사의 유신학교,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 경남 동래부 범어사, 충남 계룡산 신원사, 경남 고성군 와룡사, 증심사, 표충사 등이 이 운동에 동참했다. 신문을 통해 보도된 불교계 동참인원만 586명, 액수로는 479원11전에 달했다. 그러나 신문에 보도되지 않은 기탁건수까지 생각할 경우 실제 동참인원과 액수는 이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다.

이 책의 저자 혜봉 스님은 1993년 발간한 친일불교론을 통해 같은 시기 불교계의 친일 행위를 분석 비판한 바 있다.

그간 불교계의 일제하 항일 운동에 관한 논문과 단편적인 글들이 발표되긴 했지만 그 양이 많지 않다는 것이 학계의 시각이었다. 혜봉 스님은 “당시 조선 불교에 어두운 부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반대편 기축에서 우리 불교사의 긍정적이고 투쟁적인, 그리고 독립을 열망하는 역동적인 활동상을 함께 살펴보는 것은 한국불교의 근현대사 연구에 균형을 이루는 작업”이라고 출간의 의의를 밝혔다.

비록 국채보상운동은 일본 통감부의 집요한 탄압과 일진회의 방해공작으로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한 채 좌절되고 말았지만 이러한 기록들은 민중스스로의 힘으로 스러져 가는 국운을 일으키려는 자발적 움직임의 발생과 함께 불교계 역시 적극적인 의미의 항일운동에 동참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민족사,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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