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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칼럼]종교의 만남(상)

기자명 법보신문

종교적 이념 대립 어느 사회나 있기 마련
맹목적 대립 벗어나 중도적 지혜 찾아야

어느덧 한 해가 가고 있다. 되돌아보면 어수선했던 일도 많았다. 그 중에서도 종교적 갈등의 조짐이 보였던 일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다행히 서로 자성하는 조심성으로 종교라는 큰 포용의 덕을 보인 것은 불행 중에도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종교적 이념의 대칭은 어느 사회나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 민족에게도 오랜 세월을 양립적 대각을 세워 온 것이 바로 유교와 불교의 대등적 공존이라 하리라. 고려 사회에서는 불교를 국교적 차원으로 대접하면서 사회의 관리자로서의 사대부라 할 유가들도 동행의 같은 궤도를 밟았기에 갈등적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선조에 유교를 국시로 하면서 불교에 대한 비판이 노골화되어 서로의 거리가 생기게 되었으니, 조선 초기의 정도전(?~1398)의 배불론이 대립의 첫 포문이었다 할 것이다. 불씨잡변(佛氏雜辨)은 그래서 쓴 것이다. 조금 뒤에 함허 득통(涵虛得通, 1376~1433)의 형정론(顯正論)이나,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은 어쩌면 정도전의 논박을 보고서 자신의 견해를 정리한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여기서는 이 두 분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당시의 사정을 이해해 보도록 하자.

“부처씨의 말에 해로움이 여러 갈래이나, 그러나 윤리 질서를 끊음에 거리낌이 없는 것 이것이 병의 뿌리이다. 침을 놓고 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대체로 천지 만물이 있기 이전에 먼저 태극이 있어서 천지 만물의 이치가 이미 혼연하게 그 안에 갖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태극이 음양을 낳고 음양이 춘 하 추 동의 사상을 낳으니, 일천 가지의 조화와 일만 가지의 변화가 다 여기에서 나온다. 물에는 근원이 있어 일만의 줄기가 파생해 흐르는 것 같고 나무에는 뿌리가 있어 가지와 잎이 무성하는 것과 같으니, 이는 사람의 지혜나 힘으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는 초학자에게는 말하기가 어려우니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으로 말하리라. 부처가 죽은 뒤로 지금 수 천년에 하늘은 위로 솟은 것이 저렇듯 확연하고 땅이 아래로 펼쳐진 것이 이렇듯 뚜렷하고 사람이나 만물이 그 사이에 태어나 이렇듯 찬란하고 해 달 별들의 왕래가 이렇듯 정연하다.… 천지가 항상 장구하고 만물은 항상 생존하는데 거짓이요, 허황하다 함은 무슨 말인가. 어쩌면 불교는 이치를 궁구하는 학문이 없어서 그 학설을 구하려 해도 얻지 못함인가, 아니면 마음이 좁아서 천지의 광대함이나 만물의 무리가 그 속에 용납될 수 없음인가.”

함허당의 현정론의 부분을 들어 보자.

“원리와 변통[經權]은 진리의 큰 요령이니 원리가 아니면 정상을 지키지 못하고 변통이 아니면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금륜성왕의 맏아들로서 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설산으로 들어 생명을 가벼이 여기며 고생한 절개와 평안히 참으며 꼼짝도 아니하였다. 애정의 얽힘이 다하고 참 밝음이 밝음을 기다린 연후에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뵙고 하늘에 올라 어머니를 찾아 진리의 요령을 말하여 모두 해탈하게 한 것은 이것이 성인이 변통으로 변화에 대응한 것이니 일상을 되돌려 진리에 부합하게 함[反常合道]이다. 그 덕이 천하 후세에 퍼져 그 부모를 대성인의 부모라 부르게 하여 그 성으로 일체의 성을 삼게 하여 출가한 이로 하여금 모두가 석씨(釋氏)라 하게 하니 어찌 큰 효도[大孝]라 하지 않겠느냐.”
서로의 주장을 다툼의 대립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근원을 펴서 중도를 지키게 된 조선조 벽두를 연 두 분의 글을 담담히 음미해 본다.
 
이종찬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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