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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잘 들으면 좋은 일

기자명 법보신문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에 전해 내려온다는 다음의 이야기는 천천히 읽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음을 먼저 기억하고 읽으시라. 차분하고 과묵한 성격의 한 농부가 한가롭게 풀밭에서 소 두 마리에게 풀을 뜯기고 있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또 하나의 다른 농부가 근처에 앉아 쉬다가 물었다.

“저 소들은 먹이를 잘 먹습니까?” “어떤 것 말이오?”
그 농부가 약간 당황해하다 뜸을 들인 후에 말했다.
“저 흰 소요!” “흰 소는 잘 먹습니다.”
“그럼 검은 소는요?” “검은 소도 잘 먹습니다.”
두 사람은 말없이 한참을 앉아서 풍광을 바라보았다. 그 지나가던 농부가 입을 열었다.
“저 소들은 젖이 잘 나옵니까?” “어떤 것 말입니까?”
“흰 소 말입니다.” “흰 소는 젖이 잘 나옵니다.”
“그럼 검은 소는요?” “검은 소도 잘 나옵니다.”
오랜 침묵이 흘렀다. 그 지나던 농부가 다시 물었다.
“왜 당신은 늘 ‘어떤 것’이냐고 묻습니까?” “왜냐하면 저 흰 소가 제 것이거든요.”
“아 그렇군요. 그럼 검은 소는요?” “검은 소도 제 것입니다.”

한번은 우리 절의 경전공부 시간에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주인이 말끝마다 소를 구분해서 말하는 이유를 얘기해보도록 했었다. 그랬더니 자기 소유물이라 소중하게 생각한 까닭이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았다. 이 이야기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신도들이 내 생각을 궁금해 하기에 말했다.
“묻는 것도 자유고, 답도 자유랍니다.”

의사소통은 ‘몸짓’이 언어보다 더 원론적이다. 한자의 특징 중 하나는 인체 묘사의 다양함과 인체를 훌륭하게 형상화한 추상 능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복사(卜辭)에 나타나는 인체와 관련된 문자는 人의 모양 약 400개, 大-약 200개, 무릎 꿇는 모양-약 200개, 女의 모양-약 200개, 又(手)의 모양-약 600개, 止(足) 모양-약 250개, 그리고 子·目·自·耳 등을 합하여 약 250개로, 약 8000의 자형 가운데 4분의 1에 이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인체가 문자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였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자연의 미묘한 변화나 이변은 그 소리(音)에서도 나타난다고 믿었다. ‘음(音)’은 하늘이나 신의 계시이며, ‘언(言)’은 기도나 맹세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성(聖)’이고, 그는 자연의 희미한 소리를 타고 오는 변화의 메시지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이 ‘들음’이란 귀(耳)를 통해 얻어지는 감각으로서의 단순한 소리에 그치지 않고 ‘성(聖)’과 ‘덕(德)’을 합한 글자인 ‘들어서 앎’을 뜻하는 ‘청(聽)’의 글자까지 ‘귀’의 연장선상에 둔다.
공자가 나이에 따른 덕을 구분하여 말하면서 오십을 ‘천명을 아는 나이(知天命)’라 했다. 그런데 ‘들음에 순조로움(耳順)’을 오히려 그 위의 육십에 둔 걸 보면, 좋게 잘 듣는 것이 인간세의 큰 공부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알고 보면, 자유롭지 못할 이유가 없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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