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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더 있다!(也風流)

기자명 법보신문

의기에는 의기를 더하고(有意氣時添意氣)
풍류가 아닌 곳에 또한 풍류로다.(不風流處也風流)

한 해의 끝자락이다. 닳아진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는 시간의 연속에서, 그래도 뒤돌아보는 심경은 복잡하다. 무덥던 여름, ‘쇠고기 협상’에 대한 저항의 촛불이 사람 사람의 손에 들렸었지. 이 질료는 ‘자기 성찰의 빛’이라는 미학에 어울리게 가물가물하면서도 얼마나 강한 전염성을 내포하는지 잘 보여주었다. 이어진 정권과 불교계의 불편, 그리고 세계경제의 동반 추락이라는 태풍이 휘몰아쳤다. 아직도 우리는 그 불황의 깊이를 모른다. 잘 살아보자는 공통의 꿈이 이렇게도 요원하단 말인가.

안타까운 것은 위기일수록 온 국민이 대동화합하여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하는데, 내놓는 정책마다 상위 기득권층을 위한 것이요, 언론에 재갈을 물려 소통까지 방해하니 이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알 수도 없다. 신명이 나야만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이 땅 한반도 동아시아의 끝. 근면하면서도 놀기 좋아해서 노래 부르고 춤추며 함께 나눠먹는 낙천적인 민족인 우리가 언제부턴지 청안(靑眼, 긍정적인 시선)보다 백안(白眼, 부정적인 시선)으로 변해가니, 우리가 좋아하는 흰색이란 게 이런 흰색이랴!

위의 시는 중국 선종의 제46조 백운수단(白雲守端, 1024?1072) 선사의 게송이다. 스님은 동오(東吳) 사람으로 서여산(西余山)에 머물고 있을 때 사자춤놀이를 보고서 깨쳤다. 그래서인지 흰 옷감에 사자 가죽처럼 알록달록한 물감을 들여 입고 다녔다. 혹 법당에 올라 납자를 맞이할 때면 이 옷을 펼쳐 보이고, 눈 내리는 아침이면 껴입고 성안으로 들어가니 어린아이들이 떠들어대며 뒤따랐다 한다. 당신의 깨달음의 기연(機緣)이 좋아도 그렇게 좋았을까…. 이것은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내 딛는 것’과 같다.

우리가 살다보면 한계라고 느끼는 정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의기를 다 했다 싶은 순간 삶은 다시 의기를 요구한다. 또 가을바람을 ‘금풍(金風)’이라 한다. 이 바람은 대지의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인간세계에 붙이자면 혁명이요, 새로운 개벽천지다. 그래서 가을은 색으로는 흰색이다. 가을에는 단풍놀이가 하나의 풍류지만, 볼 장 다 본 뒤의 허허로운 가지사이로 불어오는 북풍한설의 겨울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이 또한 풍류이다. 구미(歐美)에 처음 선불교를 전한 스즈키 다이세츠(1870~1966)선사는 이 게송을 좋아해서 당신의 암자 이름을 ‘야풍류암(也風流庵)’이라 했다지. 눈에 보이는 것 말고도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선사는 아시는 거다.

지금이 절기로 동지요, 주역의 괘로는 ‘지뢰복(地雷復)’이다. 위로 음효(陰爻) 다섯을 맨 밑바닥에 양효(陽爻) 하나가 이고 있는 모양이다. 어둠의 끝에 서리는 빛이요, 절망 끝에 자리 잡은 희망이다. 꿈이 없는 인생은 창백하다. 삶이 아무리 무상할지라도 우린 살아야 한다. 꿈이야 깨지면 다시 꾸면 되는 것! 이것이 인생의 의미이자 순간순간 느끼는 삶의 감흥이고 존재의 이유이다.

새해 ‘꿈’이라는 집에 현판을 건다면, ‘也風流庵’이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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