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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46. 유산을 물려받은 비구

기자명 법보신문

출가사문의 탐욕은 더없는 수치

황금이 소나기처럼 쏟아질지라도
사람의 욕망을 다 채울 수는 없다
욕망에는 짧은 쾌락이 있을 뿐
뒤를 이어 많은 고통이 따른다
 - 『법구경』

어린 시절에는 밤새 눈이 와서 온 도량 가득히 눈이 쌓일 때가 많았다. 부용당 육년 우리 은사스님은 6.25사변 때 인천에서 미처 피난가지 못한 사람들과 겨울을 보내시면서 먹을 것이 부족해서 언제나 우거지 죽을 쑤셨다고 한다. 아침 햇살이 퍼지면 죽을 얻어먹으려는 배고픈 사람들이 절 마당에 모여들기 시작했단다. 스님은 부엌에서 대문 쪽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다 모여들기를 기다리며 연신 바가지로 솥에 물을 더 부우시면서 죽의 양을 늘렸다고 한다.

일찍이 모인 사람들에게 얼른 죽을 퍼서 나누어 주지 않고 마당에 사람들이 다 모일 때 까지 죽 솥을 저으면서 물을 더 붙던 은사의 마음을 자신이 나이를 먹은 한참 뒤에야 깨닫게 되었다고 사형은 전한다. 은사의 지혜로 마당에 모인 사람들이 비록 묽은 죽이지만 모두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어려운 나날을 보내신 은사스님은 언제나 눈 오는 날이면 눈 오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눈 뿌리듯이 쌀이나 뿌리지” 하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셨다. 어린 시절 우리들은 그 말씀에 하늘에서 진짜 쌀이 쏟아지나보다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눈 오는 날이면 바가지를 가지고 마당에 나와서 바가지에 눈을 받아 모으곤 했었다. 애써 말려놓으신 박바가지를 다 적셔놓은 우리들의 말썽이 사실은 스님의 그 말씀이 원인이 된 줄은 스님 자신도 끝내 모르셨던 것이다.

돈벼락 맞길 바라는 현대인

우리는 녹아서 물이 되는 눈을 박바가지에 받아서 쌓아두면서 소꿉장난을 했다. 그리고 연신 쌀을 받아 담듯이 눈을 수북이 쌓으면서 부자가 된 기분으로 하늘을 쳐다보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생생하다. 그 때는 마당 한편에 눈을 수북이 쌓아놓고서 모두 만족하고 즐거웠다. 마음이 모두 부자가 되어서 쌀 걱정 없이 소꿉장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 어른이 되고나서는 소박했던 마음이 어느새 탐욕으로 물들어 있다. 하늘에서 돈이 쏟아지기를 기대하면서 욕심을 채우려고 허둥대며 살고 있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하늘에서 돈이 쏟아지지 않을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더더욱 하늘을 바라보고 원망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고층아파트에서 돈다발을 날렸더니 아래 마당에서는 아수라장이 벌어졌다고 한다. 어릴 때 눈을 퍼 담아 놓고 행복하고 즐거웠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현상이다. 돈은 우리에게 과연 어떠한 존재인가? 또한 황금은 우리에게 무엇을 안겨주고 있는 것일까?

부처님 당시에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약간의 유산 상속을 받은 젊은 비구가 있었다. 끝내는 유산으로 물려받은 재물이 화근이 되어 수행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고 세속적인 욕망에 다시 물들어 가는 모습을 보시고 부처님은 비구를 경책하기 위하여 위의 게송을 설하셨다고 한다. 옛날 우리들이 출가 할 때에는 세속적인 일체를 다 버리고 출가하였다.

이 글을 쓰는 본인은 여섯 형제자매와 모친이 부친의 49재를 마치고 함께 출가를 결심하였는데 그때, 출가정신에 따라서 가재(家財)를 다 친척에게 나누어주고 큰 형들이 다니던 학교도 퇴학하고 가족의 사진까지 다 불태우고 태백산 홍제사로 출가의 길을 떠났다. 출가는 이와 같이 무명 번뇌 속에서 탐착했던 소유물을 다 떨쳐버리는 일이다. 그리고 대자유의 길에 올라서 오직 출가의 진리(道)인 해탈열반으로서 목적을 삼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은 출가할 때 가족의 사진을 다 태워버리고 출가를 단행했는데, 막내인 내가 성장해서 부모님의 얼굴을 모른다는 말을 전해들은 큰 형이 고향 친척집을 두루 돌아다닌 끝에 친척이 함께 찍은 모친의 사진과 부친의 도민증에 붙었던 사진을 구해서 나에게 전해준 일이 에피소드로 남아있을 정도였다. 지금도 부친의 영정사진에는 도민증에 찍은 스탬프자국이 남아 있다.

번뇌 망상의 원인이 되는 소유의 집착을 버리는 출가정신이 이와 같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옛날에는 모두가 가난해서 출가한 사람에게 남겨줄 유산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사정이 좀 다르다. 부모님이 나름대로 소유한 재물이 있고, 사회도 평등해져서 출가한 사람에게도 동등한 분배의 권한이 있다 보니, 자연히 신참 출가자가 부모님 사후에 뜻하지 않던 유산을 받게 되는 경우가 승가에도 종종 있다. 이 뜻밖의 재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망상의 원인이 되고 수도에 장애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부처님 당시에 젊은 비구도 이와 같은 현상에 봉착했던 것 같다.

욕망 채우기는 커녕 윤회의 원인

이에 부처님께서는 해탈열반의 대장정(大長程)에 오른 출가비구가 길가의 돌멩이보다도 가치 없는 한 푼의 재물에 오염되어 자신의 나아갈 길을 잃고 헤매는 모습에 참으로 깊은 연민을 느끼신 것이 분명하다. 출가 사문이 재물과 권력에 오염된 모습에 대하여, 원효스님은 좬발심수행장좭에서 도인이 탐욕 하는 것은 수행자의 수치요, 출가하여 부자가 되는 것은 세상을 청백(淸白)하게 사는 군자도 웃을 일(道人貪是行者羞恥 出家富是君子所笑)이라고 한탄하고 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수행의 길에 들어선 젊은 비구를 경책하여, 설사 황금이나 재물이 온 하늘에서 소낙비처럼 쏟아진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욕망을 다 채워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그리하여 영원한 윤회의 쇠사슬에 얽어 매이는 어리석은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는 한탄의 말씀이다. 결코 지혜로운 수행자는 세상의 군자의 길에서도 하지 않는 소유의 탐욕에 물들지 말라고 타이르시는 것이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원심회 김장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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