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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깊은 책읽기]스크루지가 내게 가르쳐준 것

기자명 법보신문

『크리스마스 캐럴』찰스 디킨스 / 펭귄클래식 코리아

어린 시절 우리 집은 12월이 되기 무섭게 안방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금종, 은종이랑 온갖 장식물을 매달고 겨우 내내 트리 밑에서 카드를 그리거나 캐럴을 부르고 동화책을 읽으며 지냈습니다. 물론 성탄절 전야에는 머리맡을 말끔하게 청소하고 자는 것을 잊지 않았지요.

적어도 내 어린 시절은 크리스마스의 환상으로 가득 하였습니다. 나보다 2년 먼저 서울로 유학 갔던 언니가 방학한 다음 날 집에 내려와서 이 한 마디를 던지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산타가 진짜 있다고 믿었냐? 엄마 아빠가 산타였어. 이런 바보!”

혹시 뒤에 엄마라도 서계실까 살펴본 뒤에 천기누설이라도 하는 양 낮은 목소리로 들려준 그 말을 듣던 당시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설마 했었는데 그럴 줄이야. 엄마 아빠가 내 머리맡에 선물을 놓아두신다는 걸 어렴풋하게 짐작하기는 했지만 바쁜 산타 할아버지가 대신 부탁했다는 말을 나는 믿었었는데 그게 말짱 거짓이었다니 정말 언니가 야속하고 엄마아빠가 미워졌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이렇게 온통 야속하고 미운 일들을 날마다 겪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지레 겁이 났습니다.

점점 머리 커가는 딸들에게서 산타에 대한 환상이 깨졌음을 눈치 챈 부모님은 더 이상 선물을 애써 숨기고 자식들이 잠들었는지를 확인하는 이벤트를 벌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내게서 크리스마스는 사라졌습니다. 이제 나는, 산타클로스(Santa Claus)는 4세기 소아시아 주교였던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가 그 모델이며, 크리스마스트리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는 장면을 묘사하느라 연극무대에 전나무를 세워놓은 독일에서 유래하였고, 트리에 매다는 화려한 장식은 선악과가 달려있음을 상징하는 데에서 유래하였으며, 본래 산타클로스는 날씬하고 키가 큰 모습이었지만 1863년 미국의 만화가에 의해 뚱뚱해졌고, 1930년대에 코카콜라 광고에서 빨간 옷을 입은 산타가 등장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산타 모습이 만들어졌다는, 현명한 현대인답게 상식으로 무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더 똑똑해지건만 어찌된 일인지 겨울이 해마다 점점 더 추워진다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어제 밤에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읽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땡전 한 푼 없는 주제에 무슨… 더 고생해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가난한 사람들도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음을 알지 못하는 스크루지는 제 자신조차도 축제를 즐기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스크루지에게 온몸에 쇠사슬을 주렁주렁 매달고 유령이 되어 나타난 옛 친구 말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살아생전 내 스스로 만든 족쇄야. 이 족쇄에 휘감겨 내 영혼은 평생 이 사무실을 벗어날 줄을 몰랐네. 인생은 한번 뿐인데 그걸 잘못 사용하였고, 이제는 아무리 후회한들 되돌릴 수 없는데 그걸 몰랐으니! 그게 나였어.”

현대인들은 산타의 환상을 깨는데 성공했지만 산타가 사람의 심성에 미치는 역할은 지나쳤습니다. 내 자신이 산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왜 깨닫지 못할까요?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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