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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를 가다] 1.50년 억압과 티베트의 영혼

기자명 법보신문

24시간 부처님께 귀의하는 영성 친견하리

 

누구를 위해 기도하는 걸까. 관세음보살의 화신인 달라이라마가 기도를 올리고 있다. 카메라에 담긴 달라이라마의 어둡고 밝은 두 모습이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티베트 망명정부의 앞날을 묻고 있는 듯 하다. 티베트의 미래는 절망인가, 희망인가.

‘1959~2009’, 꼭 반세기다. 2009년 기축년은 달라이라마가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수립한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중국이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직후의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를 틈타 무력을 앞세워 침공한 티베트의 수도 라싸, 세계인들은 여전히 그 곳을 가장 맑고 순수한 영혼의 땅으로 기억하고 있다. 달라이라마와 티베트인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곳곳에서 고향인 라싸로 돌아가기만을 발원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성지와 동포를 파괴하고 핍박해 온 중국인들을 용서하는 자비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법보신문」은 2008년 11월 1일부터 9일까지 충주 석종사 성지순례단에 합류해 중국의 아미산과 티베트 라싸를 순례했다. 2009년 새해 기획 연재인 ‘티베트 망명정부 50년, 라싸를 가다’는 순례 기간 중인 11월 3일부터 7일까지 취재한 티베트의 자연과 라싸의 현재 모습, 티베트의 역사에 관한 기록들을 바탕으로 티베트의 고통과 불교문화, 중국의 티베트 침략史 등을 격주로 게재한다. 편집자


달라이라마, 1959년 3월 18일 인도로 망명
中, 50년 침탈하며 100만 학살…10만 고문死
티베트, “악행 용서…중국 위해 자비의 기도”

1959년 3월 18일 칠흑같이 어두운 밤, 달라이라마 텐진 갸초가 떠난 그 길은 미지의 세계였다. 그 조차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어둠의 길이었으며 순간순간 이어진 인연의 힘에 의지해 더듬더듬 갈 수 밖에 없는 무명(無明)의 길이었다.

동포의 대량학살 막으려 탈출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 있는 여름궁전 노블링카와 겨울궁전 포탈라궁 그리고,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티베트인들을 뒤로 한 채 노블링카의 출입문을 나섰을 때 달라이라마의 마음은 끝없이 이어진 미로와 같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24세의 청년 달라이라마에게 확실한 것은 중국의 무자비한 대량학살과 파괴가 시작되기 전에 자신을 그 어디론가 피신시켜야 한다는 동포들의 믿음 뿐. 그가 기댈 것은 티베트인들의 믿음이 전부였으며 시시각각 다가오는 선택의 시간들은 달라이라마로 거듭나기 위한 수련 중에 있었던 어린 수행승에게는 견딜 수 없는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티베트의 최고 스승인 ‘제14세 달라이라마’였으나 아직은 지도자로서의 지혜도, 경험도 부족했다. 그의 머릿속엔 망명지를 정하고 앞으로의 일을 이성적으로 판단할 여유조차 없었다. 중국이 고국과 동포들을 짓밟는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달라이라마 자신에게 쉬지 않고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하고 곧바로 결정해야 하는 일만을 되풀이 했다.
“만일 내가 라싸를 탈출한다면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또 어떤 방법으로 중국의 총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탈출했을 때 중국은 우리의 귀의처인 라싸를 파괴하고 나의 국민들을 학살 할 것인가, 나의 국민들은 내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궁전을 떠나 학살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경전과 집중 수행, 논리, 죽음 등 각 분야의 최고 스승으로부터 지난 20여년 동안 가장 엄격하고 존엄한 종교적 훈련을 받아 온 달라이라마였기에 언제 어디서 포탄과 총알이 날아올지 모를 긴박한 상황에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결코 없었다. 그 어떤 불안이나 공포도 밀려오지 않았다. 다만 ‘티베트를 떠나야 한다’는 믿음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티베트인들에게 달라이라마는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이기에, 달라이라마가 중국에 의해 사라진다면 티베트의 생명 역시 끝난다는 점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달라이라마 스스로가 자신을 구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달라이라마는 승복을 벗고 미리 준비해 둔 군복을 갈아입었다. 노블링카 주위를 지키는 중국 군인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안경을 벗고 소총을 찬 뒤 언제 돌아올지 모를 그 길을 그렇게 떠났다. 티베트인들의 대량학살을 피하고자 떠난 생(生)의 길이었으나 중국은 그로부터 지난 50년간 티베트를 장악해 가는 과정에서 100만명 이상의 티베트인들을 학살했다. 그 중 10만명은 모진 고문을 견디다 못해 숨을 거두었다. 인류의 근대사에서 가장 거대하고 긴 ‘죽음의 시간’이 바로 중국에 의한 티베트 침탈과정이었으며 가장 잘 감추어진 ‘최악의 학살극’이기도 했다.

600만 티베탄 일심으로 귀향 발원

그럼에도 달라이라마와 티베트인들의 중국을 향한 마음은 어떠한가. 여느 민족 같으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고 온 몸은 공포에 질려 분노와 공포는 곧바로 폭력으로 표출될 것이다. 그러나 600만 티베트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2008년 3월, 라싸와 티베트 곳곳에서는 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인들의 평화적인 봉기가 일어났으며 중국은 늘 그러했듯이 장갑차와 최신예 자동화기를 동원해 무차별 진압했다. 이 유혈사태로 인해 1000여 명의 티베트인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와 세계에 흩어져 있는 티베트인들 사이에서는 “이젠 우리도 무장 독립투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됐으나 달라이라마와 티베트의 지도자들 또한 늘 그래 왔듯이 비폭력 평화노선을 결의했다. 그것이 부처님의 제자가 가야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다람살라에서 살아가는 티베트인들은 비록 고향과 형제자매, 포탈라궁, 야크(티베트 고지의 소과 동물)를 잃었지만 자연과 가장 친밀한 민족으로서 웃음과 자비를 잃지 않은 채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들의 행복의 근원은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달라이라마와 부처님의 가르침, 히말라야의 자연이다. 다람살라는 물론 라다크, 레 등 인도 북부에 위치한 세계 최고의 오지에서도 자연에 그 어떤 거슬림도 없이 하루 24시간을 기도하며 불자로서의 신앙을 놓지 않는 이들이 바로 티베트인들이다.

그들의 그러한 삶은 21세기 최첨단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눈에는 느리고 답답하고 더딜 뿐이다. 갈수록 강대해지는 중국의 힘을 생각한다면 비폭력 평화운동을 주창하는 달라이라마와 티베트인들의 티베트 자치요구 또한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몽상가들의 헛된 망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몽상가가 아니다. 그렇다고 현실에 대해 그릇된 판단을 하지도 않는다. 그 언젠가 달라이라마는 중국의 현재와 한국 방문의 가능성에 대해 아주 재미있는 견해를 밝히신 적이 있다. 견해의 요지는 이러했다.

티베트 불교, 삼독 치유할 백신

“예전의 중국은 힘만 있었는데 이젠 돈(경제력)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중국을 우리가 힘으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무력으로 우리(티베트)를 침공했을 당시 동포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망명길에 올랐던 것처럼 우리는 고도의 티베트 자치를 성취하기 위해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일 뿐입니다. 비폭력이면서 평화적인 방법 말입니다. 이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압력 때문에 한국을 갈 수 없는데 내가 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베이징에서 중국 주석과 만찬을 한 뒤 북한의 김정일을 만나고 그런 연후에 한국의 서울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비로소 한국을 방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절박하고 암울한 현실, 그러나 티베트인들은 절망적인 한계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는 법이 없다. 인간은 물론 작은 벌레에 대한 자비와 여유를 늘 유지하려 노력한다. 티베트인들은 “물질에 의한 행복은 ‘영원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영원한 것은 오직 부처님께 귀의하는 마음과 영성(靈性, spirituality) 뿐”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은 새벽어둠이 가시기 전 법당에 들러 달라이라마와 부처님께 귀의하는 기도로서 하루를 연다. 일상생활 중 걸어 다닐 땐 경전이 들어있는 마니차를 돌리면서 관세음보살육자대명왕진언인 ‘옴마니 반메 홈’을 염송한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의 눈물의 화현인 그린따라보살. 티베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보살이다.

법당에서 오체투지를 하다가 밤이 되면 기도를 계속하기 위해 나무와 돌에 경전을 적은 룽다(타르쵸)란 천을 줄에 꿰어 걸어둔다. ‘룽다’가 바람에 의해 흔들리면 경전을 읽는 것으로 여기며 경전 읽는 소리가 바람과 함께 온 세상에 전해지는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라싸로 가기 위해 중국 사천의 청두역으로 향하는 동안 과연 라싸에서 맑은 영혼을 간직한 티베트인들을 만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중국의 끝없는 욕심으로 억압당해 온 라싸이기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마음이 자꾸 일었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엔 티베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보살 중 한 분인 그린따라보살과 달라이라마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린따라보살이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의 눈물의 화현이니, 신앙적으로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인 달라이라마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리라.

특히 온 몸이 녹색인 그린따라보살이 달라이라마의 얼굴과 여러 차례 교차된 까닭은 중국이 억압하고 있기는 하지만 라싸의 대다수 티베트인들이 달라이라마의 눈물의 화신이 되어 맑은 영성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마음 한구석에 있어서였다.

그러한 믿음은 그린따라보살의 신앙적인 연원을 생각하면서 더욱 또렷해졌다. 연원의 내용은 이렇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지옥중생을 다 제도하리라는 대(大) 원력을 세우신 뒤, ‘만약 그 마음이 퇴전한다면 몸이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질 것이다’라고 서원했다고 한다. 그런 후 지옥에 가서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여 극락세계로 보냈으나 그때마다 지옥에 가 보면 전과 같이 수많은 중생들이 있는 게 아닌가. 이에 보살이 다시 중생들을 구제하여 극락으로 모두 올려 보낸 뒤 하늘을 보니 지옥으로 떨어지는 중생들의 수가 여전히 겨울의 눈송이처럼 셀 수없이 많았다. 순간 보살은 퇴전하는 마음이 일었고 처음 서원한 것처럼 몸은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졌다. 부처님께서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보살의 몸을 원래대로 복원하고 더 많은 중생을 구제하라며 천 개의 손과 눈을 만들어 주셨다. 이때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의 양쪽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화현해 따라보살이 되었고 오른쪽 눈물의 화현이 바로 그린따라보살이다. 왼쪽 눈물의 화현은 화이트따라보살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생들의 사업과 소원 성취를 관장하는 그린따라보살의 몸은 녹색이며 수명을 지켜주는 화이트따라보살은 흰색이다. ‘따라’는 산스크리트어로, 티베트어로는 ‘돌마’이다. 그린따라보살이 부드러운 여성의 자비를 상징하다 보니 티베트 여성 중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가 바로 ‘돌마’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고향과 형제를 빼앗은 원수마저도 자비로서 용서하고 부처님께 기도하고 하루 24시간 자연과 부처님께 귀의하며,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정직한 윤리를 잃지 않은 원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돈(富)을 제일 가치로 여겨 경제발전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우리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그들이 인류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티베트 불교를 공부하고 체험하려는 이들의 욕구를 강하게 자극하는 에너지이다. 그리고 그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관찰하고 함께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티베트인들의 순수하고 맑은 영성은 우리 인류가 앓고 있는 병고와 아픔을 치료할 수 있는 위대하면서도 지극한 가르침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영혼은 ‘더’(more)를 향해 끊임없이 경쟁하는 우리들의 삼독심을 정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백신임에 틀림없다.

달라이라마가 너무도 황급한 나머지 눈물을 흘릴 겨를도 없이 떠나온 라싸. 그곳으로 향하는 칭장열차의 출발 시간인 밤 8시 36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내심 불안하기도 하다. 라싸 유혈사태로 중국 공안들의 감시가 강화돼 순례가 불가능한 성지가 많을 것이라는 중국 가이드들의 설명을 들은 터였다. 그런 와중에서도 라싸에서 티베트 불교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마음은 이미 칭장열차를 타고 티베트의 4000m 하늘 길을 달리고 있다.

중국 청두=남배현 기자 nba710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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