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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특집]15주년 맞은 ‘94년 개혁’ 평가와 향후 과제

기자명 법보신문

“반개혁 인물-낡은 악습 해결 못한 미완의 개혁
소통 막는 기득권 세력 척결이 선결 과제”

‘사부대중이 함께 이룩한 불교계의 첫 민주화 운동’이라는 평가를 받는 1994년 종단개혁이 올해로 15주년을 맞았다. 서의현 총무원장의 ‘3선 개헌’ 저지에서 비롯된 94년 종단개혁은 내부 자성을 통해 종단이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반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개혁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본지는 2009년 새해를 맞아 15주년을 맞은 94년 종단 개혁의 참 의미를 되돌아보고 향후 과제를 점검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21일 담양 용흥사에서 특별대담을 진행했다. 이날 대담에는 94년 개혁 당시 범종추 부의장을 맡는 등 개혁불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고불총림 백양사 유나 지선 스님과 재가불자로서 개혁을 이끌었던 경기대 정치교육원장 손혁재 교수가 참가했다.  편집자

종교계 첫 내부개혁 ‘긍정적’
준비없이 무작정 뛰어들어
구태인물에 종권 넘겨 ‘회한’

손혁재: 지난해 불교계는 8·27 범불교도대회를 개최하는 등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 사건을 계기로 모처럼 단결해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이렇다 할 성과도 내지 못한 상황에서 총무원 집행부가 정부관계자를 만나 “없던 일로 하자”는 등 종도들의 염원에 반하는 행동을 취해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때 15년 전에 있었던 종단 개혁불사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은 앞으로 내부 문제 혹은 사회 문제에 대해 불교계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를 점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지선 스님은 94년 개혁당시 중요한 역할을 맡은 바 있다. 당시 개혁불사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무엇이었다고 보나.

지선 스님: 94년 개혁의 배경은 외부적인 요인과 내부적인 요인이 있었다. 우선 당시 우리나라는 완전한 자주성과 민주화를 이룩하지 못한 상태였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던 시기였다. 이와 맞물려 우리 종단도 자주성이 훼손돼 있었고, 일제시대 제정된 악법들로 문중과 파벌, 인사편향정책, 제도와 법의 미비로 인해 혼란을 거듭했었다. 거기에 통찰력을 갖춘 지도자가 없었고, 일부 성직자들의 사리사욕과 관련된 비리가 만연해지면서 내부적으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손혁재: 종단 개혁의 출발은 내부적으로 서의현 총무원장의 독단과 독선이 횡행했고, 또 정권과 결탁해 발생한 각종 비리문제가 터져 나오면서 비롯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개혁은 어떻게 시작됐나.

지선 스님: 실천승가회는 5가지 개혁안을 만들어 종정 스님과 총무원장에게 종단 개혁을 요구했다. 그러나 모두 반대했다. 당시 서암 종정 스님은 “개혁은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들이 개혁을 하고 싶으면 다른 곳에 가서 스스로 개혁적인 삶을 살면 저절로 되는 것이지, 시비를 걸어 개혁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런 과정에서 서의현 총무원장과 관련된 ‘상무대 비리의혹’ 사건이 터졌고, 때마침 총무원장 선거가 닥쳤다. 당시 총무원장은 자신의 비리의혹을 감추기 위해 종헌을 개정해 출마를 강행했다. 그러자 중앙승가대, 동국대 등 젊은 학인 스님들이 이에 반대하며 개혁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범종추가 결성됐다. 범종추가 결성되자 개혁에 동참하는 인원들이 점점 늘어났고 개혁불사는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최형우가 조계사에 공권력을 투입해 농성 중인 스님 400여명을 강제로 잡아갔다. 이것이 도화선이 됐고, 개혁불사에 일반 대중들도 동참하면서 결국 서의현 총무원장 체제를 무너뜨리게 됐다.

손혁재: 사실 범종추를 주도하는 스님들의 대부분이 전라도 출신이고, 김대중 씨를 지지하는 스님들이라는 정보 보고가 있었고 정부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김영삼 정부는 불교계에서 서의현 체제가 무너지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만약 서의현 총무원장 이후 김대중 지지자들이 종권을 잡으면 정부로서도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던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지선 스님: 그렇다. 당시 그런 분위기 때문에 실천승가회에서는 나에게 범종추의 대표가 되는 것을 비롯해 특정 모임 참가, 글쓰기, 인터뷰 등을 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다. 사회운동에 대한 전력 때문에 내가 전면에 나설 경우 개혁은 오히려 실패할 수 있다는 여론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조직의 요구를 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잘못 됐다고 본다. 어째든 당시에는 옳다고 판단했고 흔쾌히 동의했다.

손혁재: 94년 개혁은 범종추라든지 스님들의 요구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개혁불사 진행과정에서 김영삼 정부가 서의현 총무원장을 돕기 위해 공권력을 조계사에 투입한 일종의 법난이 원인이 됐다. 이로 인해 그 당시 개혁에 무관심하던 스님들과 대중들도 이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됐고, 또 적극 동참하면서 범종추에 힘이 실리게 됐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그것 때문에 서의현 총무원장이 물러났던 것이다.

지선 스님: 그것이 맞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종교계가 개혁이 필요한데, 불교계가 먼저 시작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심지어 나와 같이 활동했던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성직자들은 우리 불교계를 부러워했다. 자기들은 제도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는데 불교는 시작했다며 불교가 성공을 거두면 우리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손혁재: 당시 개혁 불사를 지켜보면 충분한 준비 없이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보니 정작 총무원장이 물러난 이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 때문에 개혁 불사 이후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지선 스님: 범종추는 구태적인 종단을 개혁하려는 것에서 출발했지, 원장을 몰아내고 종권을 잡는 혁명을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혁명을 준비했다면 원장은 누가하고 조직은 어떻게 꾸릴 것인가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그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농사짓기 위해 논두렁에 불을 냈다가 산불이 난 꼴이었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당황하고 우왕좌왕하게 된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철저한 준비 없이 진행한 개혁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손혁재: 94년 개혁을 실패했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선 스님: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혁세력들이 뭉쳐 철저한 준비를 통해 조직과 이론의 체계를 세우고 실천과제를 설정하고 준비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개혁적인 인물들을 계속해서 충원해줘야 한다. 그러나 94년 개혁은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무모했다는 생각이 든다. 예상치 못하게 집행부가 무너지다보니 준비된 지도자도 없었고, 개혁을 주도적으로 이끌 인물도 너무나 부족한 상태였다. 마치 1950~60년대 정화불사를 시작했을 때 비구승들은 없는데 수천 개의 사찰을 차지하다보니 자격 없는 사람이 주지로 가서 종단을 망쳐버린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개혁세력의 인원 충원이 안 됐고, 지도자도 개혁적인 인물로 뽑지 못했다. 여기에 개혁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 종회의원도 80명으로 늘렸지만 개혁과 무관한 구태의연한 인물들로 채워졌다. 그러니 처음부터 개혁은 거꾸로 가는 개혁이었다. 잘못된 개혁의 대표적인 예가 총무원장 선거 제도였다. 처음 개혁 세력은 비구계를 받은 사람은 모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직선제를 주장했다. 그러나 개혁세력의 주장은 반영되지 못했고, 결국 각 본사에서 10명의 선거인단을 꾸려 투표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개혁이 변질된 첫 번째 예라고 볼 수 있다.

손혁재: 당시 조계사에서 선거제도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몇몇 토론자를 제외하고 직선제는 안 된다는 분위기였다. 특히 직선제는 안 된다는 전제를 깔고 직선제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는 일종의 요식행위를 하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했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개혁회의는 왜 직선제를 고집했었나.

개혁 대한 진지한 고민 부재
반성·참회 없는 과거 인물
화합 이유 받아들인건 잘못

지선 스님: 우리는 직선제를 끝까지 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직선제를 하다 보면 자격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걸러질 것으로 봤다. 그렇게 몇 번만 하면 종단이 바뀔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이 이뤄지지 않아 비개혁적인 인물들이 총무원장에 당선되면서 종단의 개혁은 올바로 진행되지 못했다.

손혁재: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또 다른 측면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즉 94년 개혁과 함께 척결돼야 했던 대상들이 다시 대거 종회의원으로 발탁됐다. 과거에 대한 사과와 반성, 이런 것들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화합이라는 이유로 개혁의 대상을 다시 끌어들인 것은 잘못이었다고 본다. 과거에 분명한 잘못을 저질렀는데 처벌받지 않으니까 그 뒤로 그런 행위가 되풀이됐던 것이다. 또 이런 인물들이 개혁종단에 참여하면서 개혁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과거에 누렸던 기득권을 계속 가져갈 수 있을까’에만 관심을 뒀던 것으로 보인다.

지선 스님: 정확한 지적이다. 개혁 세력들이 총체적 역량을 발휘해 철저하게 준비했어도 반대세력의 저항에 부딪쳐 개혁은 실패할 가능성이 큰데 하물며 우리는 개혁세력이 뭉치기는커녕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 됐던 인물들을 개혁과정에 동참시키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또 당시 개혁종단의 수장으로 앉았던 분들도 개혁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마인드를 가진 분들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개혁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손혁재: 개혁의 방법에 있어서도 당시 여러 가지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즉 “불교의 개혁은 단순히 사회의 개혁과 다르다. 급진적이고 투쟁을 통한 개혁은 비불교적이다. 불교의 개혁은 수행과 교육을 통한 점진적 개혁”이라는 지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범종추가 주도했던 개혁은 지나치게 세속적이었다고 보지 않나.

지선 스님: 당시 몇몇 스님들로부터 같은 지적은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사람, 특히 지도자가 바뀌지 않으면 불교의 미래는 없다고 봤다. 물론 교육을 통해 인재를 길러내는 점진적 개혁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지금 당장 종단 집행부부터 말단까지 썩어가고 있는데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또 잘못된 교육과 제도 속에서 젊고 참신한 인재를 길러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우선 사람을 바꾸고 인식 전환을 통해 불교를 바꾸는 것이 시급했다.

손혁재: 그렇다면 그 이후 개혁과정에서 스님들의 청정성, 수행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진행했다면 오히려 개혁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시 말해 스님들은 종도들의 사표다. 스님들이 계를 좀 더 잘 지키고 수행에 대한 문제에 더 관심을 뒀다면 개혁은 탄력을 받았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일반 신도들은 종무행정의 개혁보다는 신행, 수행의 문제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지선 스님: 옳은 말씀인데, 그 때는 개혁하겠다는 사람이나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모두 뒤섞여 비개혁적으로 흘러가버렸다. 또 솔직히 말해 청정성 문제, 수행문제, 승풍진작 문제에는 관심이 적었다. 구태한 종법을 개정하겠다는 현안 불끄기에만 열을 올렸을 뿐, 미래지향적인 개혁의 플랜을 제시하지 못했다. 종도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개혁을 하겠다고 들어선 집행부도 과거와 다를 바 없다고 판단했고, 그렇다보니 개혁종단에 등을 돌리게 된 것이다.

손혁재: 그 당시 사찰운영과 관련해 사찰운영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그것만이라도 제대로 시행했다면 청정성이 회복됐을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또 그렇게 되면 종도들도 개혁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지선 스님: 지금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고 해도 그것은 안 될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제일 보수적인 곳이 종교집단이기 때문이다. 개혁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정법을 바탕으로 역사, 사회의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실제 사찰운영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해봤다. 그러나 신도들의 인식을 전환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었더니 오히려 신도회가 두 패로 쪼개지는 역효과가 발생했다. 절에다 시주를 많이 하는 노보살들을 중심으로 한 세력과 청년회나 대불련 등 젊은 신도들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중요한 부분이지만 인식을 바꾸지 않은 개혁은 오히려 싸움만 일어날 뿐, 악화된 과거로 되돌아가는 부작용만 낳는다는 것을 느꼈다.

손혁재: 사람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했다. 제도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제도를 시행해 나가는 것도 사람이라는 점에서 공감되는 부분이다. 개혁에 있어 사람이 중요하다고 느낀 구체적인 배경은 무엇이었나.

지선 스님: 우리는 개혁 불사할 때 정화불사 때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말자고 했다. 정화불사의 목적은 백번 옳았다. 그러나 그 방법이 비종교적이고 비인간적이고 너무 조급했다. 또 개인적인 영웅의식이 발동을 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오늘날 후유증이 너무 크다. 돌이켜보면 94년 개혁은 정화 때와 너무나 흡사했다. 개혁 취지는 옳았는데 너무 조급했다. 당시 개혁회의는 6개월만 하고 내놓겠다고 발표했다가 다시 2개월 연장한 뒤 떠나버렸다. 종권을 염두에 두고 한 개혁이 아니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다보니 너무 급했고 결국 비개혁적 인물에게 종권을 넘기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수많은 젊은 스님들의 피와 땀, 눈물을 통해 이룩한 개혁으로 새로운 종단 지도자가 됐다면 불철주야 개혁에 매진했어야 했다. 그러나 새 집행부는 오히려 개혁세력을 견제하고 종도들의 염원을 버린 채, 개인 영웅 만들기에 급급했다. 처세주의, 인기주의에 연연해 자신에 대한 홍보에 열중했고 시급한 종단 개혁은 염두에 두지 못했다. 자연스레 개혁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깊이 있는 철학을 가진 그런 분을 지도자로 모시지 못하면 종단 개혁은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당시 뼈저리게 느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도 사람이 중요하다.

지선 스님 “조급성 버리고 치밀한 준비로 새로운 개혁 준비”
손혁재 “제도 개혁 보다 불교 본연의 청정성 회복이 중요”

손혁재: 그렇다면 스님께서 직접 자신을 희생해 종단 개혁에 앞장 설 수는 없었나.

지선 스님: 사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에 대해 부끄럽다. 돌이켜보건대 나는 굉장히 비겁한 사람이다. 무능력과 패배주의에 빠져 수행한답시고 은둔 도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문중의 열세와 사회운동을 했다는 전력으로 많은 스님들로부터 견제를 받아 나서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느냐고 스스로에게 되물으면 난 그런 노력이 없었다. 깊이 반성하는 대목이다. 종단을 개혁할 수 있는 참 좋은 기회였음에도 나 같은 사람이 나가서 종단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손혁재: 흔히 94년은 종단 개혁이고 98년은 종권다툼이라고 한다. 스님도 그렇게 말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98년이 종권 다툼으로 보이지만 94년 개혁의 연장선에서 당시 못다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인데 자꾸 종권 싸움으로만 몰고 가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94년 개혁 이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까지도 개혁은 지속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지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안타깝게 생각하기 보다는 앞으로 94년 개혁불사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를 되짚어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또 제도의 개혁은 어떻게 이룰 것인지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선 스님: 사실 개혁회의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실제 미약하지만 종무행정이라든가, 예산문제, 포교방법, 승려 교육 등에 대해 일정 정도 성과를 이뤘다고 본다. 다만 개혁 불사의 본질적인 정신이 퇴색됐다는 점에서 냉정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정화를 주도 했던 인물이 다시 정화의 대상이 되고, 개혁회의를 주도했던 인물들이 다시 개혁의 대상이 되는 이런 아픔을 더 이상 되풀이 하지 말고 치열한 자기반성을 통해 개혁불사에 매진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문제인데, 새해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있다. 개혁불사 이후 지난 15여 년 간 허송세월로 보냈다는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년 선거를 잘 치러야 한다. 우려되는 부분은 종회라는 곳이 너무 계파주의에 빠져 각 계파의 이해관계에만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계파의 이익을 초월해 21세기에 맞는 지도자를 선출하는데 앞장서야 할 때다.

손혁재: 총무원장 선거라는 것이 새로운 사람을 뽑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시절 하지 못했던 과제를 점검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선거에 앞서 미비한 종헌 종법에 대해 손을 보거나 종회의원 제도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비구니 스님에 대한 의석을 늘리고 전문성을 가진 재가신도를 상징적으로 종회의원으로 모시는 것도 필요하다. 또 스님이 10년 정도 주지를 하면 5년 이상 의무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도 좋을 것으로 본다. 이런 것들이 제도적으로 정착되면 좋은 스님들을 양성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지선 스님: 그렇다. 그런데 그런 문제는 소통이 우선 필요하다. 소통만 제대로 되면 종단이 바뀔 수 있다. 지적한 대로 비구니 참정권 문제를 비롯해 재가신도들의 종무행정 참여, 이판사판이 본래 둘이 아니니까 교대로 수행하는 것 모두 종단 구성원들의 소통만 이뤄진다면 바로 시행될 수 있다. 그러나 소통이 안된다. 종단의 요직을 차지한 기득권 세력들이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시행이 어렵다. 모두의 인식이 전환돼야 한다. 경험을 가진 전문가로 구성된 종책자문위원회를 구성해 현실적인 종책을 개발해 나간다면 그 동안 제기됐던 각종 문제들도 쉽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동안 선출된 지도자들은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손혁재: 주제와 조금 벗어나긴 하지만 한 동안 우리 사회에서 티베트, 미얀마, 베트남 불교 등에 대한 열풍이 불었다. 그런 것들이 어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성철 스님 열반 이후 일반 대중으로부터 존경받는 한국 스님이 줄어든 현상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 같다.

지선 스님: 그것도 종단 개혁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제이다. 종단 개혁이나 청정성, 수행성을 말로만 하고 산에 가만히 앉아서 소리만 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나타내 보여야 한다. 티베트 불교가 왜 관심을 받느냐. 그들은 몸으로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수행을 통해 체득한 것을 삶 속에서 ‘여봐라’하듯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큰스님이 나오려면 종단이 개혁이 돼서 그런 스님이 나오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 시류에 부응해 대중을 왜곡하고 스스로 상징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말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대중을 감동시켜야 한다. 그런 풍토가 됐을 때 큰스님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큰스님이 나오면 또 다음 지도자를 길러야 한다. 옛날 총림의 조실이나 방장 스님들은 24시간 잠을 못 잤다고 한다. 총림에 있는 모든 수행자들을 일일이 지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 그런 지도자가 없다. 이력에만, 감투 쓰는 일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치열하게 수행해 올바로 살아야 한다.

손혁재: 새해를 맞아 불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지선 스님: 어려운 난국일수록 부처님 법을 한마디라도 더 읽었으면 좋겠다. 정법에 귀의하는 길만이 힘 있게, 지혜롭게, 당당하게 이 난국을 해쳐 나갈 수 있다. 자기 수련이 없다면 탐진치 삼독에 빠져 현대문명이 낳은 자본주의의 폐해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자기 수련을 많이 한 사람은 어떤 힘든 세상이 와도 극복하고 살 수 있는 지혜와 용기와 힘이 생기는 법이다.

손혁재: 오늘 대담을 통해 개혁불사라는 것이 어떤 제도의 개혁이나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불교 본연의 정신을 살리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말하자면 종풍을 살리는 것은 스님을 비롯한 전 종도들이 계를 철저히 지키고 수행을 열심히 하고 또 불교경전을 열심히 읽으면서 스스로 인식을 전환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본다. 이런 인식들이 불교계 곳곳에 자리매김할 때 미완의 94년 개혁이 비로소 완성될 것이라 믿는다.
 
정리=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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