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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오대산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기도하는 한 생각이 행복한 세상의 씨앗

편안하셨습니까. 그야말로 선경이 펼쳐졌습니다. 이 순간 안개가 피어오르고 적절한 서기가 이곳 적멸보궁에 가득합니다. ‘월백, 설백, 천지백’이라. 깊은 밤 흰 달빛이 가득 내리 비치고 천지에 눈이 가득하니 하늘과 땅이 모두 흰색으로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월백, 흰 달이란 마음의 달, 심월입니다. 마음이 밝고 가없으니 그 흰 마음으로 눈도 보고 천지를 보면 마음과 천지가 더불어서 온통 희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하얗습니까? 검습니까? 우리는 삼업이 청정치 못해서 먹구름 끼듯이 마음이 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은 지나가는 구름일 뿐입니다. 그러니 구름이 사라지고 나면 본래는 모두 흰 것뿐입니다. 그러나 푸른 것도 아니고 흰 것도 아니고 검은 것도 아닌 것이 마음의 근본 자리입니다. 심월이라는 것을 흰색이라고 표현을 하지만 검은 것이 오면 검고, 붉은 것이 오면 붉고, 네모난 것이 오면 네모나고, 둥근 것이 오면 둥글고. 어떤 것이 오든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다 보여 주는 것이 마음이고 마음의 반영일 뿐입니다. 바로 일체유심조라는 말이지요. 흰 마음으로 흰 눈을 보면 오대산 천지가 더 없는 환희로움입니다.

업의 파도 속에서도 여여한 자리

흰 눈이 오니 다들 좋으시지요. 하지만 흰 것이 아무리 좋다 해도 흰 것만 오래 보면 백색공포증이 생깁니다. 세상에 영원이 좋고 완전히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본래 마음의 자리, 흰 것이 오면 희게 받아들이고 붉은 것이 오면 붉게 받아들이는 이 마음의 본 자리가 아니면 세상천지와 만물이 아무리 좋다 해도 영원한 것,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요즘 세상살이가 얼마나 힘듭니까. 사바세계는 본래 고해라 하지요. 끝없는 바다와 같이 힘든 곳입니다. 고통의 물결, 출렁거리는 고통의 물결이 가득한 곳입니다. 파도가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오듯 업의 파도가 몰아치는 이 세상이 곧 업의 물결입니다. 그런데 이 업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마음입니다. 그 마음의 본래 자리, 바탕의 자리, 불성의 자리에서 업을 보면 이것 또한 지나가는 거품입니다. 아무리 물결이 치고 바람이 불고 업파랑이 쳐도, 파도가 오면 파도를 받고, 업이 오면 업을 받고, 어두운 것이 오면 어두운 것을 받아들이듯이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애를 써서 만든 것이 현대 사회 아닙니까. 그런데 금융위기가 한번 오니 이 세계가 어디로 갈지 모르고 태풍이 몰려오든 캄캄해집니다. 대한민국이라는 큰 배가 동서남북을 분간 못하고 흔들리는 지경입니다. 이 큰 배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으니 그 속에 타고 있는 우리가 멀미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에는 돈 많이 갖고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요즘 세상에서는 돈 많이 가질수록 더 걱정이 태산입니다. 금융위기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은행이 파산할지, 이 돈이 어제 사라질지 등을 고민하는 것이고 주가가 떨어지면 몇 십억 가진 사람은 몇 십억, 몇 천억 가진 사람은 몇 천억 날아가는 것 아닙니까. 당초에 없는 사람은 주가가 떨어지든 말든 걱정할 것이 없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이런 저런 사람이 있어야 돌아가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사람도 있고 잃는 사람도 있고 쓰는 사람도 있고 해야 돌아가게 돼 있습니다. 이것이 어울려서 화장세게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집을 한 채 지어도 같은 것 틀린 것이 서로 어우러져 집 한 채가 만들어지듯 전체가 있고, 부분이 있고, 같게 생긴 놈이 있고 다른 놈이 있어 서로 원융해서 하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석가래, 대들보, 기와, 지붕, 만들어지다 부서지는 것까지. 이것이 모두 우주의 중중무진한 인연의 관계로 서로 맺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만사가 나와 연결돼 있고 모든 우주의 생명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불이불이라는 중도의 이치를 터득해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면 옳으니, 그르니 하는 분별지심을 못 벗어나기에 그 속에서 항상 지옥이 있고 천당이 있고 아수라가 있고 육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근본 육도를 만드는 자리 그 자리 이전의 자리를 몰록 알면 육도가 다 거품이 되고 현상이 그대로 실상이 됩니다. 그 자리에선 지옥에 가도 연화보대에 앉고 천국에 가도 혼자 즐거울 이유가 없습니다. 항상 여여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화택이라도 청량한 기운 속에 앉을 수 있는 지혜와 힘이, 여래의 힘력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도를 통해 여래의 힘력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기도 열심히 하자는 이치가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휘청거려 어지럽고 괴로워도 근본 본성의 자리는 물질 변화에 날아가고 괴로워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 자리하고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만 힘들면 고통스럽고 고뇌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중생입니다. 근본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나그네가 돼 있는 까닭에 한 발 한 발 열심히 기도해서 분별심, 망상지심을 하나하나씩 떨어내고 근본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자리에 돌아가서 고향에 돌아온 듯 편안한 자리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상원사 선원 주련에는 한암 스님께서 경봉 스님께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보낸 편지를 보면 ‘물소리, 산소리, 기화요초와 만 가지 물건이 모두 고향 아닌 것이 없다. 전단향 나무 가지를 쪼개면 각 가지가지가 향기롭듯 본래 비로자나 부처님의 자리서 나온 두두물물이라.’는 내용입니다.

일념으로 돌아갈 때 가피도 가능

본래가 향기롭다는 것, 본래가 실유불성이니 세상 만 가지 버릴 것이 하나 없고 다 존중스럽다는 마음입니다. 그 자리로 돌아가야 세상에 상생, 화쟁 평화가 넘치게 됩니다. 우리가 말로는 너도 부처라 하지만 이게 잘 안됩니다. 이유가 뭡니까. 자가의 업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데서 오는 분별지심의 상 때문입니다. 그것이 삼천 가지의 세계를 펼쳐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근본 일념이 나오기 이전의 자리가 우리가 가야할 고향의 자리고, 부처님 자리고, 우리 본래 면목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면 불보살의 가피도 오지 않습니다. 근본의 자리로 돌아가면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닌 이 광대무변한 힘이 나옵니다. 일념으로 지극할 때 세상과 내가, 하늘과 내가 통하게 됩니다. 일념통천이라. 지성감천이라. 감응, 가피라는 것도 결국 일념으로 돌아갔을 때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갖가지 분별지심으로 마음의 힘이 분산됩니다. 중요한 일이 있거나 마음을 추슬러야겠다 싶으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힘이 나오고 지혜가 나옵니다. 기도를 통해서 지혜를 끌어내는 힘, 우리가 받아야할 인과의 업보를 정화 시키는 힘, 업력에 끄달려 가지 않는 힘이 나오게 됩니다. 공덕과 지혜를 더욱 일구어가는 삶, 복해를 일궈나가는 힘이 모두 기도에서 나옵니다.

인류의 역사는 공업입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업입니다. 그래서 공업중생이 됩니다. 그러니 내가 잘났다 네가 못 났다를 따질 것이 아니라 서로의 업을 녹여야 합니다. 자신의 업도 녹이고 세상이 업도 녹여야 합니다. 모든 책임이 다 상대방에 있다고 생각하고 원망 하면 세상은 아수라가 됩니다. 화쟁이 안됩니다. 일념의 기도 지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세상의 평화를 일구는 길입니다. 일신이 청정하면 다신이 청정하고 다신이 청정하면 시방 법계가 다 청정합니다. 일념청정, 기도하는 한 생각이 우주를 밝히는 길이고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근본 씨앗입니다.

이 법문은 모든 대중이 함께 들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항상 상대적입니다. 우리는 눈이 와서 좋겠지만 노루는 싫겠지요. 고가 다 하면 낙이 오고 낙이 다하면 싫어도 고가 옵니다. 현실이 고통스럽고 일신이 힘들고, 내년에도 희망이 없어 보이고 살기가 어려울듯 해도 기도하는 일념으로 이 고통을 이겨 주기 바랍니다.

세상이 본래 추운 것이 아니라 마음이 추운 것입니다. 마음이 세상을 춥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음이 따뜻하면 세상도 따듯해질 것입니다. 마음이 하기에 따라 가정도, 세상도 국가도, 세계도 다 훈훈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마음을 갖고 열심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새해의 새 기운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법문은 지난해 11월 28일 조계종 4교구 본사 오대산 월정사에서 열린 보궁초하루법회에서 주지 정념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정념 스님 은
1980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일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1981년 오대산 상원사에서 수선 안거 이래 26안거를 성만했다. 1985년 범어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수지, 1987년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했다. 남고사 주지, 오대산 상원사 주지를 역임하고 1996년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2000년 중앙종회 호법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2004년부터 조계종 제4교구 본사 오대산 월정사 주지 소임을 맡아 수행과 포교에 진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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