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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서민과 국회의 하루살이

기자명 법보신문

새벽 예불 시간까지 불던 강풍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다. 오늘은 본사에 포살이 있어 가는 날이다. 새해 들어 첫 장날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대합실에 모여 서로 덕담을 나누고 있다.
아침 해는 은빛 파도를 붉게 물들이며 서서히 뱃머리에 오르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바다에 나갔던 배들이 하나 둘 항구로 돌아오고 있다.

오랜만에 나그네가 되는 듯 쾌활한 기분에 차창으로 들어오는 산과 들이 함께 길을 나서는 듯 반갑게 인사를 한다. 걸망을 메고 편백나무 숲길을 따라서 들어간다. 처음 출가했을 때가 생각나고 아직도 옛 발자국의 흔적이 남아있는 듯하여 자박자박 걸음을 옮기며 초발심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본다. 어느덧 고색창연한 일주문에 이르러 소멧돌에 조각된 선정과 지혜를 상징하는 두 마리 사자 석상을 만져보니 비로서 조계로 통하는 대로에 들어섰음이 실감 난다.

포살을 알리는 대종이 울리니 대중스님들이 하나 둘 큰 방에 모여들고 있다. 지난 허물을 성품에 비추어 반조하며 본래 청정하여 한 티끌도 없음을 뿌리까지 드러낸다. 나의 허물을 비롯하여 이웃들의 허물을 대신하며 일체중생의 허물을 함께 참회한다는 것은 일체 중생의 바탕이 이와 같이 본래 청정하므로써 여기에 바로 계합하는 것이다. 차별이 없는 성품에는 누구나 평등하여 일체 죄업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어서 방장 스님의 법문이 시작 되었다. 옛날에 보문 스님을 모시고 살 때 일인데 사고가 나서 수술을 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스님은 의사에게 부탁하기를 마취를 하지 말 것을 당부 하였다. 왜냐하면 당신의 정진력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수술이 끝나고 나서 보문 스님은 살에 칼을 댈 때는 몰랐는데 뼈를 자를 때는 들고 있던 화두도 달아나버리고 정신이 혼미해서 온데간데없더라고 실토를 하며 생사에 당해서 누구나 장담할 수 없으니 용맹정진을 당부했다고 한다. 여기에 비추어 보니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이어서 더욱 방심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에 큰 경책이 되었다.

포살을 마치고 대중교통을 번갈아 오르내리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이런저런 삶의 애환을 들으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은사 스님께서 걸망에 넣어주시던 국수 한 다발을 차를 청소하는 사람들에게 주었더니 감사하다며 웃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흐뭇하기만 하다.

서민들은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드는데 국회에서는 민주주의 기본인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언론악법을 통과시키려고 난장판이 벌어졌다. 언론을 필요에 따라서 통제하고 특정 세력들에게 맡긴다면 이 땅의 민주주의는 다시 후퇴하고 말 것이다.

어느덧 항구에 어둠이 내리는데 붕어빵집에 들렸더니 나이 든 주인아주머니가 허리를 다쳐서 일어나지 못한다고 하소연이다. 그래서 선 체조 몇 동작으로 바로 일어나게 해주었더니 붕어빵을 덤으로 얹어주고 병은 자랑을 해야 한다며 크게 웃는다. 선원에 도착하여 하얀 진돗개 반야와 나누어 먹었더니 좋아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반야를 나투면서 포살이 잘 회향되었음을 증명해 주었다.
처마 끝에는 고드름이 거꾸로 자라고 있다.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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