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심청심]더불어 산다는 것

기자명 법보신문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세밑에 자리 잡은 동장군(冬將軍)의 기세가 해를 넘기고도 거침이 없다. 땅이 얼고 만물은 움츠러들겠지만 초목은 이런 겨울을 나야 뿌리가 들뜨지 않고 자연에 적응하는 힘이 길러진다. 그렇다고 겨울이 무슨 뜻을 가진 것은 아니다. 주기(週期)가 바로 질서인데, 천체에서 미물에 이르기까지 존재에 필요한 힘을 상호 간에 얻기는 해도 서로 간섭의 의지는 없다. 무심이랄까? 인연이 모이면 생겨나고 그 인연이 다하면 소멸될 뿐이다. 반대로 인간은 정(情)이란 게 있어서 모든 상황마다 자극을 받고 순응을 하던 역행을 하던 나름대로의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삶의 원칙성(經)과 융통성(權)이 조화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천장지구(天長地久,도덕경 7장)”라는 제목의 홍콩영화가 있기도 했지만, 인간의 유한함과 달리 천지가 장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고, 따라서 천지의 운행은 강건하다는 것이다. ‘죽음과 삶에는 명(命)이 있고, 부유함과 귀함은 하늘에 달려있다’는 것은 동아시아권의 일반적 정서이다. 그러면서 이 ‘명’을 ‘정해져 있는 무엇’으로 생각해 왔으나 이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라는 것은 ‘우연성’에 더 가깝다. 고정된 실체가 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공자 이래 유학에서 권하는 사회심리는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過猶不及)”는 것이었는데, 삶의 진중한 자세에 대한 철학이다.

신년, 대통령의 휘호는 “부위정경(扶危定傾)”이었다. “위기를 맞아 잘못됨을 바로 잡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뜻인데, ‘태조가 위기를 맞아 나라를 안정시켜 그 위엄과 권위가 왕을 두렵게 했다(太祖 扶危定傾 威權震主)’는 주서(周書)의 문구가 출처이다. 반면 교수들이 뽑은 것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출처는 『논어』‘자로’편의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이다. “군자는 조화하지만 동일하지 않고, 소인은 동일하면서도 조화를 못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대구를 이루는 문장을 단독으로 떼어내서 쓰기도 하던가? 아무튼 여기에서도 ‘사사로움’이 문제가 된다.

‘조화’의 전제는 서로 간에 차이·구별을 인정·찬성하는 것이고, 그런 다음에 간극을 조정·배치하여 적절한 지위·정황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즉 각각 제자리를 얻게 한 연후에야 전체의 화해·조화가 있고 개인과 사회의 향상을 도모하게 된다. 그런데 별반 다를 바도 없으면서 목소리만 높인다던지, 겉으로는 함께 하는듯하면서도 우월의식을 놓지 않는다면 동질성이 회복되겠냐는 물음이다. 그래서 수양이 된 이는 무리는 이룰지라도 이익을 앞세운 ‘편협’이나 ‘당파’를 짓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和’를 “서로 응답하는 것이다”라는『설문해자』의 해석을 따르면서 곡식의 ‘화(禾)’로 아는데, 이것은 원래 군영의 문(門)을 의미하고 ‘和’는 항복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즉 적의 군영 문 앞에서 신에게 하는 맹세로 복종의 맹세다. 따라서 화합의 핵심은 ‘나의 내세움’에 있지 않고 ‘나의 양보·물러섬’에서 시작된다 하겠다. 말이란 게 생각의 표출인데 여러 휘호들이 “대면하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읽히는 것은 나만의 시각일까?

서울은 여전히 한설(寒雪)없는 북풍(北風) 뿐이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