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경 스님의 유식삼십송 강설]23.무자성
[인경 스님의 유식삼십송 강설]23.무자성
  • 법보신문
  • 승인 2009.01.19 15: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체 삼라만상은 변하지 않는 것 없어
본래 성질 없음 알고 현상 집착 버려야

곧 삼성에 의지해서 저 삼성(三性)에 성품이 없음을 세운다.
그런 까닭에 부처의 비밀한 뜻은 일체의 현상은 스스로의 성품이 없다.
(卽依此三性 立彼三無性 故佛密意說 一切法無性)

이것은 제23송이다. 이것은 원성실성, 의타기성, 변계소집성이 스스로 어떤 자성이 없음을 밝히는 게송이다. 이것은 철학적으로 유식학파가 중관학파의 공사상에 기초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공이란 연기이고 무자성(無自性)으로 이해한 것은 용수의 중관학파이다. 용수는 일체의 현상(法)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취하는 부파불교의 유부학파를 비판하면서 일체는 본래 자성이 없음을 주장한다. 일체의 현상에 스스로의 성품이 없다는 무자성은 존재, 언어의 2가지 관점에서 논의할 수가 있다.

첫째는 존재 자체는 본래 스스로의 성품이 없다는 의미이다. 스스로의 성품이 존재한다면, 사물은 변화가 있을 수가 없다. 모든 현상이 변화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유한 자기 성품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자성(自性, )이란 어원 그대로 ‘자체의 고유한 존재’로서 예를 들면 물은 불과 다른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반대로 불은 물과 다른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것이 유부학파의 입장이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논의하면, 물은 ‘사물()’이라 하고, 모든 물이 가지는 성질을 ‘자성()’이라고 규정할 수가 있다. 이를테면 물은 샘물도 있고, 호수물도 있고, 소낙비도 있고, 여러 종류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공통적인 요소로서 축축하게 젖게 하는 성질, 혹은 H2O로 구성된 점에서는 공통된 점이다. 이것이 샘물, 호수물, 소낙비의 자성(自性)이다. 이것이 유부의 입장이다. 물의 자성은 어떤 조건에도 관계없이 불변하고, 생멸하지 않고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항상(恒常)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중관학파는 모든 현상으로서 물의 성질, 자성은 없는 것으로 본다. 물의 성질도 변화한다는 말이다. 물 자체가 인연을 따라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인연이 바뀌면 역시 함께 변화된다고 본다. 물의 성질이 바뀌지 않게 보이는 것은 단지 그 조건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뜨거운 화로 속에서는 물은 더 이상 젖는 성품을 유지할 수가 없다. 몹시 추운 날씨에서도 물의 젖는 속성은 역시 작동되지 못한다. 어떤 특정한 조건 아래에 H2O는 유지되고, 특정한 조건에서 물을 구성하는 요소가 분리되면, 더 이상 H2O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모든 물의 현상은 그 자체로 무자성이다.

무자성을 논증하는 두 번째는 우리의 언어적인 습성이라는 점이다. 그것을 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원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관습적인 이유에서 그렇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무엇을 수레라고 할 것인가? 그것은 바퀴도 아니고, 운전하는 손잡이 부분도 아니다. 그것은 유기적으로 어떤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결합되고,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작동을 할 때, 부르는 기호일 뿐이다. 무엇을 꽃이라고 하는가? 수술도, 꽃잎도, 받침대, 줄기도 아니다.

하지만 유식불교의 입장은 중관파의 이런 입장을 방편적인 관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는 유식의 삼성은 존재한다고 본다. 다만 어리석은 사람들이 집착으로 말미암아서 현상을 보고는 세계라고 애착을 일으키고, 자기라는 고집된 견해를 내기 때문에 ‘무자성(無自性)’이라고 설했다고 본다. 따라서 중관학파에서 말하는 무자성의 논리는 궁극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방편적 가르침이라고 본다. 다만 변계소집성, 원성실성, 의타기성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병명을 말할 때 매우 조심스럽다.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그곳에 고착되어서 증상을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훗날 중관학파와 유식학파의 심각한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각자의 주장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본래의 의미라고 주장하면서 논쟁을 하였다. 논쟁은 현재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