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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이근원통(耳根圓通)

기자명 법보신문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새해 벽두부터 찾아온 동장군이 맹렬한 기세를 떨치며 오르내리고 있다. 예부터 선사들은 춥고 배고플 때 오히려 발심이 되어 수행하기 좋은 시절이라고 했다. 여러 지성인들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추위를 뚫고 마음의 소를 찾아서 머나먼 섬에 찾아왔다.

오후 햇살이 넉넉하고 따스해서 바다로 내려간다. 은빛 파도는 정갈한 몽돌 밭에 내리어 묘음으로 구르고 듣는 성품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다. 세상의 소리는 저마다 차별이 있고 자기주장이 남아있어 서로 화합하기 어렵지만 모든 강물이 바다에 이르면 차별이 사라지고 일미평등을 이룬다. 이것이 파도소리이며 소리 없는 소리여서 바로 무심에 계합한다. 마치 어머니의 자장가 소리가 아무런 뜻이 없지만 어린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잠에 들듯이 파도소리는 세상의 고통에 시달린 사람들에게 다가와서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한다.

보통 사람들은 파도소리를 들으면 지난여름 바다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거나 지나간 세월의 상념 속에서 감정을 일으켜 사로잡히지만 수행하는 사람은 소리를 바로 돌이켜 들을 줄 아는 성품을 깨닫는다. 소리를 들을 때는 성품이 귀에 있으므로 바로 알아차리면 소리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들을 줄 아는 성품이 오롯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관세음보살이 깨달음에 들어간 인연이다.

서산대사는 마을 앞을 지나가면서 홀연히 닭울음소리를 듣고 대장부 일대사를 마쳤노라고 오도송을 읊었다. 사실은 소리를 들을 때 귀가 소리를 쫓아가지도 않고 소리가 귀에 달려오지도 않지만 귀와 소리가 함께 공하여 주객이 사라지고 성품이 오롯이 드러나게 된다. 능엄경에서 말하는 이근원통은 이근을 통하면 나머지 근이 하나로 만나게 되어 원통을 이루게 됨을 말하며 이것이 관음신앙의 본질이다.

먼저 자기 자신이 관음이라는 철저한 믿음이 성취되면 밖으로 구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입으로 부르고 귀로 들으면 성품의 관음을 바로 친견하여 일체 소리는 묘음이 되고 일체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여기에서 무한 대비가 흘러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관자재보살로서 일체 경계에 걸림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모습이다.
어둠이 내리니 수련장에는 플룻을 연주하는 소리와 목탁과 요령, 죽비소리가 번갈아 들리고 밖에는 개 짖는 소리가 서로 차별을 드러내고 있지만 오직 듣는 성품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는 한결같은 성품이 드러날 뿐이다.

세상은 새해 들어도 변화를 거부하고 서로 자기주장만 옳다며 갈등과 대립 속에서 싸움질이 계속되고 있다. 국가 지도자는 모든 국민의 소리를 차별 없이 들을 줄 아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험난한 경제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파도소리에는 모든 소리의 주파수가 함께 있다고 한다. 다가오는 설 명절이 가족 간에 화합을 다지는 귀한 만남이 되었으면 좋겠다.

길들여진 핸드폰 벨소리를 바꿨더니 싱그러움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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