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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사람이 무서운 세상

기자명 법보신문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정초 산림기도를 마쳤다. 음력 정월의 7일간의 신중기도는 절집에서 연년이 치르는 고유한 행사이다. 삶은 우연적이라 미리 한해의 무장무애함을 불전에 기도드리는 것이다. 시작을 중요시하는 마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르지 않는데, 좋은 시작이 일의 절반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일주일 내내 법문을 하고 회향과 더불어 방생까지 마치고 나니 온실엔 벌써 튤립이 피었다. 봄이 멀리 않았다는 소식이다.

지방과 달리 서울에서는 올해는 눈 구경을 거의 못해서인지 가는 겨울이 마냥 아쉽기만 하다. 절집에서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고 이뤄지는 공부나 기도 모임을 ‘산림(山林)’이라 한다. 이와 비슷한 용어로 ‘총림(叢林)’이 있다. 총림은 염불원·선원·강원·율원 등을 갖춰야 한다. 종합수도원 쯤 되겠다.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숲에 들어가 보면 죄다 곧고 높게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햇빛을 보기 위해 경쟁적으로 커나간 결과인데, 이처럼 총림에서는 많은 대중이 서로 탁마하면서 바른 수행을 익히기 때문에 올바른 승행이 구족되는 것이다.

한번은 부처님께서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에 대중들에게 가르침을 주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루 세끼 백 개의 솥의 음식을 보시한다 할지라도 가축의 젖을 한번 짜는 잠깐의 시간에 자비심을 실천한다면, 이것이 더 큰 공덕이 됨을 이르셨다. 자비로써 마음의 해탈을 발전시키고 연마하며, 자비를 수레로 삼고, 자비를 토대로 삼고, 자비의 마음을 견고하게 하고, 자비 속에서 자신을 단련하여, 자비로움을 온전히 성취하리라는 말씀이셨다. 불교의 목적은 어떻게 자비심을 실현하고 회향하느냐에 있다고 하겠다. 불교의 제일계(第一戒)가 불살생(不殺生)인 이유는 남을 해치는 행위와 의도는 자비의 종자를 끊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화합을 저해하는 제일 큰 요인이기도 하다.

도시재개발의 시행을 둘러싼 갈등으로 인한 농성과 이의 진압 과정에서 6명이 목숨을 잃는 일이 서울 용산에서 벌어졌다. 원주민의 재 정착율이 30%도 채 되지 않을 만큼 영세업자와 저소득층의 주민들이 대책 없이 내몰리고 있다 한다. 이해가 상충하면 다툼은 필연인 법, 시간을 가지고 설득하고 적절한 보상책을 강구하는 것이 당국의 도리 아니겠는가? 미국 같은 나라가 국가를 위해 죽은 시신을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찾아오는 노력을 보이는 것은 개인의 생명을 나라가 보호한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이다. 경찰작전에 용역직원들까지 앞세운 일이 있었던가. 그런데도 책임자의 문책은 고사하고 지금은 경제가 중요한 때라며 오히려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니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알 수가 없다.

『논어』「위공령』편에 나오는 이야긴데, 공자가 진나라에서 양식이 떨어져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병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제자인 자로가 화가 나서 공자를 뵙고서 “군자도 어쩔 수 없는 때가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이때 공자는 “군자는 어쩔 수 없는 때에도 여전히 원칙을 지키지만, 소인은 어쩔 수 없게 되면 곧 함부로 한다”고 이르셨다.
절차를 무시하고 조급하게 밀어붙이는 자세는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산에서 만나면 호랑이 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던데, 이젠 ‘백주(白晝)도심’에서도 그런가 한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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