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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변호사의 세상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줄이고 늦추는 가운데 보람이 있으니
먼저 비워야 채울 수 있음을 명심하길

설날이 지나고 입춘까지 지났으니 ‘소’의 해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썰렁한 세기적인 경제 한파 속에서 시작된 새해라서 그런지 여느 때와는 달리 거리에서 예년 같은 활기를 느낄 수 없고, 사람들의 얼굴에도 수심(愁心)이 서려 보인다.

경제계를 주름잡던 거대 기업들조차 살아남기 위한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정부는 정부대로 경제회생을 위한 처방을 서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경제가 나아질 조짐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의 수는 더해만 가는 모습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모두가 조급해지고, 남에게 조금이라도 뒤질세라 안간 힘을 다 쓴다.

사람들이 여유로운 삶을 잊은 지가 꽤 오래 되었지만, 날이 갈수록 사람의 삶은 더욱 각박해지고 있다. 내가 젊었을 때만해도 물질적으로는 덜 풍요롭고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가전기구도 별로 없었지만, 우리의 삶은 적당히 절제되고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풍만했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이른바, 근대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빨리 빨리’와 ‘더 많이’가 입에 붙어 다니게 되면서, 시간을 쪼개 쓸 정도로 삶이 빨리빨리 돌아가고, 허기진 사람처럼 언제나 ‘더’에 쫓겨 살게 된 것이다.

물론 물질적인 풍요가 대가로 돌아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이란 계속 달리고만 있을 수 없음은 물론, 채우기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빨리 빨리’와 ‘더 많이’만 챙기다 보면 당연히 피로가 쌓이고 그러다보니 병이 나게 마련이니, 어쩌면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세계적인 경제 불황은 그 과보인지도 모른다.

성주괴공(成住壞空)은 불변의 진리이다. 모든 것은 생겨나면 변하고 언젠가는 반드시 멸하는 순환의 과정을 걷기 마련이다. 사람이 하는 경제활동이라고 해서 그 예외일 수 있겠는가?

오히려 사람의 지칠 줄 모르고 족함이 없는 욕심에 ‘빨리 빨리’의 조급함이 더하여 불황의 늪이 더 깊고 순환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일은 얼어붙은 세계적인 경제상황은 모습을 바꾸어 반드시 되살아난다는 이치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매무새를 가다듬고 마음자리를 바로 보아 사람다움을 되찾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 “채우려면 먼저 비워야 한다”는 말이 있고,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교훈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알기만 하면 무엇에 쓸 것인가. 아는 것을 실행에 옮겨야 비로소 그 아는 값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당면한 경제위기의 극복이 급할수록 오히려 우직하고 과묵한 소처럼 여유 있게 대처하는 지혜를 보여야 한다. 마침 금년이 소의 해인 것도 우연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또 욕심을 절제하고 만족함을 아는 미덕을 갖추어야 한다. 비워야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엄연한 진리이다.

『법구경(法句經)』의 「명철품(名哲品)」에 “세상은 모두 욕심에 빠져 피안(彼岸)에 이른 사람은 아주 드물다. 혹, 사람이 마음을 가졌어도 이쪽 언덕에서 헤매고 있다”라는 가르침이 눈에 띈다. 욕심의 무서운 해독을 밝히신 부분이다.

어쩌면, 이는 바로 오늘에 사는 우리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하신 말씀인지도 모른다. 아무쪼록 우리는 소욕지족(少欲知足), 곧 욕심을 줄이고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만족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오로지 우리의 마음에 달린 것임을 명심할 일이다.

이상규 변호사 skrhi@rhi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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