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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마음 밭에 법의 단비를

기자명 법보신문

해는 구름 속에 숨었고 도량에는 바다 안개로 가득하다. 아마도 비가 올려는 모양이다. 작년 여름부터 섬에는 비다운 비가 한 번도 내리지 않았다. 관음상 앞에 나아가 두 손을 모으고 자비의 먹구름을 드리워 법비를 내리시고 모두가 해탈을 이루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법화경』 「약초유품」에서는 “하늘에 구름이 일어 큰 비가 내릴적에 온 산과 들에 가득한 풀과 나무들은 그 크기에 따라서 물을 받아드린 것이 다르다”고 했다. 부처님께서는 차별 없이 한 맛으로 법을 설하지만 사람들은 그 수준과 근기에 따라서 법을 이해하고 받아드리는 것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효스님께서도 부처님은 오직 “사람이 본래 부처”라는 일승만을 설했지만 근기에 따라서 차별이 있다고 했다.

세상은 지금 온통 불기운에 휩싸여 있다. 작년에 불어 닥친 미국발 경제 한파가 아직 꺾일 줄 모르고 있고 용산참사와 더불어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의 공포와 함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대량 실업의 공포와 줄줄이 도산하는 기업들의 비명소리가 마치 불난 집속에서 아우성치는 것처럼 들린다. 봄이 온다고 해도 예전 봄과 같지 않다는 말이 참으로 실감 난다. 설상가상으로 오랜 가뭄으로 저수지가 거북의 등처럼 갈라져 바닥을 드러내고 더구나 식수마저 제한적으로 공급 받는 모습을 보니 유엔이 정한 물 부족 국가라는 말이 실감나며 참으로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것만 같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비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하늘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해묵은 원망과 증오의 감정을 풀고 서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우선 내안의 탐진치 삼독의 불을 먼저 끄는 일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동안거가 끝나고 스님들은 저마다 인연을 따라서 산으로 마을로 만행을 떠날 것이다. 한 철 동안 정진해서 얻은 지혜를 나누는 것은 마치 부처님께서 출현 하신 것과 같기에 가는 곳마다 목마른 사람들에게 마음 밭에 법의 단비를 내려서 타는 갈증을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시절인연은 거역할 수 없는 것이어서 꽃은 피고 물은 다시 흐를 것이다. 다만 요구하는 것은 소처럼 우직하고 근면하며 필사적인 정진을 배가 하는 것으로 모두를 감동 시킨다면 반드시 큰 비가 내리고 일체 생명들이 약동하는 환희의 봄이 될 것이다.

어느덧 안개가 흩어지고 나니 저 멀리 썰물의 바다는 서서히 파란 나라를 드러내고 있다. 금방이라도 달려가서 마음껏 해초를 따다가 실컷 봄을 맞이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서 자꾸 바라보다가 물때를 맞춰서 바다로 내려간다. 동안거 용맹 정진으로 몽돌밭은 더욱 둥글고 정갈하게 단장하여 해맑은 기운으로 반갑게 맞아 준다. 갯바위에는 물미역과 돌김 부드러운 파래와 톳이 지천으로 붙어 자라고 있다. 신명이 나서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느덧 바다와 하나가 되어 웃음으로 넘실거린다.

여기저기 동네 사람들도 함께 봄을 맞으며 해초를 따면서 바다와 소통을 하고 있어 더욱 즐겁기만 하다. 어느덧 자루에는 해초가 가득하여 더 욕심을 부리면 안될 것 같아서 얼른 몸을 돌리고 잠시 갯바위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본다. 하루해는 바다에 떨어지고 저녁노을이 저 멀리 섬에 내려앉아 장엄한 연꽃을 피우고 있다. 바다는 겨우내 끝없이 안으로 고통을 다스리면서 저마다 자기 색깔과 향기에 맞는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온 종일 바다에 나가 봄을 맞으며 돌아와 혼자 마주하는 저녁이지만 부드러운 해초의 향기가 입안에 가득하고 뿌듯한 미소가 어둠을 밝히고 있다.

앞마당에는 매화의 향기소리 바다를 건너간다.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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