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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 스님의 유식삼십송 강설]26. 가행위 단계

기자명 법보신문

인식의 주객 존재하지 않음을 통찰해
안주하지 않는 것이 유식의 참된 도리

눈앞에 조그만 대상을 세워서, 유식의 본성이라고 이른다면,
이것은 얻는 바가 있기 때문에, 참으로 유식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다.
(現前立少物 謂是唯識性 以有所得故 非實住唯識)

이것은 제27송이다. 이것은 유식수행의 5단계 가운데 가행위(加行位)를 설명한 게송이다. 자량위(資量位) 단계가 복덕과 지혜로서 내적인 자질과 역량을 키우는 단계라면, 가행위(加行位) 단계는 인식의 주객이 본래 존재하지 않음을 통찰하여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는 참된 유식의 도리를 깨닫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견도에 의해서 유식의 본성에 머물기 바로 직전의 단계이다. 가행이란 힘을 더하여 더욱 정진한다는 의미로서, 실질적인 유식수행의 가장 중요한 영역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이것은 다시 4단계로 구별된다.

첫째는 난(煖)이다. 따뜻해지다는 의미로서 비유적으로 진리에 다가가는 의미이다. 이것은 세워진 대상에 가까이 가서 탐색하는 단계이다. 여기서 대상이란 영상으로서 바로 유식을 말한다. 유식(vijnapti-matra)이란 표상으로서 영상의 동의어이다. 이때 탐색의 대상이 되는 영상은 이름, 의미, 자성, 차별이라는 4가지의 성격을 가진다.

이를테면 물을 예로 들면 물이란 기호(名)와 의미(義)를 가진다. 또한 물은 독특한 스스로의 성질(自性)이 있다. 축축하고 젖는 물의 성질은 불이나 흙과 구별되는 고유한 차별(差別)을 가진다. 이들이 물의 영상을 구성하는 속성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임시적으로 조건이 지어진 문맥에서 존재하지, 그 자체로 독립된 실체성을 가지지는 못한다. 난이란 이것을 정확하게 존재하는 그대로 탐색하여 통찰하는 단계를 말한다.

두 번째 단계는 정(頂)이다. 정이란 온전한 통찰에 대한 은유이다. 대상에 대한 이름, 의미, 자성, 차별이 모두 본래 존재하지 않는 인연의 결과임을 여실하게 통찰하는 것을 말한다. 밝아진 지혜와 증대된 선정에 의해서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대상영상이 본래 존재하지 않음을 여실하게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들은 모두 마음에 의해서 비롯된 가설, 꿈으로서 실제로는 얻을 수가 없음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그럼으로써 밝음이 더욱 왕성하여 번창하기에 정수리 정(頂)이라 한 것이다.

셋째는 인(忍)이다. 인이란 수용하여 참고 견딘다는 의미이다. 앞의 단계에서 인식되는 대상영상이 존재하지 않음을 철저하게 자각하게 되면, 그것을 인식하는 주관도 존재하지 못한다. 인식의 상황에서 주관과 객관은 서로 상호 의존적인 존재인 까닭에, 한 쪽의 부재는 곧바로 다른 한 쪽의 부재를 초래한다. 자아란 언제나 대상, 타자를 전제한다. 하지만 세상과 타자가 본래 마음에서 비롯된 허상임을 자각하면, 그곳에 의존된 자아도 본래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회피와 대안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불안과 공허감에서 회피하지 않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지 않는 채로, 본래 존재하지 않는 무아, 그 자체로 견딜 수가 있다면, 이 단계가 바로 인(忍)이다.

넷째는 세제일법(世第一法)이다. 세간에서 가장 뛰어난 법이란, 자아의 존재에 대한 통찰(我空)과 세상의 모든 존재에 대한 통찰(法空)을 충분하게 이루는 단계를 말한다. 대상의 존재가 마음에서 비롯된 허상이고, 여기에 의존된 자아 역시 존재하지 않음을 관찰하여, 자아와 법이 모두 공하고 이들은 마음에서 만들어진 영상에 지나지 않음을 철저하게 자각한 관계로 세상에서 최고로 뛰어난 법, 세제일법이라고 부른다.

이상과 같이 가행위 단계는 매우 중요한 유식수행의 단계로서 가행위의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견도, 견성의 길에 나아갈 수가 없다. 유식의 핵심된 행법은 ‘영상관법(影像觀法)’인데 이것은 바로 이 가행위 단계에서 수행된다. 이점에 대해서 성유식론에서는 ‘보살은 영상이 오직 마음임을 관찰하여 마침내 주객을 본래 얻을 수 없음을 통찰하게 된다’고 노래한다.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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