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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를 가다] 5.탐욕의 덫에 걸린 라싸의 ‘혼돈’ [上]

기자명 법보신문

대대손손 내려온 마니차를 돈과 맞바꾸다

라다크를 개발하려면 우리는 이 사람들이
더 탐욕스러워지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수가 없다
『오래된 미래』

 
라싸의 세라사원 입구에서 티베트인 할아버지가 양 손에 대형 마니차를 들고 돌리고 있다. 연료용 야크 똥 무더기 앞에서 마니차를 돌리면서 할아버지가 염원하는 것은 무얼까. 안타깝게도 많은 티베트인들이 대대손손 내려온 마니차를 시장에 팔고 있다.

“라다크를 개발하려면 우리는 이 사람들이 더 탐욕스러워지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수가 없다.”
1981년, 작은 티베트로 불리는 라다크 왕국의 개발을 담당한 어느 관리의 말이다. 개발담당관이 서구식으로 라다크를 개발하면서 토로한 이 한 마디에 담긴 의미는 크다.

티베트 고유의 공동체 의식과 삶의 방식이 얼마나 튼실하게 이어져 왔는가를 상징적으로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 불교를 대표하는 종파들인 달라이라마의 겔룩파와 카르마파의 카규파, 닝마파 등의 밀교 성지들이 밀집해 있는 라다크의 개발 초기, 티베트인들은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그 무엇도 돈과 바꾸려 하지 않았다. 가난한 라다크에 온 서양의 관광객들이 행여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어 돈을 많이 준다 해도 티베트인들은 아무것도 팔려하지 않아 이방인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라다크 사람들에게는 돈이 필요 없었기 때문에 물건을 팔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 자신이 지니고 있는 마니차나 염주, 야크털로 짠 모자 등을 대대손손(代代孫孫) 내려온 가보로 여겨 돈과는 결코 바꾸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돈이란 매개체를 이용해 물건을 사고팔기보다는 사람과 사람들 간의 물물교환이란 원초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부족한 것을 충족시켰으며 그래도 부족한 것은 이웃과의 ‘나눔’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라다크 역시 이젠 아름다운 옛 전통들이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이며 돈과 물질이 지배하는 탐욕의 공간이 자꾸만 넓어지고 있다. 물질을 향한 탐욕의 마음과 적당히 타협한 결과이리라. 라다크가 그렇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십수년에 불과하다.

라싸의 시내를 찬찬히 둘러보다 보니 그곳의 현재 모습 역시 라다크의 변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악한 중국인들 역시 긴 시간동안 티베트인들을 관찰한 끝에 라다크의 개발담당관과 같은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1950년 10월, 무력으로 티베트 전역을 장악한 후 3000여개가 넘는 사찰을 파괴하고 삼림 70%를 마구 채취해 간 중국. 그들은 티베트에 대한 식민적 수탈을 시작한지 30여년이 흐른 1980년대 후반부터 서부(티베트)의 선진화를 위한 대개발이란 명분으로 라싸와 티베트에 ‘탐욕의 씨앗’을 파종하기 시작했다. 달라이라마가 완전히 소멸된 티베트를, 티베트의 영혼마저도 완전히 굴복시킨 ‘중국의 서장’을 완성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 추진한 것이 바로 서부 대개발이다.

80년대부터 탐욕의 씨앗 파종

중국이 탐욕의 종자가 잘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라싸에 조성한 것은 중국의 힘과 돈, 물질적인 욕심을 발산하기 위한 도구들이었다. 특히 포탈라궁 등 라싸의 성지 주변에는 맑은 영성을 탁하게 물들이고 그 정신을 훼손하기 위한 건물들을 빼곡히 들여 놓았다. 포탈라궁의 정면에서 아름다운 궁전을 비추며 그들만의 이상향을 그려내야 할 연지(蓮池)는 흙으로 메운 뒤 대규모 인민광장을 건립했다. 포탈라궁과 마주 앉아있는 인민광장에는 위압적인 중국의 힘을 의미하는 오성홍기와 대리석으로 조성한 ‘서장화평해방기념비’(西藏和平解放記念碑, 2001년 10월 1일)가 포탈라궁을 순례하는 티베트인을 쏘아보듯 서 있다.

중국은 “티베트의 지주인 사원과 승려들이 대다수 민초들을 노예로 삼고 있어 서장을 ‘봉건농노제’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의미로 이 광장에 기념비를 세웠다. 포탈라궁의 연지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인 달라이라마와 티베트인들에게는 그들이 꿈꾸어 왔던 샹그릴라의 징표였다. 중국인들은 그러한 성지에 서장 해방 기념비를 세워 예가 중화(中華) 영토이며 티베트의 달라이라마는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다는 사실을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싶었을 것이다.

염소를 기르는 울타리 ‘라싸’를 중국의 욕심으로 채워가는 개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포탈라궁의 오른편에는 서구식 신시가지를 조성했으며 포탈라궁의 협시보살격인 조캉사원 앞에는 유럽의 이름난 도시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한 대형 상가구역을 건립했다. 그곳엔 초고속 인터넷 PC방과 각종 상점들이 즐비했으며 경제개발의 종착역을 의미하는 고급 백화점이 그 위세를 자랑하며 들어서 있다. 그리고 밤마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분출되는 홍등가(紅燈街)와 선술집들은 포탈라궁의 코앞에 자리 잡은 채 성업 중이었다. 홍등가의 유리벽에는 속옷만을 걸친 여성의 사진들이 포탈라궁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으며 벌건 대낮인데도 술에 취한 중국인들과 관광객들이 흥청거렸다.

 
중국은 라싸를 개발하면서 포탈라궁의 코앞에 돈벌이를 위한 홍등가와 선술집을 조성했다. 화려한 홍보 간판이 가난한 티베트인들과 대조를 이룬다.

포탈라궁 코앞엔 홍등가 즐비

중국은 대개발을 통해 라싸에 부자와 가난한 자, 즉 빈부의 격차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빈부의 격차는 바로 라싸 공동체의 붕괴를 의미한다. 사천성의 중국인들을 라싸에 이주시켜 새롭게 조성한 상점에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한 반면, 대부분의 티베트 상인들은 세라나 데붕사원 등 라싸의 구시가지로 내몰렸다. 중국은 이와함께 티베트의 영혼인 포탈라궁이나 조캉사원 등을 티베트의 성지가 아닌 중국의 배를 불리는 관광자원으로 이용하기 위한 정책들을 집요하게 추진해 왔다. 그 결과 중국인과 티베트인 간의 빈부 격차는 극심해졌으며 라싸 역시 돈이 지배하는 관광특구로 서서히 변하게 된 것이다.

티베트 고유의 공동체에선 단 한명의 거지도 없었으나 이제 라싸의 사원 앞에는 구걸을 하는 티베트인 거지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자신들의 영혼을 죽이는 중국의 대개발에 티베트인들은 때로는 평화로운 봉기로서, 때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한 기도로서 저항했으나 그것은 중국의 독단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라싸와 티베트의 무기력한 현실을 말해주는 슬픈 단상이다.

라싸의 거리에서 만난 대다수 티베트인들의 손에는 여전히 염주와 마니차가 들려 있다. 앉아 있을 때도, 걸어 다닐 때도, 자전거를 타고 있을 때도 그들은 염주와 마니차를 돌리면서 입으로는 ‘옴마니 반메훔’을 염송했다. 힘차게 돌아가는 마니차를 보면서 여전히 그들의 영성만큼은 맑고 순수하다며 마음을 위로하려 했으나 곧이어 눈에 띈 장면은 충격 그 자체였다. 몇 백 년은 됨직해 보이는 큼지막한 마니차들이 규모가 제법 큰 상점의 진열대에 가득 차 있었다. ‘설마’하는 의구심이 들어 상점에 발을 들였다.

“이 마니차는 어떻게 구한 것인가요. 파는 물건인가요.”
“티베트 사람들이 내다 판 것을 구입한 거예요. 아주 오래된 가보들인데, 한번 골라 보시지요.”
상점 점원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다시 물었다.
“정말 티베트 사람들이 판 것인가요.”
“맞아요. 그들도 이젠 돈이 있어야 살 수 있으니까 무엇이건 팔아야겠지요.”

어안이 벙벙하다.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쓰셨던 마니차를 팔 수 있다니, 그들 고유의 사고방식이라면 가보인 마니차를 파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파는 행위이다. 달라이라마를 파는 행위이다. 중국인 점원은 “수십만원대가 넘는 고가의 마니차도 있지만 5~10만원이면 괜찮은 마니차를 살 수 있으니 하나 구입하라”며 중간 크기의 마니차를 권했다. 손때가 묻어 더 오래돼 보이는 마니차는 여전히 티베트인들의 혼과 정성이 가득해 보여 아름다웠다.

마니차를 살펴 본 시간은 몇 분에 불과했다. 그러나 마음은 크게 혼란스러웠다. 1000년 이상을 지탱해 온 티베트인들의 영성이 중국이 심어놓은 탐욕의 덫에 걸려 혼돈에 빠져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혼을 잃은 마니차를 보고 났더니 입안은 쓴 맛이 돌았고 가슴은 답답했다. 상점을 빠져나와 조캉사원 옆을 지나가자니 다시 허름한 뒷골목이 이어졌다. 그곳에선 더욱 마음 쓰린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번듯한 상점에선 중국인들이 마니차를 팔고 있었지만 좁은 골목에선 티베트인들이 작은 가판대를 설치해 오래된 마니차를 직접 팔겠다며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선조들의 영성과 달라이라마를 향한 지극한 정성이 배어있는 마니차 하나하나는 투박하고 초라하지만 티베트의 그 어떤 성보에도 견줄 만큼 귀한 보배로운 성물이다. 그것을 팔고 있는 라싸의 현실이라니, 티베트인들의 마음 역시 아리고 슬펐을 것이다. 중국을 향한 분노와 함께 한편으론 티베트인들 역시 ‘중국의 라싸’로 변해가는 데 적응하기가 매우 버거웠을 것이라는 측은지심이 일었다. 중국에 의한, 중국을 위한 라싸로 거듭나는 흐름에 맞춰 생(生)을 이어가느라 하루하루가 뼈를 깎듯 고통스러웠을 게 분명하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중국령 서장자치구’란 무거운 현실이 다시 한 번 뇌리를 자극한다.

 
중국은 포탈라궁 정면에 ‘티베트의 해방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인민광장을 조성했다. 포탈라궁을 바라보며 펄럭이는 중국의 오성홍기가 위압적으로 보인다.

성지는 중국을 위한 돈벌이 수단

눈부시게 푸른 하늘 아래 홍궁(紅殿)과 백궁(白殿)이 조화를 이룬 포탈라궁으로 눈길을 돌리니 마니차를 돌리며 코라(성지 돌기)를 하는 티베트인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해와 별이 가장 가까운 천상의 세계에 펼쳐진 코라 행렬은 신이하고 장엄하기만 하다. 그들의 소리 없는 코라에선 중국이 그 어떤 탄압을 가하더라도 자신들만의 영원한 기도로서 달라이라마에 영원히 귀의할 것이란 원력들이 라싸의 태양 빛처럼 강한 에너지로 화현해 다가온다. 그들을 향해 오체투지를 올린다.

라마라 걉수췌(거룩하신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오체투지로서 달라이라마를 청합니다
췔라 걉수췌(거룩하신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오체투지로서 티베트의 영성을 청합니다
겐듈라 걉수췌(일체 생명의 존귀함에 귀의합니다)
오체투지로서 티베트인들과 하나 됩니다

 
라싸=남배현 기자 nba710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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