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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생사가 바로 열반

기자명 법보신문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바람이 연 이틀 숲을 뿌리 채 흔들어대더니 나뭇가지에는 어느덧 새 움이 트고 있다. 오늘은 순한 바람이라서 그 간 미루었던 텃밭을 갈아엎고 씨앗을 뿌렸다. 겨우내 켜켜이 쌓여 익은 무명의 거름을 끌어내고 땀 흘려 설계하여 예쁘게 가꾸어 놓았더니 볼수록 뿌듯하다.

꽃피는 삼월에 찾아와 수행자들의 살림살이를 점검하게 하는 부처님의 출가재일과 열반재일은 잠시 꽃 소식에 들뜬 기운을 가라앉히는 커다란 경책이 아닐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사대문을 통해서 무상을 느낀 후 위대한 포기를 통해 부귀영화를 헌 신짝처럼 던져버리고 욕망의 성문을 박차고 출가를 결행했다. 그것은 모든 중생들이 본래 성불이어서 여래와 더불어 조금도 차별이 없음을 증명해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수행을 하지 않으면 부처의 씨앗을 감추고는 있지만 발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니 명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 많은 선지식을 만나서 난행과 고행을 했고 마지막에는 웃타카라마풋타와 알라라칼라마를 통해서 더 이상 높고 깊음이 없는 선정에 들어 보았지만 들고 남이 있어 결국에는 마음 밖에서 구하거나 조작으로 이루어진 것은 무너지고 만다는 것이었다.

생사란 한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괴로운 것이어서 범부들은 생사를 싫어하여 따로 열반을 구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많은 선지식을 찾아다니고 여러 수행 방법들을 익히면서 한량없는 시간을 보내고 공력을 들이지만 생사를 떠난 열반은 조작이거나 잠시 가려진 것이어서 결국에는 허망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상이 무상하다고 설한 것은 집착을 없애고 보니 무상 속에 항상이 있음을 깨닫게 하고, 일체가 고통이라고 한 것은 철저하게 자각하면 바로 뒤집어져서 즐거움이 됨을 알려주신 것이며, 참으로 무아인줄 알면 일체가 나 아님이 없으므로 항상 깨끗하여 열반의 사덕을 성취하게 된다.

한 생각 번뇌가 일어나거나 대상을 만나 없애려고 하지 말고 바로 알아차리고 화두를 들면 그치게 되고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며 물건도 아닌 것이 홀연히 출현하게 되어 이것을 신령함이라고 한다. 이때에 고요함을 취하여 화두가 없으면 무기에 떨어지게 되는데 잠시는 편안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오래 머물면 마치 가위 눌린 것처럼 답답해지고 심하면 일체가 허무하다는 생각에 붙잡히게 된다.

그러면 마치 블랙홀이 일체 빛을 삼켜버리듯이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생각에 빨려 들어가게 되어 사는 것이 재미가 없고 공부길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여기에서 답답하며 허무하다고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이 주인공이니 이것을 바로 자각하여 화두를 들면 신령스런 성품이 출현하게 되어 벗어나게 된다.

이와 같이 공적에도 치우치지 말고 아는 마음인 영지에 머물러 어둡지 말며 오직 공적과 영지가 한 조각을 이루어 틈이 없으면 머지않아서 성품을 보게 된다고 나옹 선사는 『몽산법어』에 첨부하고 있다.
또한 수행의 길에서 만나는 마장은, 과정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불법에 대한 고매한 지견에 붙잡혀서 화두를 잃어버리고 아까운 세월을 헛되게 보내는 일이니 참으로 원통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화두의 뜻이 남아있는 생멸화두는 생사와 열반을 둘로 보는 그물을 끊지 못하고 의혹이 남아있어 끝없이 헤매게 한다. 그러므로 참으로 아무런 맛없는 활구가 아니면 생사가 곧 열반이라는 불이법을 체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열반재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점검해 본다.
 
뒷 뜰에 핀 제비꽃 이름을 불러도
수줍은 새악시처럼 미소뿐이네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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