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규 변호사의 세상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부처 아닌 이 없고, 불사 아닌 일 없으니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바로 불자다운 삶

무문관(無門關)에서 2년이나 3년도 아니고 자그마치 6년이라는 긴 기간을 오롯이 앉아 보내고 나오면서 적어도 30년간은 차를 타지 않겠다고 스스로와 다짐한 다음, 매년 적게는 100일에서 길게는 반년 이상을, 그리고 좁게는 휴전선 순례로부터 넓게는 한국에서 일본 북해도까지를 오로지 두 발에 의지해서 섭력(涉歷)하여 마쳤는데, 그 긴 30년의 원을 온전히 마치고도 금년 들어 또 100일을 기약하고 그 길을 나섰다.

내가 존경하는 어느 스님의 이야기이다. 그 일을 누가 시킨다고 하겠으며 그냥 취미삼아 할 만한 일인가? 요새 흔히 볼 수 있는 이른바 과시용으로 할 만한 일은 더욱이 못된다. 오로지 수행 일념으로 묵묵히 길을 따라 걷고 또 걷는 것이다. 가다가 날이 저물면 적당한 처소를 찾아 하루 밤을 쉰 다음, 날이 새기가 바쁘게 또 길 위로 걸음을 계속한다.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니 밑도 끝도 없이 일어나는 이런 저런 생각들도 씨가 말라 사그라지고, 문자 그대로 텅 빈 마음으로 그저 묵묵히 길 위에 발을 떼 옮길 뿐일 것이다. 따로 뚜렷이 정해진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 가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어디 그뿐인가? 스님의 행각은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매일 쓰레기를 줍는 일을 곁들인다. 하루에 5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4~5개 정도를 채운다니 그것도 예사 일이 아니다. 쓰레기를 주울 때면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여야 하니, 쓰레기를 주우면서 자연스레 하심(下心)을 익힐 수 있는 것이다. 금년 3월초 길을 떠나시기에 앞서 “이번에는 어디로 가시렵니까?” 하고 물으니, “글쎄요. 동전을 던져 구르는 쪽으로 가려고 합니다”라는 맥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문득 부처님의 발자취가 떠오른다. 부처님의 생애는 길과 떼일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한 마디로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사시다가 길에서 돌아가신 분이 부처님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부처님은 마야부인이 산월(産月)이 되어 왕자의 출산을 위해서 친정으로 가던 중 룸비니동산에서 탄생하셨고, 성불하신 뒤에는 줄곧 길을 따라 유행(遊行)하시면서 중생제도에 힘을 쏟으셨다. 그리고 왕이나 장자들이 제공하는 호화로운 코끼리나 말조차도 마다하고 모두 물리치신 채 오직 걸으셨을 뿐이다. 심지어 반열반에 임박해서조차 부처님께서는 그 쇠약해진 몸으로 쿠시나가라까지의 험한 길을 몸소 걸으셨고, 결국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사이에 누우시어 반열반에 드신 것이니, 부처님의 삶이야말로 길에서의 삶이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선, 건강에 좋고, 자동차를 덜 타니 환경을 덜 오염시켜 좋으며, 떼어 옮기는 걸음마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 좋다. 어디 그뿐인가? 처처불상(處處佛像)이요 사사불사(事事佛事)라고 하지 않았던가! 길을 걷노라면 곳곳에서 부처를 만날 것이고, 옮기는 걸음걸음에 불사가 익어갈 것이다. 오늘날 그 흔해빠진 자동차를 뒤로하고 땅을 밟으며 한발 한발 떼어 옮기는 발걸음에 길이 있고, 그 길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로 그 길로 통한다. 그러니 그 길을 안갈 수 있겠는가?

사람은 원래 서서 걷도록 되어 있는 동물이다. 그런 사람이 자동차라는 편리한 기계가 생기면서 자동차에 의존하다보니, 이제 지척의 거리만 가려고 해도 자동차를 찾는다. 오히려 타는 것이 정상이고 걷는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로 세상이 변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사람은 땅에 발을 댐으로써 지기(地氣)를 받고 머리를 허공에 둘러 천기(天氣)를 쐼으로써 비로소 온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임을 되새겨야 한다. 될 수 있는 대로 차타는 시간을 줄여 본래대로 걷는 습관을 들이고, 환경을 더럽혀 결국 자기를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함께 노력할 일이다. 한편, 행정당국은 시골 국도에도 인도(人道)를 구획해서 사람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일이다.

이상규 변호사 skrhi@rhilaw.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