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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한국불교 최초] 38. 복장유물(腹藏遺物)

기자명 법보신문

국보 233호 영태 2년명 납석제사리호가 最古

 
우리나라 복장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영태 2년명 납석제사리호<오른쪽>와 사리호를 넣었던 석남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왼쪽>.
부처의 심장을 상징하는 복장물(腹藏物)을 불상 안에 넣음으로써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생각을 한 시기는 언제부터였을까.
복장의 연원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당나라 말기에 해당하는 10세기 무렵 중국에서 조성된 불상 내부에 인간의 오장육부 형상을 넣는 것이 유행했고, 일본의 헤이안시대(8세기 말~12세기 말) 불상에서도 그 같은 복장물이 발견되고 있어 대략 8세기 이전에 복장을 넣는 의식이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복장을 넣는 의식이 언제부터 행해졌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 경남 산청 내원사에 봉안돼 있는 석남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대좌에 납석제 사리호가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복장물을 넣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우리나라 복장의 역사를 통일신라시대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된 석남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정확하게는 766년에 제작됐다. 높이 108cm의 불상은 지리산 석남암사지에 방치돼 있던 것을 1989년 수습해 복원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이때 대좌와 광배를 함께 수습했고, 이후 부산시립박물관 소장의 ‘영태 2년명 납석제사리호’가 이 불상의 대좌 중대석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리호에 새겨진 명문에 근거해 이 불상이 766년에 조성됐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 사리호는 바로 불상을 조성하면서 그 안에 넣은 현존 최고(最古)의 복장유물이 되었다.

고려 최초는 보협인다라니경

국보 제233호로 지정된 ‘영태 2년명 납석제사리호’는 통일신라 때의 거무스름한 곱돌(납석)로 만들어진 항아리이며 높이가 14.5cm 정도다. 이 항아리 표면에 15행으로 돌아가며 비로자나불의 조성 기록과 함께 영태 2년(신라 혜공왕 2년·766)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주로 죽은 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중생 구제를 바라는 글이 새겨진 사리호는 석불의 법사리 봉안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불상의 복장물로는 초기에 사리와 경전만을 넣다가 이후 만다라, 오곡, 오색실, 의복 등을 비롯해 불상을 조성한 기록이나 복장물에 대한 기록까지 넣었다. 그리고 『조상경(造像經)』의 정립과 함께 점차 일정한 형식과 절차를 갖추면서 정형화됐다. 또 『조상공덕경』등에 따르면 처음에는 불상의 머리에 넣다가 나중에 배 안에 넣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복장유물이 ‘영태 2년명 납석제사리호’ 1점에 불과한 반면 고려와 조선시대 복장유물은 비교적 많은 수가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 복장유물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은 지난 2007년 불교계 안팎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에서 수습한 복장유물이다. 특히 보협인다라니는 무구정광대다라니 이후 초조대장경과 고려대장경, 직지로 이어지는 인쇄기술사의 고리를 연결하는 귀중한 유물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고려국총지사주진염광제…’로 시작하는 이 보협인다라니경의 기록에 따라 이 경을 찍은 시기가 통화 25년 정미, 즉 고려 목종 재위 10년에 해당하는 1007년 개성 총지사에서 간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개성 총지사에서 간행한 목판본 보협인다라니경은 고려시대 탑을 세울 때 탑 내부에 넣는 조탑경전으로 널리 사용됐으며, 이 보협인다라니경은 장정되지 않은 두루마리 형태로는 국내 유일본이다. 또 보협인다라니경에 인쇄된 다라니경의 뜻을 그림으로 표현한 변상도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화여서 고려시대 불교미술 연구에 있어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목조관음보살좌상의 복장유물에서는 또 평양에서 선사 사원이 교정해 간행했다는 ‘범서총지집’과 ‘금강반야바라밀경’, ‘범자다라니’ 등 고려시대 인쇄기술을 보여주는 상당수의 자료가 발견됐다. 그리고 여기서 발견된 저고리는 견사로 직조한 라(羅)를 재료로 하고 있다. 고려시대 직물인 라는 문수사 불복장직물에서 발견된 적이 있으나, 조선시대에는 다른 견직물에 비해 실물이 나타난 경우가 많지 않을 정도로 희소성을 갖고 있다.
고려시대 복장유물로는 또 서산 문수사 금동여래좌상에서 수습한 고려말 제작 복식과 각종 직물류가 있다. 이 불상에서도 경전과 다라니 등의 인쇄자료를 비롯해 발원문과 물품 목록을 기재한 필사 자료 등 다양한 전적류가 나왔다.

그리고 최근 법보신문을 통해 세간에 알려진 경주 기림사 약사전 삼존불에서도 고려시대에 간행된 ‘천태사교의’가 발견됐다. ‘천태사교의’는 고려 충숙왕 2년(1315) 기복도감에서 간행한 것으로 희귀본이다. 기림사 약사전 삼존불에서는 또 17세기말 가사, 적삼, 저고리, 후령통 등 보물급 문화재들이 무더기로 발견되기도 했다.

 
상원사 문수동자상에서 발견한 세조의 적삼은 가장 드라마틱한 사연을 담고 있다.
드라마틱한 유물은 세조 적삼

이외에 동화사 대웅전 삼존불에서 수습한 ‘상지은니무상의경’과 ‘백지대방광불화엄경’이 고려시대 유물이며, 13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진 수국사 목조아미타불좌상에서도 발원문을 비롯해 사리, 불경 등 복장유물 47종 300여 점이 수습됐다. 이외에도 고려 복장유물이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의 대표적 복장유물은 상원사 문수동자상에서 발견한 적삼이라고 할 수 있다. 문수동자상에서 세조의 피고름이 묻은 적삼이 나옴으로써 세조가 문수동자를 만나 등창을 고쳤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사실로 승격시킨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남긴 유물이다. 또한 세조의 딸 의숙공주가 1466년 세조의 건강과 자신의 득남을 바라면서 기록한 발원문도 함께 수습했다. 그리고 이 문수동자상에서는 12세기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방광불화엄경 권28과 고려 정종 1년(1399)에 간행한 묘법연화경 권1-3, 4-7 등 2권이 나와 조선시대 유물은 물론 고려유물이 함께 발견되기도 했다.

사명대사가 평생동안 섬겼던 높이 9cm의 포항 대성사 금동여래좌상 역시 조선시대 귀중한 유물을 보여주고 있다. 사명대사가 부처님에게 소원을 써서 기도할 때 부처님 앞에 바쳤던 친필 원장이 이 작은 불상의 복장에서 나온 것. 이 불상은 사명대사 열반 이후 문도들에 의해 소중하게 전래돼 왔다.

2006년 3월 직지사 비로자나불상에서는 불상조상기 1점, 묘법연화경 3책, 다라니경 1책, 다라니 5점 등이 나왔고 노란 비단으로 여미고 한지로 싼 후령통도 발견됐다. 조기에 강희 칠년(조선 현종 9년·1668)이라고 조성시기가 밝혀져 있다. 후령통은 오곡, 오향, 오약, 범서, 오색사, 발원문 등을 넣는 통으로 길이가 10~20cm 정도이며 조선중기 이후 불상에서는 대부분 나타나고 있다.

해인사 비로자나불 복장에서도 의미 있는 조선시대 유물이 발견됐다. 후령통에서 나온 발원문이 바로 그것으로, 발원문은 14~15세기 복식인 흰 직령포(저고리) 위에 붉은색 한글 글씨로 발원내용을 적어 놓았다. 15세기에 세인들이 흔히 쓰던 자유로운 필체의 글씨로는 이 발원문이 유일하다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조선시대 복장유물은 이외에도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남원 선국사 건칠아미타불좌상에서 발견한 인본다라니 1158장 등 복장물을 비롯해 △군산 동국사 석가삼존불에서 발견한 사리, 후령통, 1586년 흥복사에서 간행한 묘법연화경과 보협인다라니경 등 300여 점 △대구 동화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의 약사여래좌상에서 발견된 묘법연화경 권 제4-7 등 12~15세기 제작 전적물 △완주 송광사소조삼불좌상 본존불에서 발견한 삼불 조상기와 묘법연화경, 후령통 등이 있다. 이 불상의 복장에서 나온 조상기에 따르면 승정 14년(인조 5년·1641) 6월 29일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조속한 환국을 기원하면서 만들어진 불상이다.

또 흑석사목조아미타불좌상에서는 15세기 초 법화경 사경(국보 282호)이, 광주 자운사 불상에서는 1388년 중수·개금한 내용을 담은 조상기와 1611년 내장된 후령통이, 법주사 대웅보전 삼존불에서는 조선 인조4년(1626)에 조성한 시기를 알리는 유물이, 봉은사 목조삼세불좌상에서는 1651년 조성한 기록을 담은 조상기가, 심곡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에서는 조선 숙종 42년(1716) 조성한 시기를 알리는 기록과 발원문이 나오기도 했다. 조선시대 복장유물은 동시대 불상이 그 이전 시대와 비교해 많이 존재함에 따라 이외에도 많은 수가 존재하고 있다.

 
안동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에서 수습한 보협인다라니경은 고려시대 대표적복장이다.

복장은 역사…보물찾기는 안돼

복장은 불상을 조성할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알려주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특히 복장은 일반적으로 불상을 조성하면서 넣지만, 이후 보수나 개금을 하는 과정에서 복장을 열어 새로운 유물을 넣기도 함에 따라 불상을 처음 조성할 당시의 유물은 물론 최근 유물까지 연대기적으로 발견되기 때문에 ‘타임캡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옛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복장유물은 불교계에서 신성물로 인식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 열어보지 않기 때문에 내용물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이유로 역사가 깊은 사찰의 전각에 모셔진 불상은 일찍부터 문화재의 가치에 눈 밝았던(?) 사람들이 탐내는 대상이 되었고,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삼성리움박물관이 법정 소송 중 경기도 가평 현등사에 반환한 사리와 사리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문화재 도굴 분야에서 자타공인 1인자라고 할 수 있는 서 모씨가 현등사 사리와 사리기를 자신이 도굴했다고 밝혀 세간을 놀라게 했었다.
복장유물은 불상을 조성하는 사부대중의 정성과 염원이 모여 이루어진 결정체와도 같다. 때문에 함부로 훼손하거나 열어 볼 수 없는 소중한 정신적·물질적 자산이기도 하다. 따라서 복장유물의 수습을 마치 보물찾기처럼 여기는 행위가 지속되면 될수록 이 땅의 역사와 선조들의 정신은 그만큼 가치를 잃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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