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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남은 경구]서울대 소광섭 교수

기자명 법보신문

禪은 서구학문을 완성시키는 열쇠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이로다…
앉고 서고, 보고 듣고 착의긱반 대인접어
  일체처 일체시에 소소영령 지각하는
  이것이 어떤겐고?”   
                                경허신사의 ‘참선곡 (參禪曲)’


연구실에서 밤늦게 나올 때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경허신사의 ‘참선곡 (參禪曲)’을 되뇌이곤 하였었다.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이로다… 앉고 서고, 보고 듣고 착의긱반 대인접어 일체처 일체시에 소소영령 지각하는 이것이 어떤겐고?”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고 했지만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란 것을 아는 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매우 늦깍이 입문이라고나 할까. 나는 어려서부터 과학자가 되려는 생각을 했고, 자연스럽게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자연의 궁극적인 원리를 밝히면 곧 진리를 찾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소립자 물리 등을 연구하면서 나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진리를 찾아가는 사람이라는 자긍심이 은연히 몸 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박사과정을 끝낼 무렵에 숭산 스님이 미국에 막 오시어 브라운대학 근처에서 대학생들에게 선을 가르치시기 시작했다. 우연한 인연으로 스님의 선원에 다니면서 ‘화두선’이라는 진리를 찾아가는 또 하나의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분석적인 물리학적 방법에만 익숙했던 나에게 직관적인 선의 길은 신선하고 충격적이면서 또한 매우 난해한 길이기도 했다. 무(無)나 공(空)의 문자적 이해에서 오는 논리적 모순 등 종잡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무엇인가 궁극적 진리를 가리키는 듯 하여 그냥 버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오랜 세월을 물리학적 탐구와 더불어 선이 가리키려는 의도가 무엇인가를 알아내고자하는 노력도 꾸준히 계속하였는데, 그러던 중 경허스님의 ‘참선곡’을 만나 사경도 하고, 외우기도 하고 하였다. 그리고 마명보살의 『대승기신론』을 공부도 하면서 서서히 물리학과 선의 길이 어떻게 다르며,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에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소소영령 지각하는 이것이 어떤겐고?” 하나로 집약됨을 알게 되었다.

“이 문제의 답은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서구철학이나 신학의 중심 과제란 점도 알게 되었다. 이른바 정신과 물질의 관계, 또는 심신 (心身) 이원론이 서구철학의 해결되지 않은 과제이며, 이것이 존재론이나 인식론의 중심 주제임도 짐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신이 만물을 창조했다’는 뜻을 제대로 알거나 수준 높게 해석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신의 창조’를 부처님의 가르침과 어긋난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것을 글자 그대로 믿는 사람만큼이나 ‘공’이나 '무‘자를 모르는 사람이다.  ‘신’은 ‘무’나 ‘공’과 마찬가지로 말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 ‘화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물리학의 나아갈 방향의 핵심이기도 하다. 몇년 전에 출판된 졸저 『물리학과 대승기신론』은 현상과 관찰의 관계에 대해서만 논한 것이었다. 이제 관찰이 어떻게 인식으로 전환되는가 하는 문제, 이것이 물리학의 장차 심리학과 통일되기 위한 관문이다. 또한 신적 조명론 (神的照明論)으로 해결을 시도한 서구신학의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의 미해결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것이 어떤겐고?’는 단순히 말 없음으로 답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물리학, 심리학, 철학, 신학 등 서구 학문의 벼리가 되는 자리이며, 불교의 선 (禪)이 서구학문을 화룡점정 (畵龍點睛)으로 완성시키는 열쇠이기도 하다.

서울대 소광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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