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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사문의 기상 지율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09.05.0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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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연세대 철학과 신규탁 교수
“나라 법과 부처님 법, 모두 존중되어야”

아주 먼 옛날 저 멀리 당나라에 있었던 일이다. 하루는 궁중에 있던 관리가 절을 찾아와 자신이 지금 쫒기고 있으니 숨겨 달라는 것이다. 이 절은 다름 아닌 장안의 남산인 종남산(終南山) 초당사였다. 그리고 숨겨준 스님은 규봉종밀 선사였다. 얼마 안 있다가 관군(官軍)이 들이닥쳐 ‘범인 숨겨준 죄’로 스님을 연행했다.

재판은 공개적으로 당나라 어전(御殿)에서 열렸다. 먼저 범인을 심문했다. 재판장 왈(曰), “너의 이름을 말해라.” 그가 아뢰기를, “저는 성(姓)은 우(牛) 씨요, 이름은 아무 아무개입니다.” 다음에는 검사 측에서 취조가 시작되었다. 검사 왈, “너희들은 우 승유의 일파구나!” 그러자 재판장 안에 있던 군중들이 술렁였다. 이것이 저 유명한 ‘이당’과 ‘우당’의 정치 싸움이었다. 당황한 재판장이 물었다. “그러시면 우 승유를 취조하는 검사 당신의 성은 뉘시오?” 검사가 왈, “저의 성은 오얏리 자(字) 이(李) 가입니다.”

궁중의 환관들이 모사하여 궁중 뒤뜰에 있는 우물에서 단 물이 나온다고 소문을 냈다. 그래서 ‘이당’은 구경 가고, ‘우당’은 ‘이당’을 일망타진하려고, 화살 잘 쏘는 궁수들을 지붕 위에 배치했던 것이다. 그런데 실패하여 ‘우당’이 몰살당하게 되었다. 절에 숨어든 정치범은 바로 ‘우(牛) 씨 집 자손’이었다.

재판장이 종밀(宗密)에게 말했다. “사문께는 대역적 죄인을 숨겼으니 죄가 매우 큽니다.” 규봉종밀 선사께서는 스스로 인정했고 죄 값을 달게 받겠다고 했다. 스님을 평소에 존경하던 재판장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국법을 어겼지만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을 안 하겠다고 서약하시면 용서하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찌하겠소?”

규봉종밀 선사께서 말했다. “저는 자비(慈悲)의 종자(種子)입니다. 살려고 들어온 생명을 제가 죽게 할 수는 없지요. 그 목숨을 귀히 여기는 것이 석가세존의 가르침입니다.” 재판장은 안타까웠다. 스님께서 다시는 안 하겠다고만 하면 스님을 살려 드리려고 마음먹었는데….

재판장이 이제는 마지막으로 판결을 내릴 때가 되었다. 이제는 군중들이 재판장의 심판에 주목했다. 국법(國法)이 불법(佛法)보다 우선한다고 하면 재판장은 평시에 존경하던 스님께 벌을 내려야 하고, 그 반대로 말하면 나라의 봉급을 받는 재판장으로 할 일은 못된다.
한참 있다가, 종밀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재판장께서는 국법에 따라 벌을 주세요. 저는 부처님 법에 따라 사람의 목숨을 살린 것일 뿐입니다.” 이게 바로 감로지변(甘露之變)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의 정승 배휴가 쓴 스님의 비문에 전한다.

요즈음 지율 스님의 다음 기사를 읽었다. “어제 거리에서 실형 선고를 내릴 제 판결소식을 들었다. 저는 항소와 상고 시에 결코 무죄를 주장하지는 않았으며, 저의 적법함을 주장하지도 않았기에 상소 후 27개월 만에 시의 적절하게 내린 법원의 결정에 이의는 없다.” 참으로 정직하고 사문다운 기상이 보이는 말씀이다. 생명을 안타까워하는 그 마음에 따라, 그리고 부처님의 정신에 따라 행동했던 것이다. 물론 단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국가의 재정에 손해를 주었다. 죄라면 그것이 죄이다.

나라에 손해를 입혔으니, 사법부는 국법에 따라 벌을 주었지만, 부처님의 자비 종자인 스님으로서는 불교의 생명 존중 정신에 따라 다시 칼을 써도 생명들을 살리겠단다. 서로가 명분이 분명하다. 나라 법은 존중되어야 하고, 그와 더불어 부처님 법도 존중되어야 한다.

화장세계의 자존(慈尊)이신 비로교주께서 사바의 교주인 석가모니로 응화(應化)하신 지 올해로 3035년이 되었다. 중생들의 업장으로 보면 감히 뵈올 수 없지만,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자비로 오신 부처님. 이 날을 지율 스님과, 북한산의 뭇 생명들과, 낙동강과, 그리고 낙동강에 알을 낳는 물새들과, 그리고 일체의 뭇 생명들과 우리 모두 함께 부처님 오신 날을 기뻐합시다.

 

연세대 철학과 신규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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