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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영광의 얼굴

기자명 법보신문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이야기(narrative)’란 어떤 사물이나 사실, 현상에 대하여 일정한 줄거리를 가지고 하는 말이나 글을 뜻한다. 영감이라는 것이 무의식에서 솟아나기 때문에 한 사회의 구성원들의 무의식은 대개 비슷한 일면을 가지고 있다. 샤먼이나 그 사회의 선지자들의 말이란 게 그 구성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면 내 이야기가 아니라며 사람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종교나 신화를 알려면 그 이야기가 생겨난 배경을 이해해야 하고, 내포하는 메시지를 잘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모든 표현이 은유적이어서 고정된 답이 없다는 것도 특징 중의 하나이다. 이야기의 형식에 있어 ‘민담’이 보통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즐기기 위한 것이라면 ‘신화’는 영적인 교시를 위한 것이다. 예를 들면 인도의 신화에는 시바신의 이야기가 나온다. 시바는 춤을 추는 신으로 그들은 우주를 시바의 거대한 춤으로 여긴다.

어느 날 한 괴물을 혼내기 위해 시바신이 벼락을 때렸는데 연기가 생겼다 사라지면서 괴물 옆에 다른 괴물이 하나 더 와 있었다. 이 괴물은 마른데다 몹시 굶주려 있었다. 첫 번째 괴물은 두 번째 괴물이 자기를 잡아먹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기겁을 하며 시바신에게 엎드려 도움을 청했다. 시바신은 한 가지 원칙이 있는데, 누가 자신의 자비 앞으로 몸을 던지면 반드시 은혜를 베푼다는 것이다. 시바신이 말했다.

“그래, 내가 자비를 내리도록 하마. 자, 굶주린 아귀여, 그 괴물을 먹지 말라.” 아귀는 항변했다. “배가 고프니 이 괴물을 먹겠습니다.” 이 말에 시바신이 명했다.
“그렇게 배가 고프면 너 자신을 먹도록 해라.”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귀는 자신의 발끝부터 먹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결국 얼굴만 남게 되었을 때, 시바신이 그 얼굴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이처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내 너를 ‘키르티무카(영광의 얼굴)’라고 이름 하리라. 또한 누구든 너를 예배하지 않고는 나에게 올 자격이 없노라.”인도의 시바 신전이나 불교 사원의 붓다 대좌(臺座)에는 가면 같은 이 얼굴이 새겨져 있다. 살기 위해서라면 자신이라도 먹어 치우는 생명의 처절함을 아는가 묻는 것이다.

『리그베다』에도 비슷한 의미의 이야기가 있다. “나무 위에 새 두 마리가 앉아 있다. 아주 약삭빠른 녀석들이다.

그런데 한 마리는 그 나무의 과실을 먹는데, 다른 한 마리는 먹지 않고 관찰만 한다.” 여기서 ‘나무’는 우리자신이고 생명의 나무이다. 과실을 먹는 새는 그 과실을 죽이는 것이지만 지켜보기만 하는 새는 결국 굶어 죽고 만다. 생명은 생명을 먹고 사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만족의 위안과 향상일로의 의지력 사이에서 유혹받고 갈등을 겪는다.

삶은 그렇게 끝없이 점철될 뿐이다. 헤라클레이토스(BC 540~480경)는 “투쟁은 위대한 창조자”라 했다. 이 거친 마찰을 겪지 못하고서 살아남는 게 있던가.

봄꽃 가득, 연꽃 가득
도처에 영광의 얼굴일세!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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