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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묵 스님의 풍경소리]

기자명 법보신문

해바라기보다도 심한 세상인심 변화
내것이란 착각과 집착이 눈 가린 때문

얼마 전 인연 있는 분이 손수 그린 매화 한 폭을 두고 가셨다. 출가자의 방에 꽃 그림이라는 것이 어색했지만, 그려주신 분의 성의도 있고 거처가 남이 느끼기에 좀 어두웠나 싶어 걸어두고 있다. 그런데 화제가 ‘梅一生寒不賣香(매화는 한 평생 추위 속에 있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로 조선시대 4대 문장가 중 한 분인 상촌 신흠(象村 申欽)의 시 중에 나오는 한 구절이었다.

이 말을 화제(畵題)로 적어 놓은 까닭은 아마 그 분 스스로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기도 할 뿐더러 ‘우리에게 세상의 많은 유혹과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능히 견디어 가는 수행자가 되어주십시오’ 하는 뜻이라 짐작해 보면서 현재 우리의 삶이 얼마나 설중매를 닮고 있는지를 되새겨본다.

스스로는 하심(下心)이라 안위하면서 정한 궤도를 너무 이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더 큰 일을 하기 위함이라 달래가며 걸망을 매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대중 화합이란 명목 하에 그저 따라가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그리고 때로 강원 시절 주위 도반들에게 무슨 사람이 그렇게 융통성이 없고 날이 섰냐고 경책을 들었을 때가 그리운 것을 보면 나 자신 이미 매화 같은 삶과는 거리가 멀어졌구나 싶다.

어쩌면 매화 같은 삶은 현실에서 더 이상 피어나기 힘든지도 모르겠다. 행여 그런 삶을 추구하게 되면 인정받기 보다는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 사람이라고 공박을 받거나 아직 인생을 덜 살아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소행이라고 비판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전에 어느 큰 절에 살 때였다. 다른 절 스님 한 분이 기도하고 있었는데, 생활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대단한 스님이었다. 요즘 세상에 우리 곁에 정말 저런 스님도 있구나 할 정도였다. 입성은 한 겨울에도 그저 여름 홑옷이라 백공천장 깊은 누비라는 말도 무색하였고, 먹는 것은 후원에서 밥통을 씻고 난 뒤 나오는 밥알과 잔반이었다.

그러면서도 불기 하나 없이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법당에 도량석이 울리기전 들어가 하루 몇 천배씩의 참회기도를 하고 쉬는 시간이면 주변 청소를 하였다. 그러다 보니 손은 트고 입성이 누덕누덕해서 정상이 아닌 것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늘 많은 대중의 나태함과 방만을 일깨우는 선지식이었다. 하지만 몇 달 후 한 동안 보이지 않아 수소문해보니 정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임자에 의해 떠나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자세한 정황을 알지 못해 누가 그르다 할 수는 없지만 많은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스님을 품어 줄 곳이 거의 없을 거란 것이었다. 그때 홀로 유독 잘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새삼 느꼈었다.

이런 절 인심도 그렇지만 밖의 세태도 보면 세상인심이 어찌 저리 잘 돌아설까, 해바라기도 이 보다 심하진 않겠구나 싶다. 민초들의 삶이야 어차피 부평초처럼 떠도는 것이기에 그렇다하여도 자존심과 명예로 자신의 삶의 길로 정한 이들이 앞장서 구부러지는 모습을 본다. 어느 정도 제 길에 들어섰는가 싶었는데 다시 점점 더 미로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아마도 이 모두가 채 백년도 넘기기 힘든 인생이고 몇 년을 못 가질 권세임에도 불구하고 진실로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이것은 내 것’이라고 착각하고 집착해 눈을 가렸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 모두 제 얼굴에 뭘 묻히고 다른 사람 얼굴에 뭐 묻었다 흉보는 꼴이니 누구를 그르다 할 수도 없겠다. 하기에 남은 구절을 옮겨보며 내 스스로를 기약해 본다.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오동나무는 천년이 지나가도 곡조를 감주고 있고 / 매화는 한평생 추위에도 향기를 팔지 않으며 / 달은 천만번 이지러져도 본래 바탕 남아 있고 / 버드나무는 수백 번을 꺾이어도 새 가지가 돋아나네. 

manib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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