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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바람의 말

기자명 법보신문

티베트어로 '룽타(Lungta)'는 ‘바람의 말이 갖는 힘’이다. 룽(Lung)은 ‘바람’, 타(Ta)는 ‘말(言)’의 뜻이다. 히말라야 고원을 가보면 바위나 돌에 경전이 쓰여 있기도 하고, 오색의 삼각 깃발에 불보살님의 형상이나 경구를 새겨 깃대와 깃대 사이를 연결한 줄에 촘촘히 매달아 놓은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가을 하늘을 수놓던 만국기를 떠올려보면 되겠다.

나는 한 여름의 키 큰 나무에 달린 무성한 잎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햇살을 흔들 때면 넋을 놓고 바라보는 버릇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는 어떤 힘에 이끌리는 느낌을 갖는다. 90년 초, 인도 여행을 갔다가 히말라야 트레킹까지 한 적이 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왕복 코스였다.

이 코스에서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는 ‘남체’의 어디쯤이었다. 차오르는 숨을 돌릴 겸 배낭을 벗고 앉아서 쉬고 있는데, 새떼보다 많은 색색의 ‘룽타’가 물결처럼 흔들리는 게 보였다. 순간 난 몹시 어지러웠고,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던 것인데, 넋을 빼놓곤 하던 나뭇잎들이 바로 ‘룽타’임을 알 수 있었다. 내 운명의 일면이랄까.

‘바람의 말’은 바람을 타고 티베트 고원을 넘어 세상으로 흘러들어간다. 인간세의 장수와 성공, 건강, 행복을 불러오는 힘은 룽타가 인간세에 주는 선물이다. 이 깃발의 뒷면에는 소원을 이루게 해주는 보석의 형상도 그려져 있다. 이 보석은 지혜와 자비, 생명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이 ‘말(言)’은 ‘말(馬)’이라 해도 말이 된다. 광활한 티베트의 초원을 건너 세상에 알리는, 번뇌로 부터의 승리의 깃발일 테니까.

이 룽타의 반대 개념은 ‘드립(Drip)'이다. 바람의 말이 분별력과 지성을 자양분으로 한다면, 드립은 이것의 결핍이다. 동전의 양면이랄까? 또 양보와 겸손의 자세를 보일 때는 친구가 되지만,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식으로 경쟁심을 자극받고 심성이 거칠어지면 원수의 자식이 되어 나를 어두운 곳으로 끌고 들어간다.

삶의 희망을 잃고 회의와 번민으로 괴로워한다면, ‘드립’은 잘한다고, 계속 그렇게 하라고 부추긴다. 이것은 폐타이어로 연료를 삼는 것과 같아서 온통 그을음으로 세상을 검게 물들이지만, 축복의 에너지인 ‘드랄라(Drala)'는 청정에너지여서 즐거움이 많다.
소금인형이 바닷가에 소풍을 간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 바다의 깊이를 두고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소금인형은 기다리라며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바다의 깊이를 재어 오겠다던 소금 인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소금인형은 바다에서, 바다와 하나가 되었으니, 집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만약 바다에 들어있으면서도 바다를 그리워한다면 큰 병이다. 이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삶은 항상 제자리일 뿐이다. 힌두교도에게 갠지스 강에 몸을 씻고 예배하는 것은 죄를 소멸하고 축복받는 일로서 일생에 한 번은 꼭 거쳐야할 순례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강의 입구마다 큰 나무가 한 그루씩 있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강물에 들어가려하면 죄는 얼른 뛰쳐나와 나무에 올라가 앉아 기다렸다가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주인의 어깨에 올라탄다는 것. 비 오던 주말, 토굴을 짓는다면 지붕은 양철로 할 거라 농담을 해봤더니, 시끄럽지 않겠냐는 걱정들을 했다. 빗소리의 시원함을 어떻게 설명할까 망설이다, 그냥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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