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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지성] 10. 아인슈타인-김성구 이화여대 명예교수

기자명 법보신문

‘만법귀일’관점에서 종교와 과학 바라본 석학

세상은 사건들의 집합체 일 뿐
상대성이론’ 통해 연기법 주창

과학과 종교는 그 영역과 목적이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종교적 진리에 관심을 가진 과학자들도 의외로 많다. 현대물리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도 궁극적 실재와 진리를 찾기 위해서는 종교와 과학의 협동과 조화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아인슈타인은 1927년 미국의 한 은행가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종교심은 실재에 대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작은 일속에 나타나는, 무한하게 뛰어난 정신에 대해 겸손하게 경탄하는 마음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우주에 우월한 이성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감정에 깊이 뿌리 내린 이 신념이 나의 신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종교와 과학도 근원이 하나라고 보고 우주 종교적 감정(Cosmic Religious Feeling)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우주 종교적 감정이란 인간이 갖는 그릇된 욕망의 허망함을 깨닫고 정신과 물질 양쪽 측면에서 나타나는 질서[正法]의 신비와 장엄을 느끼는 것이다. 이 느낌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구약시대의 다윗을 비롯한 이스라엘 예언자들은 이 감정을 느끼고 있었고 특별히 불교는 이 요소를 강하게 갖고 있다고 보았다.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이론과 철학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바로 이 우주적 종교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제이머(Max Jammer)가 쓴 「Einstein and Religion」에 의하면 아인슈타인은 유대교와 카톨릭교에 대한 종교교육을 철저히 받은 사람이었고 이성제일주의(理性第一主義)의 합리주의적 철학이 그 사고의 밑바탕에 깔린 사람이다. 아인슈타인은 이성(理性)의 힘을 믿었고 이성적 사유에 의해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면서도 과학자답게 인간의 감각과 감성을 무시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초감각적 신비주의를 철저히 배격하였고. 개인에게 불멸의 영혼이 있다는 것도 믿지 않았지만 진리탐구를 위해서는 이성과 종교적 감정의 조화가 꼭 필요하다고 본 종교인이었다. 종교와 과학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생각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종교와 과학의 근원은 하나

인간이 경험한 자연이란 감각기관을 통해서 얻은 것이지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의 배후에는 우리의 마음이 파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감각적 경험의 배후에 있는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오직 간접적으로만 그리고 희미하게 도달한다고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종교다. 즉 세상에는 인간의 관측행위에 독립적인 실재가 있고 이 실재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법칙이 있다. 이 법칙은 결정론적인 것으로서 불확실성이 없다.

물리학자의 역할은 이 법칙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칙을 찾는 논리적인 방법은 없고 종교적 감정을 통해서만 이 법칙을 직관할 수밖에 없다. 과학이란 인간의 감각적 경험 사이의 정리된 연결을 찾는 체계적인 생각(thought)이며 과학의 영역에서 갖게 되는 모든 훌륭한 생각은 종교적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종교적 감정이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신비한 경험에서 오는 것으로서 예술과 과학에서의 모든 진지한 노력들도 바로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네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네 편의 논문 모두 물리학의 근본과 관계있는 중요한 논문이지만 특별히 유명한 것은 광전효과와 특수상대성이론이다. 광전효과는 진공관의 음극에 있는 금속판에 빛을 쪼이면 진공관에 전기가 흐르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당시의 학자들에게는 하나의 수수께끼였다. 아인슈타인은 빛을 입자라고 해석함으로써 광전효과를 설명하고 이 공로로 1922년에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러나 정말 돋보이는 업적은 특수상대성이론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은 ‘광속불변’과 ‘등속도로 움직이는 모든 관성계에서는 물리법칙이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두 가지 가정 하에 출발한 이론으로 시공간의 개념에 혁명을 가져온다. 동시성(同時性)이라는 것도 시간의 길이나 공간의 길이도 모두 관측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질량과 에너지가 서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특수상대성이론은 시공간과 관측자의 관계를 말한 이론일 뿐 역학체계는 아니다.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는 역학체계는 1915년에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이다. 일반상대성 이론 역시 등가원리(等價原理)와 공변원리(共變原理)라는 두 개의 간단한 가정에서부터 출발한다. 등가원리는 관찰자 주변의 일만 고려한다면 가속 운동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속운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중력의 영향아래 있는 것인지를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고 공변원리는 “임의의 좌표계에서 물리 법칙은 동일한 모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과거 현재 미래의 구별은 일종의 환상이다. 시공간은 과거-현재-미래와 공간적인 점들의 집합체로서 하나의 연속체(連續體, Continuum)를 이루고 있다. 이 시공간 연속체는 다양한 기하학적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시공간 다양체(時空間 多樣體 , Spacetime Manifold)라고도 부른다. 이 시공간 연속체는 일정한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정적(靜的)인 존재가 아니다. 시공간은 끊임없이 그 모양이 변하는 역동적인 존재이다. 태초 어느 때 시공간이 생겨나서 오늘날과 같은 우주로 성장하였다는 현대 우주론의 대폭발 모형도 시공간의 역동적인 구조에 그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물질과 시공간은 상호의존적인 것이다. 시공간의 기하학적 구조에 따라 물체의 운동이 일어나고 물체의 분포에 따라 시공간의 모양이 결정된다. 물질이라고 해서 특별한 존재는 아니며 특별한 성질을 가진 시공간의 한 부분일 뿐이다. 시공간은 중력장(重力場)의 다른 이름으로서 중력장이 강하게 뭉친 것이 물질이라고 보아도 좋다.  

시공간은 변하는 역동적인 존재

상대성이론이 나오기 이전까지 사람들은 세상에 어떤 존재가 있고 이 존재들이 절대시공간이라는 무대에서 만나 사건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상대성이론은 이 관점을 바꾼다. 상대성이론은 존재론적으로 세상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중심으로 세상을 기술한다. 시공간은 주어진 무대가 아니고 물질과 함께 역동적으로 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시공간상의 각 점들을 사건(事件, Event)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시공간이 세상이므로 세상이란 사건들의 집합일 뿐이다. 두 사건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관계는 인과관계다. 인과로 연결된 사건은 고립된 것이 아니고 다른 사건과의 관계 속에서 항상 변하는 것이므로 실제 이 세상은 오직 과정만 존재할 뿐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존재’란 다른 것이 아니다. 사건들 중 인과관계를 갖고 일정한 시간 동안 계속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 존재한다.’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사건과 과정으로 이루어진 우주의 인과적 구조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가를 결정하는 법칙을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이라고 한다. 이 장방정식은 비선형적이고 결정론적 수학적 구조를 가짐으로서 상호인과를 말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후 곧 통일장 이론의 연구에 몰두하고 한 평생을 보냈다. 중력장과 전자기장이 현상계에서는 다른 물리현상으로 나타나지만 본질적으로는 시공간의 기하학적 구조라는 하나의 원리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통일장이론의 골격이다.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통일장 이론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 정신은 오늘날에도 살아 있다. 현대의 물리학자들이 과학의 마지막 꿈이라고 부르며 찾고 있는 만물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은 바로 통일장이론과 같은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이 이론의 완성이 가능한지는 알 수 없지만 현대 물리학에서는 ‘게이지 통일장 이론(Unified Gauge Theory)’이라는 이름으로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완벽한 이론을 찾으려고 많은 학자들이 노력하고 있다.

상대성이론과 달리 미시세계의 물리현상을 기술하는 양자역학의 발전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역할은 역설적이다.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를 설명하여 양자역학이 탄생할 수 있는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으면서도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를 마련한 보아(Niels H. D. Bohr, 1885-1962)와 30년에 걸쳐 대논쟁을 벌였다. 이 논쟁에 대해 보아는 양자역학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도전이 없었다면 양자역학의 발전은 느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대논쟁이 일어난 것은 객관적 실재를 부정하고 확률론적 인과율을 말하는 보아의 해석을 아인슈타인이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잠정적인 이론일 뿐 불완전한 이론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설명한 광전효과에 대해서도 잠정적으로 빛을 입자라고 설명했을 뿐 정말로 빛이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가질 리가 없다고 보았다. 과학철학자 스텐트(G. S. Stent)에 의하면 양자역학의 인식론적 문제를 둘러싼 아인슈타인과 보아 사이의 논쟁은 두 사람이 가진 종교와 철학 사상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보아를 비롯한 양자역학의 창설자들은 불교와 동양사상에 정통하였고 동양사상이 궁극적 진리를 반영다고 본 반면 아인슈타인은 철저하게 유일신 사상에서 서양의 과학을 보았다는 것이다.

유일신 입장에서 불교를 수용

스텐트의 견해를 받아드린다면 아인슈타인은 유일신 사상에서 불교적 진리에 접근한 사람이다. 아인슈타인은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는 말을 몰랐겠지만 그 개념과 정신을 가지고 종교와 과학을 바라본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통일장이론은 모든 자연현상을 하나의 원리로써 설명하려는 것이며 우주적 종교는 종교와 과학도 그 근원이 하나라고 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반상대성이론은 모든 물리적 존재와 그 운동을 관계론적이고 사건중심으로 기술한다는 점에서 불교의 연기법을 과학이론으로 정립했다고 말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불교적으로 볼 때 깊은 의미를 가진 이론이다. 
 
이화여대 김성수 명예교수


김성구 교수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이화여대 자연과학대 물리학과 교수, 자연과학대학장, 대학원장,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및 미국 브라운 대학 교환 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이화여대 물리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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