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불만다라]66. 수행자의 선악

기자명 법보신문

선과 악 어디에 내 마음의 뿌리 있는가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조계사 원심회 김장경 회장

악을 물리치면 그것으로
그는 성자이다
선과 악 두 가지를 분별할 줄 알면
그것으로 그를 성자라 부른다.
         - 『법구경』

부처님께서 처음 정각을 이루신 이후, 동서의 모든 성인 중에는 가장 긴 45년간 전도(傳道)의 기간을 보내셨다. 처음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출가한 승가(僧伽)는 주로 자신의 수행에 전념하였다. 출가의 동기가 자신의 어리석음과 죄업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며 출가를 지망하는 수행자의 기본자세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가장 맑고 가장 고요해진 자신의 상태를 완성한 다음에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서 세상의 고통인 모든 이들의 고뇌와 죄업을 구원해 주려는 것이 보살의 길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살이 끝없이 이어질 때 비로소 세상은 맑아지고 고통은 소멸된다.

요즈음 한국사회는 국가가 할 일과 종교가 할 일이 함께 뒤섞여져 뒤죽박죽이 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종교인도 기업인이 되어야 하고 선심을 써야 사람들이 따라오고 유명인사가 나가는 교회에서 줄을 잘 서서 인맥을 형성해야 출세를 한다는 이야기는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언제부터 우리사회가 종교의 길과 세상을 살아가는 출세의 길이 이렇게 뒤범벅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종교의 길은 원래 참회의 길이다. 수행자의 길은 고요함 속 감사와 찬탄의 길이다. 일체 모든 생명에 감사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찬탄하는 길인 것이다. 출세 가도를 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빈곤과 병고에 헤매는 삶도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삶 자체에 대해서 경외심(敬畏心)을 갖고 모든 생명이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오직 기도할 뿐이다. 탄탄대로의 어느 길모퉁이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불안해할 필요도 없고, 가시덤불 길을 벗어나서 바로 옆에 장미정원이 있는 줄을 미리 점치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다.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최소한 올곧은 길이라는 확신만이 필요하다. 이 확신은 올곧은 마음의 지혜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종교의 일 뒤섞인 사회

어제 저녁 사찰 일을 마치고 학교를 향해 운전을 하고 있는데, 돼지를 가득 실은 차가 바로 앞에 달리고 있었다. 학교 입구에 있는 도살장을 향하는 차량이었다. 일요일 오후에 학교를 향하다보면 자주 마주치는 도살장행 차량들이다. 몇 분의 시간 차이를 두고서 언덕길을 넘어가면 울부짖던 생명이 먹을거리가 되어버리는 현장을 늘 이렇게 마주치면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앞차의 돼지를 향하여 법을 설하였다.

‘나라는 실체가 없고 일체가 무상하니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서 열반의 고요함을 깨달으라(諸法無我 諸行無常 一切皆苦 涅槃寂靜)’고 법을 설하였다. 인간에 의해서 희생되는 돼지들에게 모든 원한을 떨쳐버림으로서 죽고 죽이는 죄업으로부터 벗어나라고 법을 설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위로의 말을 전하였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이미 3천 년 전에 일체 모든 생명은 동일한 가치이며, 살상(殺傷)하면 고통을 느끼는 것이니 다른 생명을 죽이거나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불살생계(不殺生戒)로서 줄곧 너희들을 변호하고 계시다’고 위로의 말을 전하였다. 앞서 실려 가는 돼지들이 이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듣는지 알아듣지 못하는지를 불문하고, 인간의 왕성한 식욕과 탐욕이 불러 온 죄업을 참회하고 싶었던 것이다.  

세상에 만연한 악을 물리치는 것이 성자(聖者), 곧 무니(muni)라고 위의 게송은 말하고 있다. 오늘 날의 종교는 이 세상에 만연한 악을 물리치는 데에 힘을 경주(傾注)해야 한다. 세상의 종교인이, 또는 출가수행자가 기본적으로 악(惡)을 그치고 선(善)을 실천하는 일에서부터 자신의 길을 시작하여야 한다.
인도의 출가수행자는 재물이나 모든 소유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를 살아가는 최소한의 음식물조차도 축적해 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걸식에 의해서 삶을 영위하였던 것이다. 하루의 생계를 유지하는 음식으로부터 모든 생필품은 재가신자에게 공양을 받았다. 이 전통은 오늘날에도 전하여져 오고 있다.

선의 실천이 수행의 출발

출가수행자가 음식을 공양 받을 때에 재가신자에게 묵묵부답으로 공양물을 받는 모습을 보고 고마움을 모르는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뒤에 부처님의 깨우침에 의하여 공양을 받고서 그 고마움을 게송으로 찬탄하게 하니, 이번에는 마치 공양을 많이 받기위하여 공양자에게 아부하는 찬탄의 게송을 읊는 것쯤으로 이웃종교 바라문이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이에 부처님께서 침묵과 찬탄의 겉모양에 좌우되어 비난하지 말고, 어느 누구라도 선과 악을 잘 구별하여 선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침묵과 찬탄은 지켜갈 일이며, 악한 마음에서 일으키는 침묵과 찬탄은 버릴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셨다고 한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외형적인 행위에 좌우되지 말고, 자신의 진실한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항상 살펴서 살아가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오늘날 종교, 생명, 환경, 수행 등의 모든 문제에 최우선으로 자신의 마음이 선악(善惡)과 진위(眞僞)의 어디에 뿌리하고 있는 가를 먼저 살펴서 행동하는 성자(聖者)가 우리의 주위에 많이 함께 하기를 기도하는 마음 간절하다.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